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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국내 정유사 '숙련공 이탈'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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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이상 엔지니어 중동 등 해외 정유사 이직연봉 높고 생활비 지원 국내보다 조건 월등
최근 사우디 아람코社 국내파 50명 넘게 스카우트 기술 유출 등 우려돼

파이낸셜뉴스




#. A정유사 생산공장에서 20년간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B씨는 지난 달 가족들과 함께 취업비자를 받아 사우디아라비아 이민을 결정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로부터 제의받은 파격적인 스카우트 조건을 고민 끝에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아람코는 B씨에게 연봉 2배 보장, 자녀 학비 전액 지원, 고급 주택 제공 등 뿌리치기 어려운 이직 조건을 제시했다. B씨는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꾸리고 있지만 엔지니어에 대한 좋은 인식과 좀 더 나은 교육 환경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사우디아라비아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국제유가 하락과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경영악화에 빠진 정유사들이 최근 들어 고급 생산인력마저 이탈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2~3년새 대규모 정제시설 증설에 나선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가 파격적인 조건을 앞세워 초기 공장을 운영할 숙련공들을 한국에서 집중적으로 영입하면서 향후 국내 정유업계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파격대우…'너도 나도 이직'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유국인 중동과 중국이 2010년 이후 대규모 증설에 나선 정유시설들의 가동에 잇따라 들어가면서 초기 공장을 운영할 현장 인력 채용에 국내 정유사 직원들이 대거 지원하고 있다. 해외 정유사로 이직하는 인력들은 현장 경력이 최소 10년 이상되는 숙련공들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기업인 아람코가 국내 생산인력 영입을 주도하고 있다.

원유만 팔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정부 주도 아래 고부가가치인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정제시설 개선과 확장을 꾸준히 추진하면서 정유공장을 9개까지 증설한 상황이다. 아람코는 이들 신규 고도화 시설의 운영을 책임질 경력직원들에게 국내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정유사 한 직원은 "최근에 이직한 입사 동기는 엔지니어 경력 20년인데 아람코로부터 연봉 1억8000만원, 생활비와 교육비 지원, 고급 숙소 제공 등을 제안받았다"며 "게다가 세금도 전액 면제받고 자녀 교육은 초중고 국제학교와 대학 학비까지 지원받았는 걸 감안하면 한국보다 3배 이상의 대우를 받는 셈"이라고 전했다.

이 직원은 "5년 정도만 고생하면 한국에서 10년 이상의 경제적 이익과 최고 수준의 자녀 교육이 가능하다 보니 아람코로 이직하려는 직원들이 꽤 있다"고 털어놨다.

■기술유출…'경쟁력 약화'로

국내 숙련공들의 해외 이탈에는 생산직을 폄하하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도 한몫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생산직에 대해 한국은 여전히 소위 '공돌이'라는 시선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중동에서는) 한국 엔지니어들은 성실하고 숙련도가 높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우리나라보다는 일하기가 훨씬 좋은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정유사 관계자는 "정확한 숫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최근 일년 새 최소 50명 이상의 국내 숙련공들이 아람코로 이직한 것으로 보인다"며 "아람코 등 해외 기업들이 증설을 추진하는 걸 감안하면 앞으로도 국내 고급 생산인력들의 이직 러시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당장 국내 공장 운영에 차질을 빚을 정도는 아니지만 우수한 현장인력들이 경쟁국가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건 기술 유출과 다름없다"며 "결국, 기술력의 우위를 점했던 국내 정유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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