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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IS 어린이 보듬었던 ‘이슬람의 친구’ 끝내 IS 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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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 분쟁 현장서 아이들 도와

IS 일부 대원들도 “고토 살리자”

이라크전 땐 말리는 아내와 이혼

모친 “전쟁 없는 세상 꿈꾼 아들”

난민으로 몰린 어린이들의 아픔과 희망을 전 세계에 전하겠다며 현장을 고집했던 일본인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後藤健二·47).

그는 2010년 9월 자신의 트위터에 "눈을 감고 꾹 참는다. 화가 나면 고함 치는 것으로 끝. 증오는 사람의 일이 아니며 심판은 신의 영역. 그렇게 가르쳐 준 것은 아랍의 형제들이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처럼 그가 친구처럼 아끼던 이슬람 땅에서 그는 결국 돌아오지 않는 주검이 됐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1일 새벽 5시쯤 고토의 참수된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지난달 24일 유카와 하루나(湯川遙菜·42)에 이어 고토마저 살해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번 IS의 일본인 인질극은 막을 내렸다.

고토의 죽음이 알려진 1일 아침 모친 이시도 준코(石堂順子·78)가 언론 앞에 섰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메시지는 강렬했다. “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아들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꿨다. 아들은 분쟁과 가난으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했다. 그 신념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또 이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건 원하지 않는다.”

고토는 명문 사립 호세이(法政)대 재학 중 미국 컬럼비아대에 1년간 연수를 가는 등 일찍이 국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졸업 후 히타치(日立)그룹 자회사에 취직, 잠시 샐러리맨 생활을 했지만 저널리스트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다. 20대 중반 저널리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고토는 제작사 현장 경험을 거쳐 1996년 ‘인디펜던트 프레스’란 독립 제작사를 설립했다. 이후 소형 카메라를 든 채 중동·북아프리카·아프가니스탄 등 험지를 뛰어다녔다. 분쟁 지역에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거나 소년병이 돼 전쟁터로 내몰린 아이들의 삶을 전하는 걸 숙명으로 여겼다. 유니세프 관련 일에도 발벗고 협력해 왔다고 한다. 이라크전쟁 현장에 가려는 고토를 말리는 부인과 이혼하는 아픔도 겪었다.

이라크전 취재 당시 대다수 서방 언론들이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와 이를 기뻐하는 시민에게 초점을 맞췄지만 고토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현지인들의 묘를 찾고 죽음의 공포에 떠는 시민에게 다가갔다. 3년 전에는 시리아 내전의 현장을 둘러보다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고 한다. 폭력과 빈곤에 시달리는 시리아 어린이들에게 PC를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만들자며 2000달러(약 220만원)를 기부하며 “내 이름은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많은 이슬람 세력은 고토를 ‘이슬람의 친구’로 여겼다. IS가 일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시리아 알레포에서도 현지 아이들과 교류했다. 시리아 정부, 반정부 그룹 양쪽으로부터 취재 허가를 얻을 수 있는 일본인 저널리스트는 그가 거의 유일했다.

지난해 10월 IS에 붙잡힌 유카와를 돕기 위해 그는 3년 전 재혼한 부인, 그리고 태어난 지 3주밖에 안 되는 둘째 딸을 뒤로하고 시리아로 향했다. 그가 IS에 억류된 사실이 공개된 후 이슬람 내에서도 “고토를 살리자”는 목소리가 거셌다. 인터넷에서 고토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I AM KENJI’ 운동에 이슬람권 시민까지 대대적으로 참여했다.

고토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1일 곳곳에서 고토를 추모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우리들 마음은 고토의 가족과 함께한다”(미국 오바마 대통령), “야만스러운 살해 행위를 가장 강한 표현으로 비난한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고토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김현기 기자 luckyman@joongang.co.kr

▶김현기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khk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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