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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최보식이 만난 사람] "쟤들은 맨날 벗는데 우리도 벗어볼까… 韓服 치마만 입은 모습 정말 섹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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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패션계에 '바람의 옷'을 선보였던… '한복 인생 40년' 이영희씨]

"외손부 전지현을 모델로? 걔는 바빠서 나올 시간이 없고

나도 부를 마음이 별로 없고… 연예인은 내 옷을 잘 표현 못 해"

"옛것이 없으면 지금도 없어… 하지만 전통은 참고서일 뿐

나를 과거에 묶어놓진 않아… 나이 들수록 더 젊게 생각해"

인명 정보에 '이영희 1936년생(生)'으로 나와 있어 팔순 노인일 줄 알았는데, 이영희씨는 기품 있는 중년 부인 모습이었다. 심한 경상도 방언을 쓰는 것도 의외였다.

―올해가 '한복 인생 40년'이라고 했나요? 한복 이야기보다 안 늙는 비결이 더 궁금하군요.

"매일 수영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젊은 옷을 만드니까요. 과거에 나를 묶어놓지 않아요. 나이가 들수록 더 젊은 생각을 해요. 이 나이에 디자인실 직원들에게 '치맛단은 더 올리고 가슴 쪽을 더 파라. 더 야하게 하라'고 말하면, 내가 특이하다고 해요."

특이한 게 맞다. 1994년 파리 '프레타 포르테(고급 기성복 패션쇼)'에 참가했을 때, 그는 외국 모델들에게 한복 치마만 입히고 맨발로 무대를 걸어나가게 했다.

―치마저고리인 한복에서 어떻게 저고리를 벗길 생각을 했습니까?

"파리 패션에 노출은 일반적이죠. 쟤들은 맨날 벗는데 우리도 한번 벗어볼까 했죠. 한복 치마가 드레스처럼 젖가슴 위에 올라오고 맨발이니, 그 섹시한 모습에 파리 사람들이 졸도한 거죠. 르몽드지(紙)에서 '바람의 옷'이라고 했어요."

조선일보

이영희씨는 “50억원 상당의 플래티넘 재료로 한복 치마를 지어 패션쇼에 올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선생은 대구(大邱)의 보수적인 집안 출신이라 수영복 한번 안 입어보고 결혼했다고 하더군요. 지금 봐도 기품 있으신데, 섹시한 걸 찾다니요.

"아이고, 점잖다고 해서 섹시한 걸 싫어합니까. '민속 의상'인 한복의 틀을 깨니 국내에선 '국적 없는 옷'이라고 비판했지요. 그런데 한복 연구가인 석주선(1996년 작고) 박사님이 '옷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며 저를 옹호했어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 입었던 김윤옥 여사의 한복이 선생의 작품인 것은 기억합니다.

"김윤옥 여사 외에도 이순자·김옥숙·손명순 여사도 제 한복을 입었지요. 물론 다른 디자이너들의 한복도 입었겠지만."

―대통령 부인의 한복을 짓게 된 계기는요?

"이순자·김옥숙 여사는 영부인이 되기 전부터 알았어요. 내가 서교동에서 한복집을 할 때 단골이었어요. 집이 가깝기도 했고, 그 시절에는 한복을 많이 입었으니까요."

―화려한 원색을 좋아했던 이순자 여사와는 맞았습니까? 선생은 회색을 위주로 색상이 은은한 한복을 짓는다고 들었는데.

"그분이 튀는 원색 한복을 입어 시끄러웠어요. 그때 그분 나이가 사십대였어요. 지금 돌아보면 젊었던 거죠. 그분은 예쁜 옷을 입어 국민에게 잘 보여야 좋은 줄 알았대요."

―대통령 부인 중 '베스트 드레서'로 김옥숙 여사를 꼽았지요?

"그분은 미모·교양, 지적 수준에서 최고였어요. 내 옷을 가장 알아주신 분이고, 내 옷만 입었어요."

―선생의 옷만 입었으니, 그런 후한 평가는 인지상정이지요.

