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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슈틸리케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 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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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직후 한국말로 소감 밝혀

손흥민 끝까지 포기 않고 동점골

장현수 등 절뚝거리며 연장 혈투

호주에 1-2 패배 우승 놓쳤지만

월드컵 대표팀에 엿 던졌던 팬들

공항 마중나와 투혼에 꽃 선물

엿 대신 꽃이 날아들었다. 호주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거둔 축구대표팀이 1일 귀국길에 엿 대신 꽃을 받았다.

지난해 6월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1무2패)에서 탈락한 축구대표팀은 인천공항에 도착해 엿 세례를 받았다. ‘근조(謹弔), 한국 축구는 죽었다’고 쓴 현수막을 든 팬은 “축구대표팀이 국민들에게 엿을 먹였으니 나도 엿을 던지는 거다”고 분노했다. 당시 본지 기사의 제목은 ‘꽃 대신 엿이 날아들었다’였다.

불과 7개월 사이 축구대표팀의 귀국길 모습은 확연히 달라졌다. 아시안컵에서 투혼을 불사른 대표선수들을 보기 위해 이날 인천공항에는 1000여 명의 팬이 몰렸다. 많은 소녀 팬들은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듯 환호성을 질렀다.

일부 팬들은 선수들에게 꽃을 던지거나 전해줬다. 축구팬 김석진(38) 씨는 “호주전 응원구호가 ‘호주는 시드니, 한국은 꽃피리’였다. 비록 호주는 시들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축구는 꽃을 피웠다”고 말했다. ‘더할 나위 없이 잘했다, 흥해라 손흥민’이란 현수막을 든 팬들도 있었다. 인기 드라마 ‘미생’에 나온 명대사 ‘더 할 나위 없었다. YES!’를 빗댄 표현이었다.

지난해 9월 지휘봉을 잡은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의 최우선 목표는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다. 아시안컵 주장 기성용(26·스완지시티)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부진해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겼다. 아시안컵을 통해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대표팀 위상도 높아질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대표팀은 아시안컵 조별리그 1·2차전에서 오만·쿠웨이트를 상대로 진땀승을 거뒀다. 알랭 페랭(59) 중국 감독은 아시안컵 8강 상대에 대해 “한국보다는 호주를 더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한국 축구가 언제부터 이런 취급을 당했냐”며 똘똘 뭉쳤다. 태극전사 유니폼에 새겨진 ‘투혼’이라는 글자가 부끄럽지 않게 뛰었다. 골키퍼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은 우즈베키스탄과 8강전을 이긴 뒤 “어디 한 곳이 부러지더라도 무실점을 지키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부상으로 중도 하차한 이청용(27·볼턴)과 구자철(26·마인츠)은 휴대폰 메신저 단체 대화방을 통해 동료들을 응원했다. 1일 호주와 결승전을 앞둔 대표팀 라커룸에는 태극기와 함께 이청용과 구자철의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진정한 원 팀(one team)이었다.

한국은 호주와 결승전에서 0-1로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23·레버쿠젠)이 기성용의 패스를 받아 왼발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팬들이 원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축구였다. 손흥민은 광고판을 넘어 한국팬들이 모인 관중석으로 몸을 던졌다. 대표팀과 팬들 사이를 가로막았던 불신의 벽이 무너지는 장면이었다. 교체카드 세 장을 모두 소진한 뒤 맞은 연장전에서 장현수(24·광저우 부리)는 근육경련을 참고 끝까지 뛰었다.

연장 전반 15분 한국은 제임스 트로이시(27·쥘테 바레험)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석패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어로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 해도 됩니다”고 말했다.

외신들도 한국 축구를 칭찬했다. AFP통신은 아시안컵 베스트5에 대회 MVP로 뽑힌 마시모 루옹고(23), 팀 케이힐(36·이상 호주), 오마르 압둘라흐만(23·UAE)와 함께 기성용과 손흥민을 뽑았다. 호주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아시안컵 최고의 감독으로 우승국인 호주의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아닌 슈틸리케 감독을 뽑았다.

대표팀은 1일 소속팀으로 곧바로 합류한 남태희(24·레퀴야) 등을 제외하고 17명이 입국했다. 팬들은 결승전에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김진수(23·호펜하임)에게 질책이 아닌 큰 박수를 보냈다. 팬들의 격려에 김진수는 “두리 형에게 우승컵을 안기고 싶었는데 실패했다”며 “그래도 두리 형이 착해서 봐줄 것이라고 본다”고 말하며 웃음을 되찾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회 전에 우승을 하겠다고 확신하는 약속을 드리지 않았다. 다만 최선을 다해 대한민국을 위해 힘쓰겠다는 점 한 가지 약속 드렸다”면서 “우리 선수들이 나라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그라운드 위에서 펼치며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브라질 월드컵 귀국길에 엿 세례를 당한 뒤 “엿을 먹어야 하나요”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던 손흥민은 이날 “당시 내가 축구팬이라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실망이 커서 그랬을 것”이라며 “비록 준우승했지만 많은 팬들이 격려해줘 감사하다. 개인적으로는 우승하러 갔는데 준우승해서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박경훈(54) SBS 해설위원은 “대표팀이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자신감과 경험은 3년 뒤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드니=김지한 기자, 박린 기자

사진 설명

사진 1 아시안컵에 출전한 축구 대표선수들은 투혼과 열정으로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 주장 기성용은 성숙한 기량으로 팀을 이끌었다.

사진 2 수비수 곽태휘(오른쪽)는 6경기에 2점만 내준 짠물 수비의 주역이었다.

사진 3 김진수(오른쪽)는 부지런한 플레이로 살림꾼 역할을 했다.

사진 4 이근호(왼쪽)는 결승전에서 배를 밟히고도 이를 악물고 뛰었다.

사진 5 인천공항을 통해 개선한 대표선수들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시드니 AP=뉴시스, 인천공항=김경빈 기자]

아시안컵 말말말

“이길게요. 이길게요.”

손흥민은 결승전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46분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다. 손흥민은 골을 넣은 뒤 한국 관중이 모여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국 팬들을 향해 그는 “이길게요. 이길게요”라고 소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차두리, 자랑스럽게 은퇴할 수 있다”

일본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닛폰은 결승전 뒤 ‘차두리 자랑스럽게 은퇴할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이어 ‘한국이 55년 만의 정상에 한 걸음이 닿지 않았다’며 한국의 준우승 소식을 실었다.

“손흥민과 가가와 신지를 바꿨으면 … ”

손흥민의 극적인 동점골은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아시아의 에이스다”, “일본도 이 정도로 찬스를 이용할 수 있는 선수가 있었으면…”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일부 네티즌은 “(손흥민을) 가가와 신지(도르트문트)랑 교환했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겼다.

김지한.박린 기자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v2010/power_reporter.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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