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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TF현장]흡연자들 "경고그림? 좋아, 근데 내 세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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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흡연자 권리는 없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6일 전체회의에서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법안을 심의·의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담배 제조사는 담뱃갑 앞뒷면 면적의 50% 이상을 경고그림과 경고문구로 채워야 한다. 이날 오후 4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의원회관 주변에서 흡연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 국회 = 서민지 인턴기자


경고그림·문구와 함께 '흡연실'도 좀…

'구멍 난 목' '검게 그을린 폐' '썩어 문드러진 치아' 등 흡연에 따른 질환을 담은 자극적인 그림이 담뱃갑을 채운다면?

곧 보게될 것 같다. 연초 담뱃값 인상으로 시끄러웠던 것도 잠시 이번엔 '담뱃갑 경고그림' 이슈가 찾아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6일 흡연율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넣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률안을 심의·의결했다.

지난해 9월부터 정부는 국민건강과 금연을 위해 담뱃값 인상, 실내 흡연 금지 등을 골자로 한 '금연 종합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다소 강압적인 금연정책에 시달리고 있는 흡연자들. 이번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더팩트> 취재진은 이날 오후 4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의원회관 주변에서 허공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는 흡연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국회도 끄덕였다 "3개월이면 무감각 해 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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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경고그림이래" 26일 국회의원회관 6층 야외 테라스에서 국회 직원들이 흡연하고 있다. 이들은 흡연 경고그림 의무화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찬성하지만, 자극적인 그림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무감각해진다고 답했다. / 국회 = 서민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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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금연정책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는 국회다. 이 때문인지 국회의원을 곁에서 돕고 있는 보좌관, 의원실 관련 직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찬성'했다.

그러나 그들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건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 복지위 법안소위에서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개정안이 의결된 이날 국회의원회관 6층 야외 테라스. 약 40여 분간 지켜본 결과, 흡연 부스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5분 마다 3~4명의 직원이 꾸준히 이곳을 찾아 담배를 피웠다.

국회에서 의원들을 돕고 있지만 흡연자인 이들은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흡연 부스 앞에서 만난 이들은 '경고그림' 도입에 찬성했다. 하지만 강력한 금연정책의 일환이라고 알고 있는 '경고그림' 도입이 흡연율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데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이모(49) 씨는 "흡연 경고그림 의무화에 대해선 찬성한다"면서도 "해외에 다녀올 일이 자주 있어서 여러 번 (경고그림) 봤다. 확실히 경각심을 주는 효과는 있더라. 근데 금방 무감각 해 진다. 태국의 경우엔 아예 그림이 없는 담배를 구해서 피는 경우가 많더라"고 실제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최근 흡연을 줄이기 위해 전자담배를 피는 윤모(36) 씨는 "경고그림 도입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곧 "사실상 석 달 보면 경각심이 사라진다. 그래서 금연 의지가 높은 연초마다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거나 그림을 바꾸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서는 경고그림 의무화에 무조건 동의하며 "서민들? 힘들면 끊으라고 해!"라고 말하는 모 의원실의 천모(46) 씨도 있었다.

◆"경고그림? 좋다 이거야. 필 장소나 마련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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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어디로 가죠?"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태국의 담뱃갑에 있는 경고그림 사진(위)이다. 태국은 2005년 경고그림을 도입했다. 곧 국내에서 도입될 '담뱃갑 경고그림'에 대해 일반 시민 흡연자들은 담배 경고그림 의무화는 찬성했다. 하지만 대신 담배를 필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 온라인 커뮤니티, 금천구=서민지 인턴기자


국회를 나서는 길. 국회에서 의원을 돕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과연 일반 시민 흡연자들도 경고그림에 찬성할까?

일단 만나는 시민 대부분은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다.

담배를 배운지 9년에 접어든 강모(28) 씨는 '경고그림 법안 통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잘했다고 생각한다. 뉴질랜드는 경고그림도 있고 담뱃값이 1만4000원 정도다. 처음에 충격받아서 끊으려고 시도했다. 그렇지만 좀 지나고 나면 무뎌져 다시 피게 되더라"고 말하며 "정부가 내놓은 정책 다 찬성한다. 다만 세금 떼가고, 합법적으로 구매하면 피울 공간은 좀 마련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요즘 정말 불편하다"라고 문제점을 꼬집었다.

경고그림 의무화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사)한국담배소비자협회 관계자에게도 물어봤다. 관계자는 "비가격정책인 경고그림을 도입할 거면 증세 논란 전에 했으면 반대 덜 했을 거다. 흡연자들은 세금 낼 것 다 내고 피는 건데 혐오스럽다는 취급받으며 이젠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우리가 낸 세금으로 적어도 필 수 있는 공간은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또 다른 흡연자 이모(29) 씨도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엔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모 씨는 "경고그림을 보면 불쾌감이 들어서 줄일 것 같긴 하다. 그런데 담배를 끊을 것 같지는 않다. 가격도 올리고 규제를 하는 것도 다 좋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에게도 최소한의 권리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스갯소리지만 흡연자들이 몸 버려가며 낸 세금인데 정작 우리에게 도움되는 흡연 부스 조차 찾기 어렵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경고그림을 보면서 드는 불편한 마음은 흡연자들의 몫이라 치자.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1000만 명의 흡연자들은 오늘도 4500원짜리 담배를 사서 공중분해 된 자신들의 '필 권리'를 찾아 헤맨다. '어디 있을까, 내 세금'.

[더팩트 | 여의도=서민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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