"외국 순방을 앞두고 청와대에 불려 들어가 'LA 교민들은 과거 향수(鄕愁)가 있을 테니 옥색과 아이보리를 입는 게 좋겠다. 파리에서는 아이보리·베이지·브라운톤을 기조로 하면 어울릴 것이다'고 권하면 바로 말을 알아들었어요. 그게 감동스러웠어요. 내가 말해도 안 듣는 영부인도 적잖았어요."

―권양숙 여사는 한복보다 양장을 선호했다지요?

"그분도 한복을 입기는 했지만, 그쪽 사람들 중에는 내 가게 손님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 시절 문화 관련 분야 회의로 청와대에 가장 빈번하게 들어갔어요. 그 뒤 권 여사를 알게 돼 한복 한 벌을 지어 보냈어요. 하지만 그 한복이 자기와 분위기가 안 맞는다고 했어요. 체형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분위기와 매너와도 맞아야 해요. 그래서 자기 옷이 있는 거죠."

―자신의 한복을 입히기 위해 유명 인사들에게는 그냥 선물로 준다고 들었습니다만.

"절대. 연예인들이 내게는 옷을 빌리러 안 와요. 나도 안 빌려줘요. 내 옷과 분위기가 맞는 사람에게 입혀야지요. TV를 보면 연예인들이 너무나 자신과 안 맞는 한복을 입고 나와요."

―그래도 대통령 부인에게는 선물한 경우가 좀 있지요?

"외국 방문을 위해 비행기 뜨는 소리가 들리면 김옥숙·손명순 여사의 비서가 내가 준 계산서와 함께 옷값을 들고 왔어요. 여러 벌 하면 명절에 한 벌을 선물하는 경우는 있었어요. 예외로 힐러리 여사는 내가 아주 좋아해 먼저 한복 두 벌을 선물했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선생의 한복을 입은 적이 없지요?

"서로 인연이 있어야 돼요. 그분들이 찾아와 옷을 해달라고 해서 지었지,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어쨌든 대통령 부인 한복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 다른 한복 디자이너들의 질시를 받지 않았나요?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길이 달랐어요. 나는 세계에 한복을 진출시키려고 연구했으니까요. 영화배우 토미 리 존스의 아내는 내 옷을 20벌 사 갔어요. 가수 가펑클의 아내는 내 한복을 입고 뉴욕에서 베스트드레스상을 받았어요. 조르조 아르마니와 프라다도 내 한복을 사 갔어요."

생활비를 벌려고 명주솜과 이불 장사를 했던 그는 1976년 나이 마흔에 한복집을 열었다. 한복 디자이너로서 출발이 늦은 편이다.

"어떤 일을 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어요. 하지만 내가 한복 패션쇼라는 걸 열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때는 파란색 치마를 입고 흰 저고리에 분홍 고름을 다는 한복이 유행했어요. 촌스러운 한복을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연구를 많이 했지요. 젊은 여성이 입을 수 있는 세련된 느낌의 '모던(modern) 한복'으로 간 거죠. 내 한복이 소문나니 손님들이 줄을 섰지요. 본인한테 어울리지 않는 색을 고집하는 손님에게 옷을 팔지 않는 만용도 부렸지요."

―선생이 한복의 색상과 디자인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더군요.

"옛것이 없으면 지금이 없어요. 하지만 전통은 참고서일 뿐이지요. 나는 한복에서 늘 '처음 하는 사람'이었어요. 1984년 치마 말기에 처음 수(繡)를 놨어요. 그때부터 다들 따라 했어요."

―한복 디자인에는 저작권이 없나요?

"1980년대에 딱 한 번 내 한복과 똑같이 만든 사람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요. 당시 조사하는 검사가 '한복 치마저고리는 그게 그거 아니냐'고 했어요. 할 일은 많은데 법정에 오라 가라 하니, 그 뒤로 누가 베끼든 쳐다도 안 봅니다. 내 걸 베껴서 발전할 수 있다면 좋은 거죠."

―선생은 특히 회색을 좋아하신다고?

