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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성희롱 피해자, 성희롱 사건 변호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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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승소 뒤 삼성전기 퇴사 이은의씨

“약자의 든든한 ‘백’ 돼주고 싶어”


이제 막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개업을 한 ‘초짜 변호사’가 있다. 그런데 벌써부터 의뢰가 줄을 잇는다. 성희롱 사건, 직장 내 괴롭힘 사건, ‘갑질’ 피해 사건 등이 대부분이다. “삼성전기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로서 제가 물러서지 않고 회사와의 소송 과정을 모두 견딘 뒤 변호사가 됐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은 분들이 많은 듯해요.” 이은의(40·사진) 변호사의 말이다.

2005년 부서장의 성희롱 사실을 회사에 알렸다가 오히려 대기발령 등의 불이익을 당해 법정 싸움을 벌일 때만 해도 이씨는 자신이 성희롱 사건의 변론을 맡는 변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 공채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하고, 삼성전기에서 ‘일 잘하는 대리’로 살던 시절에는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 모습이다.

몇년에 걸쳐 회사와 싸운 시간이 그를 단련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조직에서 튀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많이 외로웠죠. 하지만 이제는 그 덕분에 직장 내에서 문제가 일어날 경우 초반 대처를 어찌해야 하는지, 누굴 믿고 누굴 조심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가 되기 전 로스쿨 재학 중에도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들로부터 도와달란 연락을 받거나 삼성 등 대기업에서 부당한 일을 겪은 이들이 상담을 요청해왔다고 한다.

2011년 법원이 이씨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린 뒤에 이씨는 비로소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더이상 문제 삼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 서명을 거부한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고스란히 기록한 <삼성을 살다>를 써내고 전남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그리고 2015년, 변호사로 다시 사회에 발을 내디뎠다. 그는 다음주 서울 서초구에 정식으로 법률사무소를 연다.

“제가 직장 내 성희롱, 따돌림 사건을 겪은 지도 이제 10년이 넘어가는데 최근 관련 사건을 맡으면서 세상이 참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큰 조직에서 약한 개인들이 짓눌리지 않도록 든든한 ‘백’이 되어주고 싶어요.”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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