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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전국 어디든 똑같은 관광… 지자체, 아직 먼 ‘차이나 프렌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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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 전략없이 유치에만 신경, 유적·전통 행사장 안내도 부실

의미조차 모른체 사진찍고 떠나… 쇼핑장 없어 돈 쓰고 싶어도 못써

수도권·제주는 방문객 급증세, 체계적 관광 인프라 구축 시급

세계일보

지난달 25일 광주시립민속박물관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유커·游客)들이 전통 장례식에 사용하는 상여 앞으로 몰려들었다.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상여를 따라가는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일부 관광객은 ‘한국의 결혼식’을 보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중국인 30여명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진을 찍었다.

장례의식이 유커들에게 결혼식 축제의 장으로 잘못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이를 바로잡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문화해설사는커녕 중국어 안내판조차 없었다. 1시간가량 둘러보는 동안 중국인들에게는 낯선 고싸움이나 돌잔치 등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답답한 유커들은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성토했다. 쑹춘옌(39)씨는 “민속자료를 보면 광주가 상당한 역사를 지닌 것처럼 보이는데 그 의미를 전혀 모르고 돌아간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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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 지역 간에 중국인 관광객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1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중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 등으로 북적이고 있다. 남정탁 기자


중국인 관광객 급증에 ‘유커의 지방 대도시 방문 실태’를 취재하면서 접한 풍경이다. 전통 장례식 장면을 전통 결혼식 모습으로 착각한 이들 유커는 중국 장쑤성 난창시에서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서울과 제주를 찾은 단체관광객이었다. 광주 관광은 당초 일정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광주시가 이들 유치에 공을 들인 끝에 ‘광주 1박’을 끼워넣은 것이다. 이에 따라 유커 200여명이 광주 관광에 나섰지만 유치 때와는 달리 그리 환대를 받지 못했다.

광주시가 민선 6기 들어 유커 유치에 적극적이지만 현장에서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광주시가 올해부터 70억원을 들여 추진 중인 ‘차이나 프렌들리’는 이렇게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제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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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커 1000만 시대… 지자체마다 군침

한국을 찾는 유커들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이 발간한 ‘VIP 리포트’에 따르면 2020년이면 1000만 시대를 열게 된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유커는 643만명으로 전년에 비해 46% 증가했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 수(1217만5000명)의 35.5%를 차지했다. 외국인 관광객 3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유커인 셈이다. 유커는 2007년 100만명을 돌파한 이후 해마다 20∼30%씩 증가세를 보이다가 2013년 433만명으로 400만명을 훌쩍 넘겼다. 이때까지 부동의 1위였던 일본을 끌어내렸다. 이런 증가세를 감안하면 5년 후 1000만명 돌파는 기정사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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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커의 씀씀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유커 1인당 국내에서의 지출액은 2013년 기준 242만원으로 일본인(110만원)의 2배가 넘는다. 유커 1000만 시대 도래는 막대한 생산유발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짙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생산유발효과 68조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32조4000억원, 일자리 89만개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권태일 부연구원은 “유커 1000만 시대는 더 빨라질 수 있다”며 “유커의 지출액은 명목국내총생산(GDP)의 1.6%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유커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중국과 가까운 서해안 쪽의 자치단체들은 민선 6기 들어 유커 공략에 더 전념하는 모양새다. 광주시는 지난해 민선6기 출범과 함께 ‘차이나 프렌들리’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다. 한류관광기반 구축과 특화거리 조성이 핵심이다.

유커 유치를 전담하는 조직과 기구를 두는 자치단체들도 잇따르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해 조직 개편 때 중국과를 신설했다. 그동안 흩어져 있던 중국 관련 업무를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의도에서다. 인천시는 국제협력관실에 중국팀을 확대 개편한다는 계획이다. 또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중국인 관광객 유치와 무역 업무를 총괄할 중국 전담부서를 신설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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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유커들이 광주시립민속박물관의 한 전시실에 미니어처로 재연한 남도의 고싸움 놀이를 보며 신기한 듯 사진을 찍고 있다.


◆판박이 전략에 인프라 구축 미흡


자치단체들이 유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중국의 여행 자유화로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50만명을 넘어서면서 국내에는 유커 붐이 일었다. 자치단체들은 이때부터 중국 현지에서 여행사들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가진 뒤 국내 팸투어를 실시했다. 한류의 진원지인 드라마 촬영과 성형 의료 관광을 중심으로 상품 개발에 나섰다. 자매결연한 중국 도시나 국내 중국 유학생을 대상으로 ‘관시(關 系)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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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와 경남도 등 대부분의 자치단체들은 여행사에 유커 1명당 1만원의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지난해 이들 자치단체가 지원한 인센티브만 수십억원에 이른다. 민선 6기 들어서는 유커 쇼핑의 거리 조성과 중국어 간판 병기 등에 예산을 쓰고 있다. 하지만 유커들이 ‘광주 1박’을 하면서 쓰고 가는 돈은 1인당 20만원이 안 된다는 게 여행업계의 분석이다.

이는 광주시와 경남도 등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10년간 각 자치단체들이 추진한 유커 유치 사업은 거의 판박이 수준이다. 중국 현지 사업설명회를 비롯해 의료관광, 유학생 관시(關系)마케팅, 한류 관광지 중심 상품 개발 등 천편일률적이다. 유커 입장에서 보면 한국 어디를 가나 비슷해 수도권과 제주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치단체의 유커 유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유커 대부분이 수도권과 제주에 몰리면서 다른 자치단체들은 ‘풍요 속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관광문화연구원이 2013년 유커를 대상으로 방문지를 분석(중복응답)한 결과 서울 80.9%, 경기 17.9%로 수도권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제주(17.9%)와 영남(15.6%)이 10%대를 넘겼을 뿐 강원 9.2%, 인천 7.8%, 충청 4.0%, 호남 3.8% 등 나머지 지역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호남 등 일부 지역은 유커의 불만을 사고 있는 면세점과 숙박시설 등 인프라 구축이 여전히 미흡하다. 전남발전연구원 조창완 중국연구센터장은 “중국인들의 관광목적이 쇼핑인데, 그런 시설이 없어 돈을 쓰고 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관련 인프라 구축 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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