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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상위 1%에만 유리한 미국, 청년들은 가난 대물림 … 세제·교육 개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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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길] 석학에게 듣는다 ④ 조셉 스티글리츠

MS·통신사 같은 시장독점 문제

미국, 제도 때문에 불평등 악화

아메리칸드림 이제는 회의적

불평등은 경제 체제가 아니라

정책과 정치 때문에 생겨나

문제의 진짜 원인은 의회다

노벨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와 사공일 본사 고문은 그동안 여러 차례 토론을 했다. 1997년 발생한 아시아 금융위기 해결책을 놓고 머리를 맞댔고, 스위스 다보스포럼 등에선 세계화와 불평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요즘 세계 경제가 불안하다. 두 사람이 최근 뉴욕 컬럼비아대 캠퍼스에서 마주 앉았다.

중앙일보

사공일 본사 고문과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컬럼비아대 캠퍼스에서 대담하고 있다. [뉴욕=안정규 JTBC 기자]


▶사공일=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많은 독자가 요즘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한다.

▶조셉 스티글리츠=요즘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첫 번째, 불평등에 관한 연구다. 최근 『불평등의 대가』란 책을 펴냈다. 현재 불평등이 우리 미래를 어떻게 위협하는지에 관한 책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 혁신 체제에 관한 것이다. 『배우는 사회를 창조하자(Creating a Learning Society)』를 펴냈다. 이 책은 정부 정책이 혁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담고 있다. 세 번째는 더 정확한 예측과 정책을 위해 거시경제 모델을 개선하는 연구다.

▶사공=흥미롭다. 요즘 한국 정부의 정책 슬로건인 ‘창조경제’와 비슷하다. 아주 폭넓은 개념이다.

▶스티글리츠=나도 혁신이 경제 현상만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짜는 문제라고 봐서 책 제목을 『배우는 사회』로 했다.

▶사공=무엇에 초점을 맞춘 책인지 한국 독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길 바란다.

▶스티글리츠=‘어떻게 하면 한 사회가 더 잘 배우고 더 창의적이 되게끔 바꿀 수 있을까’다. 이 측면에서 한국은 지금까지 잘해왔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스템은 훌륭했다. 하지만 많은 학습은 대학 졸업 뒤 이뤄진다. 이를 ‘어떻게 하면 제도화할 수 있을까’가 과제다.

▶사공=달리 말하면 교육 시스템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스티글리츠=『배우는 사회를 창조하자』는 학교 졸업 후 사회에 나와 접하는 현장 교육 체제도 강조한다. 예를 들면 교과서만 읽는다고 철강을 생산할 순 없다. 실제 해보는 게 중요하다. 한국이 성공적인 예다. 일단 철강산업을 시작해놓고 미국보다 더 효율적으로 철강을 생산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현장에서 터득하고 고민하는 방식이다.

▶사공=요즘 미국 경제를 어떻게 보나.

▶스티글리츠=미 경제가 다른 선진국보다 낫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만족스럽지 않다. 노동시장 참여율이 지난 30년 평균보다 낮다. 1980년대 깊은 침체에서 회복할 때 경제 성장률은 6% 정도였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중간 계층의 소득은 지난 25년보다 낮다. 물론 유럽보다는 좋다(웃음). 미국 경제가 여러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사공=당신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불평등이 미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데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스티글리츠=불평등은 단기이면서 중장기 문제다. 경제구조가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불평등은 다시 경제를 약화시킨다. 악순환이다. 따라서 미 경제가 유럽보다 좋다고 말할 때만은 아니다.

▶사공=불평등의 주요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인가.

▶스티글리츠=미국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비교하면 알 수 있지만 경제 체제가 아니라 정책과 정치 때문에 불평등이 생겼다. 미국은 99%가 아니라 1%에만 이로운 방식으로 경제 틀을 짰는데, 이는 정책과 정치 때문이다.

