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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147일간의 세계여행] 5. 낙타여행…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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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샘이 있기 때문이지”

나에게 맨 처음 사막은 어린왕자와 함께 왔다. 사막을 아름답다고 표현하다니, 어린 마음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린시절 ‘사막’에 ‘불시착’한 기분으로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읽었다. 여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소혹성 B612호를 상상했다. 소설 속의 어린왕자가 불시착한 장소, 현실 속의 생텍쥐페리가 비행기 사고로 사라진 곳, 어디엔가 그들을 감춰둔 사막은 로망이 되었다.

​그 다음은 아마 이집트 아부심벨 가는 길에 펼쳐졌던 뜨거운 사막이었던 것 같다. 숨이 턱턱 막혀오던 그 쨍쨍한 더위에 숨을 헐떡거렸다.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뜨겁게 달궈진 모래 위, 그 사막 한가운데 느닷없이 우뚝 서있는 아부심벨은 위대한 건축물이었다. 고대 이집트 문화의 신비로움과 인류의 위대함에 감탄을 거듭했다. 그것은 사막에 대한 동경으로 각인되었다.

​지난 인도여행에서는 무더운 날씨에 지쳐 사막을 포기하고 우다이푸르로 갔었다. 우다이푸르, 자이푸르에서 라자스탄의 문화를 만끽하긴 했지만, 사막은 그렇게 내겐 아득한 곳으로 남아야했다. 그런 아쉬움을 이번 여행의 첫머리에서 달래기로 했다. 겨울 북인도 날씨는 패딩을 입을 만큼 춥지만, 너무나 사막에 가고 싶었던 터라 도전해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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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살메르(Jaisalmer)! 인도 서부의 이 작은 도시는 여행자에게는 낙타 사파리를 위한 도시다. 밤기차로 자이살메르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다섯시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배낭을 메고 플랫폼에 서니 호객꾼들이 숙소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이라 그런지 여행자들이 많지는 않다. 검색해 둔 숙소의 호객꾼에게 가서 대기하고 있는 지프에 탔다. 자이살메르 숙소는 낙타사파리를 겸해서 운영하고 있어 숙박보다 돈이 더되는 낙타사파리 여부가 중요하다. 이른 새벽 역 앞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호객하는 이유도 낙타사파리 손님을 받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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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지프에 올라 사막으로 출발한다. 지프에는 한국인이 여덟 명, 프랑스인 여자들 두 명이 탔다. 미리 검색해서 알아놓은 이 숙소가 한국인에게 호평인 곳이어서인지 한국인들이 많다. 낙타사파리에서 간혹 성추행등의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니 여자들은 한국인 남자가 있는 그룹과 함께 사막으로 가라는 가이드북의 충고도 생각난다. 이 그룹엔 한국 남자가 네 명이고 외국인은 여자들이라 걱정이 없다.

차가 달릴수록 풍경은 점점 삭막해진다. 건물이 하나씩 없어지고 초록빛이 슬슬 사라지면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메마른 바람의 열기만이 얼굴을 때린다. 그렇게 달려 사막 입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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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랗고 선한 눈망울과 긴 속눈썹을 가진 낙타들이 기다리고 있다. 반가운 녀석들! 도움을 받아 낙타 등에 올라 진짜 사막을 향해 출발한다. 사막의 언저리에서 중심으로 향하는 낙타사파리의 시작이다. 낙타가 지치도록 봤을 사막풍경이 내겐 신비롭기만 하다. 낙타는 터덜터덜 걷는다. 낙타몰이꾼이 맨 앞의 낙타를 몰고 가면 다음 놈들은 그저 뒤를 쫒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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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네 속의 사막을 거두어 내고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서게나.

자네가 고개 숙인 낙타의 겸손을 배운다면

비로소 들릴 걸세.

