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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모스크바에 뭐 볼 게 있다고 왔어?" 러시아인들 묻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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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女, 사표쓰고 세계일주]러시아 모스크바를 가다]

머니투데이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궁전 /사진=박보희


'테트리스 성'이다. 단조로운 기계음, 하지만 단 한번만이라도 게임을 하고 나면 하루종일 머릿속을 떠지 않는 중독성 강한 음악, 그리고 초록, 노랑, 파랑색이 알록달록 어울어진 지붕의 성이 트레이드 마크인 게임 테트리스. 그 성이 지금 눈 앞에 있다. 이곳은 러시아 모스크바다.

◇알록달록 테트리스성, 붉지 않은 붉은광장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처음 기차에 오른지 14일만에 드디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도착해 짐을 채 풀기도 전에 찾은 곳은 역시 '크렘린'이다. 원래 크렘린은 '도시 내부의 요새 성벽'이란 뜻이란다. 하지만 1917년 10월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크렘린은 러시아 정부를 달리 이르는 말이 됐다. 그래서 뉴스 등에서 러시아 정부를 입장을 '크렘린 궁은~'이라고 표현한 것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크렘린이라는, 러시아를 여행하다보면 접하게되는 수많은 복잡한 이름 속에서, 유난히도 간단해보이는 이 지명 안에는 모스크바를 넘어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부분의 상징물이 담겨 있다.

누구라도, 이름은 몰라도(심지어 성인지 성당인지도) 보면 아는 테트리스 성인 성바실리 성당을 비롯해, 블라디미르 레닌이 생전의 모습으로 누워있는 레닌 묘, 이름과 달리 붉지 않은 붉은광장(사실 '붉은'이라는 말은 러시아어로 아름답다는 뜻을 담고 있단다),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담고있는 역사박물관, 규모와 화려함에서 어디서도 뒤지지 않을 국립굼백화점, 한때 러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던 이반대제의 종탑, 대통령 관저까지 모두 이곳에 모여있다.

이곳이 '러시아'임을 다시한번 깨닿게 해주는 곳은 역시 레닌의 묘다. 붉은 벽을 따라 걷다보면 벽 안쪽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레닌의 묘다. 아무때나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입장을 할 수 있다. 입구에서는 삼엄한 모습의 경찰들이 관람객들의 가방 속 하나하나까지 확인을 하고서야 입장을 허락한다. 건물 안에서는 사진도 찍을 수 없고, 조명은 어두워 발밑도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이 어둠에 적응할 틈도 없이 앞 사람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왼편으로 양복을 차려입고 조용히 누워있는, 레닌의 미라가 보인다. 잠든 듯, 창백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순간 현실 밖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에 온 몸의 감각이 멍해지는데, 그 비현실감에 걸음의 속도가 늦어지기라도 하면 경찰이 다가와 주의를 줄 정도로, 경계는 삼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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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묘를 가는 길목 담장에 낙서들/사진=박보희


◇젊은 예술가들의 도시, 모스크바

변하는 러시아의 모습을, 그 속에 살고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고싶다면 모스크바 강 위에 섬처럼 떠있는 붉은10월 지구는 어떨까. 뉴욕타임즈는 이 곳을 '예술을 위한 섬'이라고 표현했다.

그리스도구세주대성당에서 모스크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올라가면 강 저편으로 붉은 벽돌 건물이 가득한 섬이 보인다. 원래 이곳 전체는 초콜릿 공장이엇단다. 섬 정면으로 보이는 붉고 하얀 간판은 여전히 이곳이 초콜릿 공장이었음을 보여준다. 초콜렛 회사 이름은 '붉은 10월' 붉은 벽돌 건물과 묘하게 어울리는 이름과 간판이 섬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곳은 사진 갤러리와 디자인 학교, 디자이너 샵, 스튜디오, 미디어 회사, 카페, 바, 클럽이 들어선 문화지구로 다시 태어났다. 공장이었던 과거를 그대로 내놓은 거리는 미로처럼 이어지고, 투박하게 쌓아올린 붉은 벽돌벽은 뜬금없이 길을 가로막고 서있다. 하지만 걷다보면 갑자기 벽에서 튀어 나오는 작은 카페와 붉은 벽 사이를 잇고있는 갤러리들이 투박함마저 예술적으로 만든다. 아침이면 디자인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가는 학생들로, 밤이면 클럽과 바에 가려는 젊은이들로 한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러시아를 왜 여행하냐고?

열차에서, 거리에서 만난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Why Russia?(왜 러시아야?)"다. 프랑스나 그리스같은 곳을 가지 뭐 볼게 있어서 러시아에 왔느냔다. 처음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가보고싶어서'라고 답했는데, 그때마다 이들은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한국에는 삼성도 있고 LG도 있는데 비행기는 없냐고 묻는다.