"회색은 디자이너로서 내가 발견한 색이지요. 섹시한 원색끼리 배색하면 튀고 날아가버리죠. 하지만 그런 원색에 회색이 함께하면 기품 있게 섹시하죠. 알록달록한 옷에 회색 코트만 걸치면 100점이 되죠. 회색 정장을 입으면 어떤 원색의 넥타이를 해도 멋있어요."

―유독 패션쇼를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매년 10차례 이상 해왔다면서요.

"그래서 '이영희는 쇼 중독자'라는 소리도 들어요. 하지만 쇼를 하지 않으면 디자이너로서 죽은 거예요. 패션쇼는 자기 정신세계를 남에게 보여주는 거지요. 그렇게 해보지 않으면 내 옷이 잘 지어졌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몰라요."

―배우 전지현씨가 외손부(外孫婦)인데, 선생 옷의 모델로는 안 세울 건가요?

"나중에 때가 되면 해보든지…. 사실 나는 탤런트를 모델로 거의 안 썼어요. 옷을 잘 표현 못 해요. 패션쇼를 하면 사람들이 탤런트 얼굴만 보고 옷을 안 봐요."

―앙드레 김이나 몇몇 디자이너는 연예인 위주로 해왔지요.

"내 옷에는 연예인이 안 맞아요. 옷에는 자신이 없고 관객을 끌려면 탤런트를 모델로 써야겠지요."

―그렇다면 전지현씨는?

"걔는 바빠서 나올 시간이 없고, 나는 세울 마음도 없고(웃음). 둘이 똑같아요."

―패션쇼를 하면 사업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나요?

"세계에 우리 문화, 한류를 알리는 거죠. 사업으로 연결되려면 그곳에 부티크(가게)가 있어야 해요. 1990년대 파리에 진출해 자리 잡았지만 IMF가 터져 철수했어요. 내 평생 가장 안타까웠지요."

―패션쇼에서 입었던 그 많은 옷은 어떻게 합니까?

"집에 보관하지요. 그 옷을 보고 앞으로의 옷을 생각하지요. 과거를 없애버리면 미래를 만들지 못해요. 한복은 뭐랄까, '요술의 한복'이에요."

―요술의 한복이라니?

"한복에 심취하면 지구상 모든 걸 디자인할 수 있어요. 나는 그동안 유니폼·교복·화장품용기·도자기 제품도 디자인했어요. 과거에는 대우 차 마티즈 내부를 디자인했어요. 조만간 출시될 현대차의 실내도 내가 디자인했어요."

―정말 놀랍군요. 원래 디자인 공부를?

"나는 미대를 안 나왔어요(경북여고 졸업). 하지만 심취하면 할 수 있어요. 연애할 때 깊이 사랑하면 떠난 애인도 돌아오잖아요. 이런 얘기보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국민이 한복을 사랑하고 입어보고 싶게 할까 하는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한복이 불편하고 비싸다고 여깁니다.

"예복이고 행사복이니까요. 하지만 그 민족의 옷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이건 문화잖아요."

―선생의 한복은 한 벌에 400만원쯤 한다는데 감히 입을 엄두가 나겠습니까?

"손수(繡)를 놓고 유명 작가가 그림을 그려 넣으면 몰라도 그렇진 않아요. 대략 100만원에서 시작해요. 일본의 기모노는 수천만원대에서 1억원까지 해요. 자존심이 상해 기모노보다 더 화려한 한복을 짓고 싶었어요. 마침 한 귀금속 업체에서 회사 홍보를 위해 50억원 상당의 플래티넘(백금) 재료로 한복 치마를 지어달라는 주문이 있었어요. 파리 패션쇼에 선보였고, 지금은 그 업체의 은행 금고에 보관돼있어요."

인터뷰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는 꼭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내가 한복 40년을 맞아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9월 한 달간 전시합니다. 요새 장사가 안 돼 돈은 없지만, 이렇게라도 한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평생에 마지막 한 번입니다."

나는 진심으로 화답했다. "마지막이 아니라 50주년도 하셔야지요."

[최보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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