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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취재파일] 박근혜 정부 2년, 국수는 왜 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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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쌀쌀한 날씨에 지인들과 점심으로 국수 집을 찾았다. 갓 끓여 탱탱한 면과 고깃국물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국수가 불어터지지 않아서 참 맛있다"며 우스갯 소리가 나왔다. 곳곳에서 쓴 웃음 소리도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동산법 처리를 놓고 비유한 '불어터진 국수' 발언은 며칠이 지나도록 여전히 뭇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대통령에게 다시 되돌려주고 싶은 말이어서일까.

2년 전쯤으로 돌아가보자. 2012년 11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 후보로서 비전 선포식에 참여해 이같이 말했다.

"이제 글로벌 시대를 맞아 보다 '준비된 국정운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위기의 민생경제를 구하고, 국민통합을 이뤄내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만들어 갈, 대한민국의 변화와 혁신, 기다려지지 않습니까? 저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 후보로서 국민통합, 정치쇄신, 일자리와 경제 민주화를 3대 국정지표로 삼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키워드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운동 기간 늘 이 말을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으로서 섬세한 국정 운영을 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약속을 지키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당시 연설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이와 함께 크게 10가지 약속도 했다. 조금 길더라도 핵심만 나열해보겠다. 얼마나 변화가 체감되는지 함께 읽어보자.

① 지금 우리 국민들의 가장 큰 걱정인 가계부채, 제가 확실하게 부담을 덜어드리겠습니다. 더 이상 과도한 빚으로 고통받고 자살하는 국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② 자녀를 가지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도록, 국가책임보육 체제를 확실하게 세우겠습니다. 5살까지의 아이는 국가가 무상보육을 책임지겠습니다.

③ 교육비 걱정도 반으로 낮추겠습니다.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확대하고, 사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정책도 펼쳐가겠습니다. 대학등록금 부담을 반값으로 낮추고, 셋째 자녀부터는 대학 등록금을 100% 지원하겠습니다.

④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정책을 확실하게 추진해서,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지원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암, 심혈관, 뇌혈관, 희귀난치성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이 100%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⑤ IT, 문화, 컨텐츠, 서비스 산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는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늘리겠습니다.

⑥ 근로자의 일자리를 지키겠습니다.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올리고, 해고요건을 강화하는, 제도적 보호장치를 갖춰나가겠습니다.

⑦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회사는 징벌적 금전보상제도를 적용하겠습니다.

⑧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범, 불량식품 등 4대 사회악을 반드시 뿌리뽑겠습니다.

⑨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더 이상 억울한 일 당하는 중소기업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대자본에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보호대책을 세워서 실천하겠습니다.

⑩ 지역균형발전과 대탕평 인사로, 모두가 하나되는 행복공동체를 만들겠습니다.


공약을 읽어내려간 독자들의 생각이 어떨지 궁금하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살펴보자. 국가가 5살까지의 아이의 무상보육을 책임진다고 했다. 3살에서 5살까지 누리과정의 지원비용을 매년 계속 늘려가기로 했지만, 2년째 22만 원으로 동결 상태다. 고교 무상교육을 약속했지만, 예산부터 전액 삭감하면서 이 또한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또, 정부는 비정규직 대책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계약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겠다며 비정규직을 고착화시키는 대책을 다시 내놓아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또, 경제민주화 역시 그럴듯한 말 뿐이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 19번의 연설을 분석한 결과, 지난 2013년 11월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라는 단어 자체를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제 말도 쏙 들어간 것이다.

박근혜 후보자가 발표한 공약은 모두 20개 분야에 674개였다.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분석한 결과 2015년 2월까지 집계한 전체 공약 이행률은 37%에 불과한 실정이다. 약속했던 공약 대부분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불어터진 국수 격이다.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일까? 아니면, 애초에 공약(公約)이 아닌, 당선만을 위한 공약(空約)이었던 걸까? 왜일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현안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회 문제가 극심한 사회 갈등으로 곪아터질 때까지 손 쓰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결국 국정 운영의 동력까지 상실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거듭되는 인사 참사로 '박근혜호'는 더 힘을 잃고 표류했다.

실제로 지난 2년은 잇따른 악재로 점철됐다. 국정원 선거 개입 논란과 세월호 참사, 잇따른 인사 낙마, 비선실세 국정 개입 의혹, 연말 정산 폭탄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어느 것 하나도 제때 대처하지 못했고, 아직까지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유가 뭘까. 왜 대통령은 불어터진 국수처럼 문제에 즉각 대처해 돌파구를 찾기 보다는 함구로 일관하거나, 뒤늦게 자충수를 두는 걸까.

명지대학교 신율 교수는 모든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집단 이성에 대한 신뢰가 없는 데서 시작한다고 보았다.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국민의 요구에 대응을 못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국민이 요구했을때 즉각 부응하면 되는데, 그걸 왜 못하느냐. 집단이성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죠. 집단이성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어떻게 되나. 본인들의 이성이 집단적인 요구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고 이 다수의 생각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것이 모든 문제점의 출발이라고 봐요.

소통이라는 것은 뭐 얘기만 잘하면 되냐, 그게 아니죠. 들어줘야 돼죠. 그런데 듣지 못 해요. 듣는다 해도 이해를 못해요. 이해를 못하면 상대를 이끌어야 하고 나를 이해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아주 고전적인 생각에 빠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설령 정말 국민들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정말 시끄러워지면 그때서야 허둥허둥대면서 뭔갈 바꾸려고 하는데 그때는 일이 더 엉켜버릴 수 밖에 없다는 거죠."

다시 말해 아무리 현안에 대한 국민 여론이 있어도, 자신이 맞다는 자의식에 빠져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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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스타일이 권위주의 시대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아무래도 정부의 통치 스타일이 권위주의 시대와 좀 유사하고, 국민과 대통령을 연결해야할 청와대 조직 또한 소통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해온 것 같습니다. 소통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대통령이 먼저 국민들의 목소리에 좀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하고 여당 야당 시민사회를 포함한 이른바 국민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제도화할 수 있는 절차와 시스템을 청와대 내부에 재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는 흔히 변화무쌍하게 살아움직이는 생명체라고 한다. 국민과 호흡하고 국민 여론을 읽어 적기에 대응하는 것이 정치 생리의 기본일 것이다.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거나, 그저 나를 따르라는 식의 통치로는 앞으로 한발짝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쇄신을 하겠다며 비서실장과 내각 일부를 교체했지만, 이 역시 여론은 싸늘하다. 야당은 '장고 끝 악수'라고 평가했다. 기자가 접촉한 야당 지도부 모두 국민의 요구를 읽지 못한 인사라며 혹평을 쏟아냈다. 대선 개입 논란의 중심인 국정원에 대해 이렇다할 개혁 조차 하지 않고 있는 이병기 국정원장을 국정운영의 요직인 비서실장에 내정한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여당 원내대표조차 유감을 표명했을 정도다.

이제 3년 남았다. 앞으로도 정부의 밥상 위엔 갓 삶은 탱탱한 국수가 아니라 불어터진 국수가 나올까봐, 아니, 국민들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국수가 불어터져 식탁에도 올라오지 못할까 걱정이다. 최소한 선거 운동 당시 국민들에게 보여줬던 초심으로 돌아가보는 건 어떨까.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섬세하고 능숙한 국정 운영을 해나가길 국민의 한 명으로서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조을선 기자 sunshine5@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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