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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영화 리뷰] 범인보다 무서운 괴물 같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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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뢰

집에 들어가긴 오늘도 글렀다. 형사 태수(김상경)는 부녀자 연쇄실종사건에 휘말려 있다. 유력한 용의자 강천(박성웅)을 붙잡은 날 여동생(윤승아)이 실종된다. 사건을 추적하던 형사가 피해자 입장에 선 것이다. 그를 조롱하듯 강천이 하는 말. "찾아봐."

12일 개봉하는 영화 '살인의뢰'(감독 손용호)는 비 오는 날 사건이 터진다는 점을 빼면 '살인의 추억'과 궤도부터 다르다. 살인마를 검거하고 나서도 더 큰 비극이 남아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소심한 은행원이었던 매제 승현(김성균)의 삶이 산산조각 부서진다. "저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어요"라던 그가 잠적한다. 3년 후 강천을 겨냥한 승현의 복수가 시작된다.

슬픈 일들이 더 슬퍼지는 건 대체로 우리가 혼자 슬픔을 견디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예술은 그런 경험을 사회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품위 있는 슬픔'으로 남지 않고 영 불편하다. 여동생 또는 아내의 시신이라도 찾고 싶어하는 태수와 승현의 이야기는 괴물 같은 세상이 내지르는 비명처럼 다가온다. 한국 정치가 너무 드라마틱해서 정치 연극이 도통 먹히지 않듯이, '살인의뢰'는 우리 현실이 하도 헝클어져 관객이 호응하기 버겁다.

거꾸로 말하면 이 영화는 용감하다. 감독은 현실과의 거리감이나 영상미를 살리는 대신 직접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었다. 으르렁거리고 거칠게 치고받는 쪽을 선택했다. 그런 뚝심이 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좁고 투박해서 실망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해 관대하지 않은 세상에서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은 읽기 어려웠다. 교도소 목욕탕 장면을 비롯해 액션은 완성도가 수준급이다. 어느덧 베테랑 형사가 된 김상경의 안정감과 박성웅의 차가운 에너지 사이에서 큰 진폭을 견뎌낸 김성균의 연기가 돋보인다. 청소년 관람불가.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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