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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소설가 박민규 "조현아는 벽을 넘어온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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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이 갑에 의한, 갑을 위한, 갑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을로서의 자각과 자존감이 아직 미비하기 때문이다.”

소설가 박민규씨(47)가 2015 문학동네 봄호에 ‘땅콩회항’ 등 갑질에 대한 시론 ‘진격의 갑질’을 기고했다. 박씨는 ‘갑질’에서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을 발견하고, 조현아를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빗대 “결코 넘어선 안될 (근대라는) 벽을 넘어온 거인”이라고 비유했다.

“‘근대’라는 벽은 진격해오는 거인들을 막기 위해 쌓아올린 인류의 방어벽이었다. 평등이라는 벽돌 한 장을, 자유와 인권, 민주, 개인, 시민의식이란 이름의 벽돌을 쌓아가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고 피를 흘렸는지도 가늠할 길 없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작가 박민규 /강윤중 기자


박씨는 땅콩회항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두고서도 “시범케이스로 하나를 잡고 뜨겁게 끓어 올라 욕을 퍼붓고, 한 사람에게 갑질의 십자가를 지우고, 조롱하고, 기필코 갑을 응징했다는 이 분위기도 실은 매우 전근대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토록 갑질에 분개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지 못하겠다.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해도, 천문학적인 국고를 탕진해도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이 쪼잔한(상대적으로) 갑질에 분노하는 현상을 믿을 수 없다 이 얘기다. 얘는 까도 돼, 어쩌면 더 큰 거인의 허락이 떨어졌음을 은연중에 감지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찜찜하다.”

박씨는 “진격해오는 갑질에 맞서 우리가 스스로 쌓은 벽이 있다면, 그런 철학이 있다면 이것이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이는 현대로 치닫는 시간의 방향과 달리 우리의 인프라가 그간 전근대를 향했다는 증표”라며 “갑질에 맞서는 일은 “결국 우리가 가진 전근대성과의 싸움”이라고 썼다.

그는 전근대를 넘어선 현대는 “인간의 사이즈는 저마다 다르다 해도 인권의 사이즈는 ‘다 같은’ 지점, 바로 그곳”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이번 갑질 논란 그 자체에서 희망을 보며 글을 마친다. “당연히 막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러나 실은 비어 있는 근대의 공란을 우리는 차곡차곡 메꾸어가야 한다. 아마도 인내심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희생도 따를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진격해오는 거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을질이다. 다시금 맨 앞으로 돌아가 이 글의 제목을 ‘진격의 을질’로 바꿔주면 고맙겠다. 당신의 손으로 직접// 우리의 손으로 직접.”

지난해 여름 박씨가 세월호 참사에 관해 문학동네 여름호에 기고한 산문 ‘눈먼 자들의 국가’는 다른 문인들의 글과 묶여 동명의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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