모스크바 가는 길에 만난 노부부도 그랬다. 기차 안에서도 그 작은 테이블에 1회용 식탁보를 깔고, 무릎에는 냅킨을 덮고 식사를 하던, 말도 별로 없는데다, 그나마도 조용조용 속삭이듯 이야기를 하던 그야말로 교양있는 모스크바 시민이었던 노부부는 가는 내내 책을 보고, 창밖을 보고, 사색을 하고 그랬다. 시부모님과 여행을 하면 이럴 기분일까. 호구 조사를 끝내고 시작된 침묵 속에서 건너편에 앉은 나는 괜히 허리를 세워앉고, 입술에는 미소를 머금고, 책을 뒤적이고 한참이 흘렀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역시나 "왜 혼자서 러시아에 왔느냐"고 묻는다. 살짝 고민을 하다 예전부터 모스크바와 크렘린을 꼭 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왔다고 하니 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그런걸 보려고 온단 말이야? 모스크바에 뭐 볼게 있다고." 이번에는 왜 모스크바냔다.

또 다시 한참을 창밖을 내다보고 고민하던 할아버지. 다른 유럽 어느 나라도 아니고 러시아를 온 것도 이상하지만, 정 여행을 해야겠다면 그냥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란다. 모스크바에는 볼 것이 없다며 만난지 10시간만에 가장 큰 목소리로 말을했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해놓고도 갑자기 아이패드를 꺼내더니 영문 사이트까지 찾아 모스크바에서 꼭 가야 할 곳을 찾아 보여주기 시작한다. 여기도 가야하고, 저것도 봐야 하고, 여긴 정말 좋은 곳이고...자꾸 끊기는 인터넷을 한참을 기다려가며 찾아주는데 이렇게 찾아준 곳만 열 곳이 넘는다. 옆에서 할머니는 이곳도 가야 하지 않느냐, 이곳은 어떻느냐고 훈수를 두기 시작하는데, 모스크바 여행 정보만 3시간에 걸쳐 강습을 받았다.

덕분에 아는 것이라고는 크렘린밖에 없이 향한 모스크바행이었는데, 지하철 사용법부터 꼭 봐야할 곳까지 알아야 할 대부분의 것들을 기차에서 준비해버렸다. 그리고 추천해준 모든 장소를 다 가보지도 못했다. 볼 것 없다더니... 결론은 러시아인이 러시아 욕할 때 앞에서 같이 욕하면 안 된다는 얘기. 러시아인의 러시아 사랑은 이런 식인가보다.

할아버지가 사실 사랑하는 곳이 분명한 모스크바를 뒤로하고 다시 기차에 올랐다. 하루 뒤면 이 기차는 러시아 여행의 마지막 도시이자, 모스크바인들마저 러시아를 여행왔다면 꼭 가야하는 곳이라 손에 꼽는, 유럽으로 가는 창이 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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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시내의 야경/사진=박보희


☞잠깐 여행 팁

-크렘린에서 이반대제나 병사 등 각종 코스프레 의상을 입은 이들과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 공짜로, 몰래 사진을 찍으려하면 귀신같이 눈치를 채고 말 그대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기도 한다.

-크렘린 뿐 아니라 관광지 곳곳에는 이런저런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자고 다가오는 이들이 많은데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르바트 거리에서 동물 탈을 쓰고 사진을 찍자고 달려드는 '동물탈 3인방'의 악명이 높다. 멋대로 관광객의 사진기를 뺏어가 사진을 찍고, 뺏긴 사진기 때문에 발목이 붙잡힌 틈을 타서 자신들의 카메라로도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돈을 요구하는데 뺏긴 사진기만 얼른 챙겨서 나오면 따라오거나 하지는 않는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 볼쇼이 극장에서 보는 발레 공연이다. 볼쇼이 극장에서 공연을 보려면 당연히 미리 예매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미처 예매를 하지 못했더라도 극장 옆 매표소에 가보면 판매하고 남은 당일 티켓이나 취소된 티켓 등을 생각보다 싼 값에 구할 수도있다. 물론 유명한 공연 같은 경우에는 티켓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매진이 되기도 한단다.

-붉은10월 지구를 처음 돌아보면 별다른 특별한 점이라곤 없어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보면 곳곳에 뭔가가 숨겨져있는데, 예를들어 빨간 벽돌벽에 특별한 것 없어보이는 작은 철문을 두드리면 문이 열리면서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숍이 나타나는 식이다. 처음보는 사람이 저 철문 뒤에 커피숍이 있는지 어떻게 알까! 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곳이다.

-러시아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에서도 영어는 잘 통하지 않는다. 대도시답게 거리의 사람들도 매우 쉬크한데, 길을 물으려 붙잡아도 듣는 척도 안하고 돌아서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마 러시아어 외에 외국어를 못해서 그러는가보다' 정도로 생각하면 기분이 많이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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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희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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