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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풋풋한 섬, 가슴이 ‘볼락볼락’… 제주 지질 명소 차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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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새파랗게 젊다. 제주도는 자신이 태어날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화산재가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절벽도 있고, 용암이 식으면서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윗돌도 있다. 사람에 비유해 말하자면, 용암이 바다로 흐르다가 굳은 흔적들은 제주도가 태어날 때 나온 탯줄 같은 것이다. 한반도의 나이가 20억~30억년쯤이라면 제주도는 겨우 180만년 전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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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피도 안 마른’ 젊은 땅도 있다. 송악산은 3500년 전, 성산 일출봉은 5000년 전에 형성됐다. 46억년 지구 역사에서 생명체는 35억년 전쯤 출현했다. 2억5000만년 전에 돌고래와 비슷한 어룡류가 존재했고, 4000만년 전에는 개구리 등 양서류가 지구를 주름잡았다. 수염고래류는 2400만년 전에 지금의 모습으로 커졌다. 1400만년 전에는 바다코끼리가 출현했다. 거북이와 악어의 조상들은 공룡이 멸종했던 6500만년 전부터 생존해왔다. 계산해보면 제주도는 거북이와 악어보다 어린 셈이다.

제주도에 가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이유는? 농 삼아 이야기하면 제주도가 어리고 풋풋해서인지도 모른다.

제주 차귀도에 갔다. 자구내 포구에서 2㎞. 배로 7분이면 차귀도에 도착한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국가지질공원이다. 유네스코는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아름다운 지역을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해왔는데, 제주도는 2010년 섬 전체가 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차귀도는 수월봉과 함께 대표적인 지질 명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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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구내 포구에서 바라본 차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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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구내 포구 마을에 널려있는 한치.


차귀도 선착장이 있는 포구의 모래는 검은색을 띠었다. 가이드 이명숙씨(61)는 바윗돌을 가리키며 용암이 식어서 생긴 돌 중에도 단단한 게 있고, 가스가 많아 구멍이 숭숭 뚫린 돌도 있다고 했다.

“제가 어렸을 때 물에 뜨는 부석도 많이 있었어요. 가스가 분출되지 못하고 돌 안에 있어 크기에 비해 가볍죠.”

돌들도 바위도 기기묘묘했다. 용암이 흘러내리다 굳은 것 같은 모습을 한 절벽도 있고, 단단하게 보이는 바윗돌도 보였다. 같은 현무암이라는데, 붉은색, 검은색도 있었다. 마그마 속에 가스가 차 있고 없고에 따라 생김새도 달라진단다.

선착장에서 우물터를 지나니 벽만 남아있는 집터가 나왔다.

“해녀와 어부들이 쉬었던 곳입니다. 2000년 태풍 볼라벤 때 지붕이 날아갔어요.”

차귀도는 현재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2000년 천연기념물 422호로 지정됐다. 제주도에서 구로시오 난류의 영향을 맨 처음 받는 지역이다. 기록에는 1911년 좌씨가 처음 입도했고 이후 8가구가 살았으나 1970년대 말 정부가 간첩 사건 등을 이유로 차귀도 주민들을 이주시켰다. 집들이 사라진 자리에 연자방아 돌판만 남아있었다. 섬은 억새 천지였다.

“제주에는 120종의 생물이 살고 있는데 억새와 띠가 우점종이죠. 해녀콩은 못 먹는 데 크고 신기해서 탐방객들이 많이 따가요. ”

섬 모퉁이 탐방로를 돌다 보면 해안절벽인 송이동산을 볼 수 있는데, 유독 붉은색을 띠는 것은 현무암이 산화했기 때문이다. 검은 해변과 붉은 절벽이 대조적이다. 송이동산 앞에 솟아있는 바위는 장군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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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빛을 띠는 절벽이 송이동산이다.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 전용문 박사는 “차귀도는 화산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이라고 했다. 돌아보는 데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데 “단위면적당 화산 분화구가 가장 많은 곳이 차귀도입니다. 분화구가 4~5개 있는 걸로 추정됩니다. 장군바위가 있는 지역이 분화구이죠”.

