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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개훔방’ 흠집 낸 독립영화 감독의 잘못 찾은 번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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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세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 중 하나가 바로 싸움구경과 불구경이라고 한다. 가뜩이나 요즘처럼 민심이 흉흉해 사람들이 뾰족해져 있을 땐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해봐라 하는 심리가 더욱 강해진다. 그래서 이런 때일수록 유명인들은 구설에 오르지 않기 위해 각별히 입과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지난 달 영화계에선 남들이 볼 땐 흥미로울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겐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생지옥 같은 전쟁 한 편이 펼쳐졌다. 바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과 대기업 수직계열화의 상징인 멀티플렉스간의 대립이었다. ‘개훔방’은 괜찮은 만듦새와 관객의 호평이 이어졌음에도 점유율 낮은 신생 배급사 작품이란 이유로 CGV를 비롯해 대기업 멀티플렉스에서 왕따 당했다.

특히 가장 큰 체인인 CGV는 자사 계열사 CJ 영화 ‘쎄시봉’을 밀어주느라 ‘개훔방’을 일찌감치 교차 상영해 여론의 악화를 자초했고, 슬그머니 간판을 내린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입장 표명 없이 눈치 보기에 바빴다. ‘개훔방’은 제작자 엄용훈씨의 간절한 발바닥 홍보와 대통령 호소문까지 발표한 뒤에야 50여개 상영관을 확보, 재개봉하는 우여곡절을 겪고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런데 이번엔 ‘개훔방’이 비판의 타깃이 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달 26일 개봉한 독립영화 ‘조류인간’의 신연식 감독이 2일 보도자료를 통해 ‘개훔방’이 독립영화를 전용관에서 밀어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이것은 마치 고등학생이 대학생에게 폭행당한 뒤 유치원 놀이터에 와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흡사하다’며 억울해 했다. 김혜자 강혜정을 내세운 상업영화가 예술 전용관에서 상영돼 자신의 신작이 관객의 관람권을 보장받지 못한데 대한 울분이었다.

신연식 감독은 300만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만든 ‘좋은 배우’(05)를 비롯해 세 명의 스태프와 협업한 ‘러시안 소설’(13), 이준을 연기자로 각인시켜준 ‘배우는 배우다’(13) 등을 통해 국내 독립 저예산 영화의 토양을 비옥하게 한 인물 중 하나다. 독창적이고 섬세한 연출 기법으로 해외 영화제에까지 초청받은 실력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이번 저격에 가까운 ‘개훔방’ 비판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소모적인 논쟁이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개훔방’이 독립영화 전용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건 ‘개훔방’의 의지가 1%도 반영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엄용훈 대표는 처음부터 멀티플렉스를 상대로 ‘개훔방’이 일반관에서 상영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측은 안정적인 좌석점유율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주장을 외면했다.

하지만 여론이 들끓고 MBC ‘PD수첩’에까지 이 문제가 다뤄지자 CGV는 예술영화전용관 몇 곳을 추가로 열어주며 ‘개훔방’을 배려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엄 대표 역시 CGV의 이 같은 동족방뇨식 처사에 기막혀 했고, 본의 아니게 독립영화에 피해를 주게 됐다는 사실에 선배 영화인으로서 밤잠을 설쳐야 했다. 노사 갈등이 하루아침에 노노 싸움으로 변질된 것이다.

신연식 감독의 ‘개훔방’ 비판이 영화계에서 환영받지 못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모처럼 저예산 영화가 대기업을 상대로 만들어놓은 건강한 논쟁의 본질과 초점을 헝클어놓을 우려가 그것이다. 슈퍼갑을 상대로 설득력을 갖춰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도 벅찬데, 을과 병끼리 싸워 봐야 무슨 이득을 보겠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바로 이런 맥락 때문이다.

투자 배급도 모자라 제작과 감독 계약까지 빨대를 꽂고 있는 CJ와 쇼박스의 횡포에 가까운 사업다각화에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제작자들의 벼랑 끝 심경과 출구 전략에 과연 ‘개훔방’ 비판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까. 관객 입장에선 자사 이기주의나 이전투구로 오인될 수 있는 소지 또한 다분하다. 정작 신연식 감독이 문제제기해야 했던 카운터 파트는 동병상련 처지의 ‘개훔방’이 아닌 절대 강자 멀티플렉스가 아니었을까.

신 감독의 비판이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하는 건 그가 ‘개훔방’의 초기 감독으로 내정됐다가 교체된 사실과도 무관치 않다. ‘개훔방’을 집필한 신 감독은 제작사와 이견이 있자 영화사를 나갔고, 다른 감독에게 연출권이 넘어갔다.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개훔방’이 선전하도록 옆에서 응원해야 할 사람이 이 작품 때문에 자신의 신작이 피해를 입었다며 신문고를 두드리는 건 심정적으로는 이해되지만, 과연 최선일까 곱씹어보게 된다.

신연식 감독의 독립영화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결코 간과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기업을 상대로 용기를 내 반기를 든 ‘개훔방’과 비록 어깨를 걸지는 못할망정 비슷한 처지의 동료를 그의 잘못도 아닌데 코너로 모는 건 여러모로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생각이다. 엉뚱한 구덩이를 파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행동은 일단 삽질부터 멈추는 것이다.
bskim01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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