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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인종차별에 멍드는 유럽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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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팬들의 지하철역 소동 이어 흑인선수 향해 바나나 풍선 조롱

‘원숭이’ 비하 응원가도 자주 울려… 축구장 내 솜방망이 처벌도 한몫

“축구장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의 마지막 사례가 됐으면….” 조세 무리뉴 첼시 감독은 지난 18일 일부 팬들이 프랑스 파리 지하철에서 현지인을 상대로 인종차별 행위를 했다는 소식에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을 저버리고 불과 열흘 만에 축구장에서 다시 인종차별 사건이 벌어졌다. 27일 네덜란드 프로축구 페예노르트 팬들이 AS로마(이탈리아)와의 유로파리그 32강 2차전에서 코트디부아르 출신 골잡이인 제르비뉴를 향해 바나나 풍선을 던져 경기가 두 차례나 중단됐다. 바나나는 유색인종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인종차별 행위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은퇴한 흑인 골잡이 티에리 앙리는 “축구장에선 일상적인 일이지만, 그래서 더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경향신문

페예노르트의 일부 홈 관중은 이날 코트디부아르 출신인 제르비뉴를 향해 바나나 풍선을 던졌다.


유럽연합(EU)은 2013년부터 인종차별 발언 및 행동과 관련해 최대 7년의 금고형을 내릴 정도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 행위는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유일한 유색인종 지도자인 퀸스파크 레인저스(QPR) 크리스 램지 감독은 “최소한 내가 현역에서 뛰었던 1978년에는 응원가에 인종차별 문구가 들어가지 않았다”며 “요즘은 축구장에서 인종차별이 매일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축구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영국방송 ‘BBC’는 “흑인 선수가 사이드라인에서 공을 잡으면 ‘원숭이’로 비하하는 응원가가 자연스럽게 울려퍼진다”며 “팬들이 부르는 응원구호와 노랫말 사이에 인종차별 단어가 섞였기에 구분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공장소의 인종차별과 달리 축구장에선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이날 인종차별로 상처입은 제르비뉴는 지난해 9월 러시아의 CSKA 모스크바 원정 팬들이 자신을 향해 내쏟는 모욕적인 발언에 고통받았지만, 정작 모스크바에 내려진 처벌은 무관중으로 3경기를 치르는 게 전부였다. 잉글랜드 주장이자 첼시 수비수인 존 테리도 2011년 QPR 수비수 안톤 퍼디난드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해 기소됐지만, 실제로 처벌받지는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축구장 안의 인종차별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축구장의 인종차별을 방치할 경우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른다. 영국일간지 ‘가디언’은 유럽 전역에서 늘어나고 있는 실업률과 함께 외부에서 유입된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이 인종차별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하루빨리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드레아스 뫼츨러 오스트리아 자유당 의원이 “유럽은 니그로(흑인을 비하하는 표현)들의 집합체가 되고 있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피아라 포와 유럽축구인종차별반대시민연대(FARE) 이사는 “축구계가 다시 악몽과도 같았던 1980년대로 돌아가선 안된다”며 대응을 촉구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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