차귀도는 아직 정확하게 연대 측정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생성 연대는 2만년 전 이상으로 본다. 성산 일출봉은 5000년 전, 송악산은 3500년 전에 형성됐다. 수월봉은 형성 시기가 1만8000년 전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1만4000년 전쯤으로 추정된다는 보고도 있다. 차귀도는 성산 일출봉, 송악산, 수월봉보다는 오래됐지만 한반도나 제주도 전체에서 보면 ‘갓난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형이 특이하니 사람들이 전설을 붙여놓았다. 차귀도란 이름도 전설에서 나왔다. 진시황이 보낸 호종단이 제주에서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날 것으로 보고 지맥과 수맥을 끊으려 했다. 이에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 할망이 노하여 폭풍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켜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 해서 차귀도(遮歸島)란 이름을 붙였단다. 장군바위는 설문대 할망의 500 아들 중 막내. 나머지 499명의 아들은 한라산 영실에 있는 영실기암이다.

섬은 크지 않았다. 섬의 가장 높은 곳에는 등대 하나가 서 있다. 1959년에 고산 주민들이 세웠다.

“제주도 말로 볼레기 등대입니다. 돌을 지어 여기까지 나르며 ‘가슴이 볼락볼락 곧 죽어지켜’(가슴이 벌렁벌렁 뛰어 죽을 것 같다)라고 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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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주민들이 돌을 지어 날라 세운 차귀도 등대.


바위 절벽에 서 있는 등대 앞은 바람이 거셌다. 몸이 흔들거릴 정도였다. 멀리 바다 건너에 풍력발전기가 보였다.

제주도의 풍광은 뭍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제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땅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이야기 할 때 뼛속까지 다르다고 말하는 것에 비유하면 제주는 땅속까지 다르다. 제주도에선 땅도, 흙도 꼼꼼히 봐야 한다. 그게 정말 제주의 풍경이 뭍과 다른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니까.

▲ 차귀도 길잡이

차귀도는 자구내 포구에서 들어간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 정시에 배가 출발한다. 여름에는 9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 차귀도 섬 탐방은 어른 1만6000원, 어린이 1만3000원이다. 포구 앞에 주차장이 있다. 차귀도는 바람이 세서 바람막이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탐방 시간은 1시간30분 정도다. (064)738-5355

▲ 제주의 다른 지질 명소들

세계적 ‘화산 교과서’ 수월봉

CNN 선정 한국 명소, 성산 일출봉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선흘곶자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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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이 식으면서 형성된 현무암.


제주도는 섬 전체가 지질공원이지만 대표 명소로는 모두 12곳이 선정돼 있다.

한라산은 해발 고도에 따라 독특한 지질 특성을 보여준다. 만장굴은 제주의 대표적인 동굴 중 하나다. 성산 일출봉은 5000년 전 분화했다. CNN 등이 ‘한국의 명소’로 선정하기도 했다. 제주도 서귀포 층은 180만년 전부터 55만년 사이의 화산활동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천지연 폭포는 폭포의 형성과 진화과정에서 중요한 지질학적 명소다. 주상절리대는 용암이 식으면서 육각형 모양으로 굳은 해안 지형이다. 산방산은 80만년 전 점성이 높은 용암이 흘러가지 못해 굳은 산이다. 용머리 해안은 물과 마그마가 만나 폭발한 화산재가 쌓여 생긴 지형이다. 수월봉은 세계적으로 화산 교과서로 불리는 명소로 화산재 절벽이 압권이다. 우도는 갈대화석산지, 홍조단괴해변 등 독특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비양도에는 다양한 화산탄과 용암지형이 있다. 선흘곶자왈은 암석들이 불규칙하게 널려 있는 지대에 형성된 숲이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돼 있다.


<제주도 | 글·사진 최병준 선임기자 b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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