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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단독]‘1%의 놀이방’… 유명 호텔 내 200평 시설 회원권 수천만원 이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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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쓰는 보모 ‘영어시터’ 화내거나 반말·훈육 안돼

‘아이들에게 반드시 존댓말을 할 것, 절대 훈육하지 말 것. 안에서 있었던 일은 바깥에서 이야기하지 말 것.’

대학생 ㄱ씨는 방학 기간에 특이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용역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곳은 모 유명 호텔의 놀이방이었다. 이곳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 그의 업무였다. 일명 ‘영어시터’라 불리는 일이었다. 영어시터는 ‘영어’와 ‘베이비시터’의 합성어로, 영어를 사용하며 아이들과 놀아주는 보육교사를 일컫는다.

경향신문

지난해 10월 서울시내 한 호텔이 운영하는 키즈클럽에서 핼러윈 파티가 열리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ㄱ씨가 일한 놀이방은 600여㎡(200평) 규모로, 생후 24개월~12세의 아이들이 ‘고객’이다. 호텔의 회원권은 수억원대, 놀이방의 회원권은 수천만원대다. 소득 상위 1%에 해당하는 저명인사의 자녀들이 주로 찾는다. 전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의 손자, 유명 연예인 커플의 자녀도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수다를 떨거나 미술·체육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게임기·영화감상실, 전용풀장을 이용하기도 했다. 식사는 한 끼에 5만원이 넘는 퓨전요리였다.

아이들은 대부분 미국 시민권자였고, 어느 정도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국제학교를 다녔다. 아르바이트 교사들도 국내외의 이름있는 대학 출신이나 아이들보다 영어실력이 부족할 때가 많았다. ㄱ씨는 “하루는 아이들이 영어를 못하는 한 선생님을 놀리자 해당 교사는 화를 냈고, 아이들은 영어로 욕을 쏟아냈다”며 “아이들이 VIP 고객이라 우리는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ㄱ씨는 또 “버릇없는 애들은 선생님을 때려 울게도 했는데, 화가 나서 관두는 사람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ㄱ씨는 “아이들이 측은해 보일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아이들의 절반은 어머니나 아버지도 아닌, 보모와 놀이방에 찾아올 때가 많았다”며 “보모들은 한 달에 200만~400만원을 받고, 아이가 말썽꾸러기면 더 받는다”고 했다.

ㄱ씨는 최고급 놀이방의 양극화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빠지는 회원은 하위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고소득층 터줏대감들은 그래도 계속 있었다”며 “전체적으로 볼 때 강북에 비해 강남의 사설 놀이방들은 더 활성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어린이집 학대 문제가 논란이 되자 강남에서는 ㄱ씨와 같은 ‘영어시터’를 개인적으로 채용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취업이 어려워지자 중·고등 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부터 석사학위자, 서울대 등 주요 대학 졸업자들이 영어시터로 몰리고 있다. 특히 ‘물수능’으로 중·고생들의 과외 수요가 줄면서 고가의 ‘영어시터’ 아르바이트를 찾는 대학생이 늘고 있다.

한 보육업체 관계자는 “하루 10시간 영어시터 고용비용이 200만원이 넘는데, 안전 문제 때문에 높은 비용을 감수하려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박용하·김원진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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