여기저기 자네의 곁을 걷고 있는 낙타의 방울소리

자네가 꿈도 꿀 줄 모른다고 단념한

낙타의 육봉 깊숙이 푸른 벌판으로부터 울려나와

모래에 뒤섞이는 낙타의 방울소리. - 김진경 시 ‘낙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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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김진경의 시 ‘낙타’가 떠오른다. ‘낙타의 육봉 깊숙이 푸른 벌판으로부터 울려나와 모래에 뒤섞이는 낙타의 방울소리’라는 구절을 되뇌면서 낙타의 발걸음을 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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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낙타가 걷는 속도로 흐르고 풍경은 서서히 변해간다. 푸르름은 사라지고 모래만이 먼 곳 가까운 곳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하고 있다. 낙타는 서두르지 않는다. 맨발로 낙타를 몰고 가는 낙타몰이꾼의 발걸음도 다를 바 없다. 사막에선 바쁠 게 없다. 바빠 봤자 소용없는 일일 것이다. 낙타가 현명하다. 이제 완전히 다른 세상 속으로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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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지에 도착했다. 짐과 사람을 운반하느라 고생한 낙타들에겐 이제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사막과 가장 잘 어울리는 동물, 낙타가 지척에 옹기종기 앉아 쉰다. 가만히 앉아 되새김질이나 하고 있는 낙타들은 사막이 뭐 별거냐는 듯 새침한 표정이다. 낙타몰이꾼들은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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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여행자들은 사막을 산책한다. 사막을 느껴본다. 그렇게 원했던 낙타여행, 사막에서의 하룻밤이 실현되는 중이다. 사막을 바라본다. 걷는다. 뛴다. 사막에 앉는다. 모래를 만져본다. 흩뿌린다.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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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저편으로 해가 지는 사이 장작이 준비되고 닭과 감자가 익어간다. 준비해온 맥주 한 캔씩을 들고 모닥불 주위로 모여든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모닥불 앞에 모였다. 밤이 깊어간다. 닭과 감자를 들고 통성명한다. 깜깜한 사막의 밤, 유일한 빛인 모닥불의 흔들리는 불빛이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운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 꿈을 말하고 여행을 이야기하고 고민거리를 쏟아낸다. 밤이 깊을수록 상념도 깊어간다. 사람들의 대화를 배경음향으로 들으며 사막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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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저기 별!”

조용히 하늘을 보던 누군가가 외친다. 일순간 다 같이 하늘을 쳐다본다. 카메라를 대보지만 사진으로 별을 담을 능력이 없다. 눈으로 담아갈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모래 위에 누워 별을 감상한다. 별은, 아니 별들은 늘 그렇듯 밤하늘에서 반짝이고 있다. 서울에서도, 델리에서도 그리고 여기 사막에서도 늘 그렇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아마 대도시에선 무엇인가에 의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도 보려 애쓰지 않아서 더더욱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은하수가 보인다. 쏟아질 듯 무수한 별들이 머리 위에 있다. 저렇게 많은 별들이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는 풍경을 본 적이 없다. 몰이꾼의 충견은 남은 닭고기를 먹고 있고 저만치서 낙타가 졸고 있다. 그림인지 환상인지 모호한 장면이다.

다른 여행자가 개별적으로 사온 럼주까지 함께 나누며 취기가 오를 무렵, 문제가 생긴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낙타몰이꾼이 가리킨 곳은 그저 모래언덕 저편이다. 아무데나 가서 해결하라는 말이다. 생리현상이니 참을 수도 없어 조용히 해결하고 시치미 떼고 돌아온다. 나는 되도록 낙타 근처로 갔다. 낙타가 지켜주는 곳에 있고 싶었다.

겨울 사막의 낮은 따스했지만 밤이 되자 무섭게 기온이 내려간다. 모닥불이 꺼지고 겨울 오리털 침낭 속에 들어가 몰이꾼이 덮어주는 담요 두 장을 더 덮었다. 준비해온 핫팩까지 몸에 붙이고 사막에 누워 별을 본다. 사람들은 모두 잠들고 나만 깨어있던 추운 새벽, 먼 하늘에서 별들이 사이좋게 반짝인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스크린이 나 한 사람만을 위해 펼쳐지는 것 같다.

​​‘반짝임’이라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 생생하게 느낀다. 메마르고 찬 바람이 몸은 움츠리게 하지만 정신은 각성하게 한다. 낙타도, 몰이꾼들도, 옆자리 여행자들도 잠든 고요한 밤이다.

“저 위에 보석을 뿌려 놓은 듯한 별들이 은하수에요. 별들의 강이라는 뜻이지요”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도데의 ‘별’에서 목동이 아가씨에게 별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이런 밤하늘이었을 것이다.

눈 앞에 흐르는 별들의 강을 따라 생각의 종이배가 떠다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온 밤을 이렇게 지새워도 좋을텐데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긴다. 헤아릴 수 없는 별들 속에서 은하수를 찾은 지금이 나에겐 유토피아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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