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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간통죄 폐지 후폭풍…대한민국 결혼 가치관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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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최상현ㆍ강승연 기자]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간통죄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1953년 형법제정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62년, 1905년 공포된 대한제국의 형법대전까지 합하면 110년 만의 일이다. 간통죄 폐지는 지금까지 결혼과 이혼으로 양분화돼 온 우리나라의 결혼 가치관에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인 가족관을 지탱해 준 결혼이라는 개념이 퇴색되고 동거나 사실혼, 혼전계약서를 중심으로 하는 남녀 관계가 대세로 자리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기혼자들의 외도가 급증하고 불건전한 성산업이 번성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형사 처벌 폐지로 민사 배상액이 급증한다면 간통으로 치러야할 댓가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도 있다. ‘바람난 배우자’도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쪽으로 이혼법까지 개정된다면 후유증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간통죄 폐지로 모든 전과자들의 주홍글씨가 삭제되는 것도 아니어서 논란의 불씨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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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게 만나고 ‘쿨’하게 헤어지는 동거 확산된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간통죄 폐지가 독신 인구의 증가, 이혼율 증가 등 변화된 우리 사회의 가족 형태를 반영한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보수적인 헌재의 이번 결정이 간통죄가 더 이상 가족 구성원의 결속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걸림돌이라는 데 무게를 둔 판단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들 중에서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특히 지난해 황혼 이혼율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법무법인 이인의 김경진 변호사는 “전통적인 가족관을으로 여겨졌던 부부간의 결속력은 점점 약화될 것으로 예상돼 동거나 계약 결혼 등 사실혼 등이 빠르게 확산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한결의 박상융 변호사도 “이중생활에 따라 혼외자가 많아지고 이에 따른 친자감별소송 역시 증가하게 될 것”이라며 “부부간 정조 의무 등 혼인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유교적인 개념의 가족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은 “프랑스, 독일 등 서구에서는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동거하거나, 동거 중에 다른 사람과 동거하는 일도 있다”면서 “당장은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을 수 있으나 나중에는 서구처럼 불륜에 대해 개의치 않는 풍조가 확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혼 담당 한 변호사는 “사실혼 관계도 충분히 법적으로 보호되므로 헤어지기 쉽게 차라리 혼인신고 안 하고 살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다. 우리나라도 서구처럼 이제는 동거제도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미드’서 보던 혼전계약 활성화될까 =간통죄 폐지로 혼전계약이 활성화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간통죄를 형사처벌할 수 없는 대신 간통 행위에 따른 책임에 대해 결혼 전 합의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혼인관계 및 부부의 정조 의무를 형법 대신 계약서 형태로 규정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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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혼전계약서를 통해 이혼 후 위자료나 재산분할 문제뿐 아니라 가사분담, 양육 등 결혼생활 중 규칙에 대해 상세히 합의할 수 있어 머잖아 새로운 결혼 트렌드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가사법 전문 이인철 변호사는 “간통죄가 폐지된 뒤 혼전계약서가 늘 수 있다”면서 “혼전계약서에 간통 시 배우자에게 지급할 손해배상 액수까지 쓰는 미국처럼 혼전계약이 새 결혼 풍속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행법에도 혼전계약서의 근거가 되는 법조항이 있다. 민법 제829조는 혼인관계 성립 전 부부가 혼인 중 재산에 대해 체결하는 ‘부부재산계약’을 인정하고 있다. 부부가 혼인 전의 재산에 관해 약정을 하면 혼인 중 이를 변경하지 못하며, 대법원 등기나 공증 등을 통해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다만 최근 법원은 ‘이혼 후 재산분할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혼전계약서에 대해선 효력이 없다고 판결하는 추세다.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최근 혼전계약서에 대해 자문을 받는 고액자산가나 재혼 커플이 많다”면서 “법원이 혼전계약의 내용 등에 따라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간통죄 폐지...논란은 계속될 듯 =법조계에서는 앞으로 배우자의 부정에 대한 형사적 처벌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위자료 액수를 높이는 등 법원의 후속 조치나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위자료 액수를 높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간통한 배우자에 대해 손해배상다툼에서 승소하려면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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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아닌 개인이 간통의 증거를 잡기 위해서는 결국 불법인 흥신소를 이용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애를 갖고 있거나 경제적으로 약자인 배우자의 경우 형사처벌이 사라져 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한여성변호사협회 이명숙 회장은 “남편이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 아내가 눈앞에서 바람을 피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거의 없게 돼 버렸다”며 “이 경우 불법주거침입죄를 적용할 수도 없어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간통죄가 폐지로 구제받는 간통사범들 모두 ‘주홍글씨’가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간통죄의 효력이 헌재의 마지막 합헌 결정이 내려진 지난 2008년 10월 30일까지만 인정되기 때문에 이날 이후 간통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거나 재판이 진행중인 3400여명만이 구제 대상이다. 유죄 확정 시기가 2008년 10월 30일 이전이라면 현재로서는 마땅한 구제 방법이 없다.

그런가 하면 최근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권’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이혼법은 원칙적으로 혼인 생활에서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는 상대 배우자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有責主義)’를 채택하고 있는 데 간통죄 폐지로 바람난 배우자가 청구하는 이혼 소송도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간통죄 폐지로 불륜은 더 이상 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혼소송도 유책주의보다는 파탄주의에 입각한 판결이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r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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