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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엄마, 왜 누나 애만 돌봐줘? 냉정한 '자식의 셈법' 서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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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절대로 애는 봐주지 마라! 오륙십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자주 듣고, 또 하는 말이지요. 그런데 오늘 저는 새로운 충고 하나를 더 듣게 되었습니다. 한번 봐주면, 줄줄이 계속 봐줘야 한다!

언니는 도와주고, 나는 안 도와주느냐는 막내딸, 누나 아이만 봐줬으니 누나한테 의지하라는 아들. 부모 마음은 한 꾸러미인데, 자식들 셈법은 몫몫이 따로더라는 오늘의 손님입니다. 홍 여사 드림

저는 1남 2녀를 키운 60대 어머니입니다. 세 아이가 모두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살고 있으니, 이젠 부모로서 숙제는 마친 셈이지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애들 먹이고 입히던 그 시절보다 부모 노릇 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저는 큰딸의 아이를 맡아 키워준 일이 있습니다. 돌 무렵부터 다섯 살 되도록 4년간을 도와주었지요. 큰딸네가 저희 집 근처로 이사 와서 매일 아침 아이를 맡기고 저녁에 데려가는 식으로요.

큰딸 시집 보내기 전에는 저도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애는 안 봐준다고요. 그러나 상황이 닥치고 보니 어쩔 수가 없더군요. 큰사위가 형과 동업하던 사업이 잘못되어서 몇 년 동안을 집에 가져오는 게 없었거든요. 처녀 때는 설렁설렁 회사 다니던 딸이 이를 악물고 직장에 매달리게 되었고, 야간에는 프리랜서 일까지 맡으니, 애를 안 키워줄 수가 없었지요. 부부간에 다툼도 잦아지니, 속으로는 최악 상황까지도 생각했습니다. 딸의 가정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무슨 일이 있어도 딸이 일을 놓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고요.

그러나 다행히도 딸과 사위는 그 고비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지금은 사위가 취직해서 안정적으로 월급봉투를 가져오니까요. 넉넉하지는 못해도 평범한 가정의 틀을 갖추고 사는 걸 보니 제 마음이 놓입니다.

문제는 아들 내외, 그리고 제 막내딸의 억지 주장입니다. 막내딸이 작년에 첫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백일도 되기 전에 복직을 생각하면서, 저에게 도움을 청하더군요. 당연히 제가 아이를 키워줄 것으로 알고 있었답니다. 참 미안하고도 당황스러웠습니다. 큰딸 때는 워낙 상황이 안 좋았고, 또 제가 아직 50대였기 때문에 용기를 내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낼모레 칠십이고, 그 사이 허리가 망가져서 수술도 받았거든요. 갓난아기를 업어 키울 엄두가 도저히 안 나더군요. 그래서 제가 딸한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엄마도 이제 예전 같지가 않다고요. 너희는 형편이 그래도 나으니, 다른 방법을 쓰면 어떻겠느냐고요.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딸이 너무 서운해하네요. 그냥 아쉬운 기색이 아니라, 엄마가 책임지라는 식입니다. 남에게 갓난아기를 어떻게 맡기느냐, 시어머니는 지방에 사시는데 그럼 우린 어떡하란 말이냐고 눈물을 흘리며 대들더군요. 하다 하다 끝에는, 어린 시절 얘기까지 들먹이며 엄마를 원망합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고 예쁜 언니한테만 다 해줬다고요.

저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잘난 언니가 지금 떵떵거리고 사니? 어쨌거나 시집 잘 가서 외제차까지 굴리며 사는 건 너잖아. 그러자 딸이 그러네요. 누구나 자기 수준에서 다 쪼들리는 거야. 그리고 나, 일하고 싶어. 엄마는 왜 항상 언니만 안쓰러워?

그뿐이 아닙니다. 아들 태도는 더 화가 납니다. 아들은 입버릇처럼 틈만 나면 말합니다. 누나는 엄마한테 열 배로 효도해야 해. 부모 덕은 누나가 제일 많아.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자꾸 듣다 보니 말에 가시가 느껴지더군요. 누나 아이 봐줬으니, 앞으로도 누나한테 의지하라는 소리를 저렇게 에둘러 하는가 싶어서요.

그래서 제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습니다. 그런 소리 마라.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고, 부모 마음 한가지인데, 왜 자꾸 차등을 두니? 그리고 내가 무슨 짐덩어리 같아서 기분 안 좋다.

그 정도 말하면 아들이 앞으로는 말조심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제 착각이었네요.

기다렸다는듯이 아들이 정색을 하고 덤비기 시작했습니다. 차등을 둔 건 제가 아니고 어머니죠, 하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누나 애는 봐주고, 우리 애는 안 봐줬다 이거더군요.

딸과 며느리가 연이어 아이를 낳기는 했지만, 며느리는 결혼 직후부터 전업주부였거든요. 아들도 아무 문제 없이 직장생활 잘하고 있었으니, 저희 자식은 저희가 키우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 설명에 얌전하던 며느리까지 끼어들어 할 말 다하더군요. 요즘 세상에 일하기 싫은 여자가 어디 있어요? 애만 믿고 맡길 수 있으면 저도 다시 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머님은 형님한테 매여서 꼼짝을 못 하시고, 친정엄마는 안 계시니….

참 슬프고 답답합니다. 어미 마음에는 세 자식이 모두 귀합니다. 그러나 그중에 제일 약하고 처지는 아이한테 젖을 물릴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아이들 생각에는 몫몫이 따로 있는 모양입니다. 누나가 사네 못 사네 고민한 것도, 언니가 밤잠을 줄여가며 생활비를 번 것도 전혀 안타까운 줄을 모르네요.

자식을 도우려고 한 일이 지금은 이렇게 자식 원망을 받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번 봐주면 줄줄이 다 봐줘야 집안이 조용하더라는 선배들 말에 저도 한 목소리 더하게 됐네요.

이메일 투고는 mrshong@chosun.com, 홍 여사 답변은 troom.premiu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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