중앙일보

조셉 스티글리츠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조세 제도가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다. 억만장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등의 세금 부담이 부유하지 않은 사람보다 작다. 고소득층이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통신회사들처럼 시장을 독점하는 것도 문제다. 또 다른 문제는 (자기 노력 이상으로 보상을 챙기는)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가 여기저기서 벌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금융산업이 심하다. 이런 행태는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

▶사공=그렇더라도 당신은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론』에서 제시한 부유세 같은 극단적인 처방을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스티글리츠=자본과 노동에 대한 공평한 세제를 마련해야 한다. 가난한 계층의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개혁도 필수적이다.

▶사공=교육제도가 잘못 짜이면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일어나고 불평등이 더욱 심화한다.

▶스티글리츠=그렇다. 가난의 대물림은 피해야 한다. 많은 젊은이가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는 환경에 내버려두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사공=단기적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한편 교육 시스템을 개혁하는 일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스티글리츠=모든 사람이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야기한다.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고 해왔는데 나는 회의적이다.

▶사공=자본이득에 세금을 제대로 물려야 한다는 데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본소득을 자본 소유자와 창의적 기업가의 기여에 대한 보상이라는 시각이 있다. 자본소득을 구분해 세금을 물리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스티글리츠=실질적으로 자본소득의 상당 부문이 독점이나 지대추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세금을 물리는 일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미국 최고경영자(CEO)의 급여가 평균 근로자의 30배 정도였다. 현재는 250~300배다(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10배 정도다). CEO의 보상 가운데 상당 부분이 생산성 개선과 기업가 능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지 않은가. 현재 미국 기업의 인센티브 시스템이 문제다.

▶사공=현실적으로 당신이 주장하는 교육제도와 조세제도 개혁이 미국 의회에서 입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스티글리츠=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미국 선거제도가 문제다. 많은 미국인이 나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 선거제도가 이를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사공=결론적으로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스티글리츠=맞다. 문제의 진짜 원인은 정치다. 정치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사공=요즘 그리스-트로이카(EU· ECB·IMF) 사이에 협상이 진행 중인데, 한국 독자들이 당신의 해결책을 궁금해한다.

▶스티글리츠=내가 보기에 그리스 정부의 요구가 옳다. 기존 부채의 만기와 금리를 조정해야 한다. 경제성장률에 맞춰 상환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채권 발행도 괜찮다. 긴축 대신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올바른 개혁에 나서야 한다. 경제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놓는 게 바람직한 개혁이다. 방향을 잘못 잡은 개혁을 추진하면 재앙이 될 수 있다. 크게 봐서 독일과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EU)이 그리스에 요구한 조치가 잘못된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사공=요즘 중국을 어떻게 보는가.

▶스티글리츠=중국이라고 해서 초고속 성장을 이어갈 수 없다. 중국의 성장률 둔화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중국이 올바른 구조개혁을 한다면 비교적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중국의 불평등도 심각한 문제다. 중국은 미국만큼이나 불평등한 사회다. 조화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 그 밖에 공해 등 엄청난 환경문제도 해결돼야 한다.

▶사공=한국 독자들은 당신이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스티글리츠=일본은 통화정책만 강력히 시행했다.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은 하지 못했다. 아베노믹스의 결과는 미지수다.

▶사공=마지막으로 한국에 대해 코멘트한다면.

▶스티글리츠=여건 변화에 적응하는 한국의 능력이 늘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큰 강점이다.

▶사공=우리는 신축적이고 빠른 의사결정으로 실수도 많이 한다. 그러나 실수를 빨리 바로잡는 것도 사실이다.

Joseph Stiglitz 조셉 스티글리츠

-1943년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출생

-컬럼비아대 경제학 석좌교수

-컬럼비아대 정책대화 이니셔티브 소장

-전 세계은행 부총재

-전 미국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노벨경제학상 수상(2001년)

-MIT 경제학 박사

대담 = 사공일 본사 고문

정리=강남규 기자

사진=안정규 JTBC 기자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강남규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dis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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