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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작은사치 신드롬]"비싸도 괜찮아, 나를 위해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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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원 마카롱, 1만2000원 커피 불티‥자기만족적 소비 급증

왕복 3만원대 비행기 타고 5만원짜리 점심
"중요한 건 남의 시선 아닌 나의 가치"
"불황으로 소비제한‥스스로 궁핍하다 느끼지 않으려는 심리"


아시아경제

현대백화점에서 판매하는 피에르에르메 파리의 마카롱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 백민주(32세ㆍ여)씨는 최근 단촐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동행 없이 혼자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2박3일을 보냈다. 1년에 두어번 정도, 업무에 지칠 때 제주를 찾는 그다. 교통편은 '제주항공'을 이용, 비인기 시간대로 티켓을 끊어 왕복 3만원대에 해결했다. 짐을 풀기도 전에 도착한 곳은 서귀포시에 있는 신라호텔. 투숙 계획은 없지만 제주도에 올 때마다 이곳의 레스토랑 '파크뷰'의 브런치 뷔페를 즐긴다. 뷔페 가격은 5만4000원으로 항공료보다 비싸지만, 백씨는 "신선한 제주도산 재료로 각종 요리를 맛볼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귀띔한다. 지난 여름엔 서울에서는 구하기 어렵다는 '애플망고'를 올린 3만9500원짜리 빙수를 맛봤다.

최근 유통가를 관통하는 트렌드로 '작은사치'가 급부상하고 있다. 본인이 즐기고 원하는 것에 한해 최고급 제품을 선호한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대부분 여가나 식음료 등에 한정돼 있어 고가의 핸드백, 자동차, 쥬얼리 등을 즐기는 일반적인 '사치'와 구분된다. 불황에 명품 카테고리의 최저가를 찾아 구매하는 '립스틱 효과'와 유사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과시적 소비가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소비라는 점에서 다르다.

'작은사치'의 주체는 20~30대 젊은층 중심의 '포미족'이다. 포미(FOR ME)란 건강(For health), 싱글족(One), 여가(Recreation), 편의(More convenient), 고가(Expensive)의 알파벳 앞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등장한 개념이다. 이들의 지갑은 본인의 여가, 편의를 위해서는 스스럼없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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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다김선생의 크림 치즈 김밥


소비는 '필요' 보다 '기호'에 맞춰져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고급 식음료와 여가컨텐츠다. 1만2000원짜리 최고급 커피, 5000원짜리 프리미엄 김밥이 인기고, 아기 주먹만한 크기에 개당 5000원인 과자(마카롱)은 줄을 서서 먹는다. 백화점 식품관에서는 한 병에 7만원 짜리 식초도 잘 팔린다. 이밖에도 대당 1000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자전거 시장이 2000억원대로 2년 전보다 30% 가량 성장했고, 고급 취미로 분류되는 미술품 경매나 뮤지컬, 오페라 등 문화생활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바쁜 와중에 빨리 떼워야 하는 식사라도 제대로 된 것을 먹고 싶고, 없는 시간을 쪼개 즐기는 여가라면 최고급을 누리고 싶다는 심리가 반영됐다. 바쁜 일상에 대한 보상이자, 제대로 된 휴식 개념이다.

이 같은 소비패턴은 '불황'과도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다만 '합리적인 소비'의 개념이 무조건적인 절약이 아니라, 개인의 즐거움과 행복을 '선택적으로' 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백찬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작은사치는 일종의 불황형 소비 행태로 주택 등 고가의 내구재 소비 대신 일상적인 소비재를 구매하는 특징이 있다"며 "기존 해외 명품과 같은 보여주기식 사치재의 통속적 특성과는 달리, 먹고 꾸미고 즐기는 일상적인 카테고리내에서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선사하는 소비여력내 품목이 주를 이룬다"고 말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겪게 되는 소비제약, 즉 '궁핍'이라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분석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불황으로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집이나 자동차 매매 등 큰 소비는 쉽지 않다"면서 "이 경우 스스로 '궁핍해진다'고 느끼기 쉬운데, 이런 때 '작은사치'형 소비를 하면서 위로를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작은사치는 스스로에게 만족감, 쾌감, 즐거움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비싸다' '비싸지 않다'의 개념을 적용시키지 않는 것"이라면서 "본인이 이 소비를 통해 얼마나 즐거워지는지에만 집중한다"고 강조했다.

황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작은 사치는 사치스러운 느낌은 들지만 과하게 비싸지 않아 소비자가 감당할만해 여러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경제적 제약으로 과거처럼 큰 소비에서 행복감을 얻기가 어려워진 요즘 작은 사치에 기반한 소비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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