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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용감한 가족’ 캄보디아까지 가서 달걀 구걸해야 하나[Oh!쎈 입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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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지난주 KBS 2TV 심야 예능 프로그램 ‘용감한 가족’을 보면서 썩 유쾌하지 않은 장면과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심혜진 이문식 박명수 등 가상 가족이 된 연예인들이 캄보디아 수상 가옥에 살면서 겪게 되는 해프닝과 정착기를 그린 생활 밀착 예능이었다. 낯선 문화를 체험해보고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긴다는 공영방송다운 기획 의도는 비록 참신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됐다.

하지만 방송을 보는 내내 준비된 지상파 예능이라 믿기 힘들 만큼 불편하고 진부한 설정과 장면이 수없이 반복돼 리모컨에 가는 손을 말리느라 애먹었다. 예능 프로를 보면서 이렇게 인내심이 든 건 SBS ‘매직아이’ 이후 몇 달 만이었다. 같은 날 방송되는 tvN '삼시세끼-어촌편'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수준 높은 오락물이었는지 확연히 비교될 정도였다.

시청자로서 불쾌지수가 치솟은 건 출연진의 의욕 과잉과 제작진의 방치가 빚어낸 불협화음이었다. 캄보디아의 열악한 수상 가옥 체험을 통해 웃음과 감동을 버무리겠다는 선의와 출연 의지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이들이 막상 현지에서 보여준 몇몇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극중 부부인 심혜진 이문식이 간장 밥 탈출을 위해 쌀과 식료품을 사려고 수상 가게를 찾는 장면부터 삐걱댔다.

제작진으로부터 빠듯한 정착금을 받고 이 돈을 최대한 아껴 쓰는, 연예인들의 극빈 체험을 웃음 포인트로 활용하는 것까진 나무랄 게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돈을 절약하는 상대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캄보디아 서민이라는데 문제가 있었다. 특히 심혜진은 쌀 3kg과 양파 등 부식을 사며 어떻게든 물건 값을 깎기 위해 혈안이 됐고, 결국 덤으로 라임까지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모두 합해 4000원이 조금 넘는 액수였음에도 부식비를 깎았다며 이들은 하이파이브라도 할 기세였고, 옆에 있던 제작진은 응원하듯 흐뭇한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이날 심혜진이 산 부식에는 낯선 땅에서 생일을 맞은 막내딸 AOA 설현에게 줄 믹스 커피도 포함돼 있었다. 정가가 매겨진 공산품까지 에누리를 요구할 때부터 속으로 ‘이건 좀 심한데’라는 불편함이 꾸물댔다.

이날 가격 흥정의 굴욕 방점을 찍은 이는 바로 이문식이었다. 가족들에게 계란 프라이를 해주기 위해 달걀 5개를 산 뒤 배에 오르던 중 부주의로 두 개를 바닥에 떨어뜨린 이문식은 수상 가게를 다시 찾아 비닐봉지를 얻는가 싶더니 달걀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애처로운 표정으로 검지를 들어올리며 ‘하나만’을 요구했고, 이를 보다 못한 매점 주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계란 하나를 건네며 상황이 마무리됐다.

주인은 ‘왜 그들에게 부식비를 깎아줬냐’고 묻자 ‘너무 불쌍해 보여서’라고 답하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가게 주인이 막대한 손해를 본 것도 아니고 카메라가 펼쳐진 상황에서 고객 편의를 제공한 것이겠지만, 요즘 해외로 수출되는 예능 프로가 늘고 있는 마당에 만약 이 모습을 본 외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일부 얘기겠으나 압축 성장 탓에 에티켓이 몸에 익지 않아 동남아에서 어글리 코리아 이미지가 여전한데, 바가지 씌울 의사가 전혀 없는 이들에게 팁은 고사하고 생필품을 거의 빼앗다시피 과하게 흥정하는 모습은 적절치 않았다는 생각이다. 흥정과 덤은 정찰제가 적용되지 않는 재래시장 같은 곳에서 손님과 상인간의 인간미를 확인하는 상거래인데 심혜진과 이문식은 이 프로의 제목처럼 지나치게 ‘용감했다’는 인상이다. 과연 미국이나 유럽의 마트에서 우리가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더욱 고개가 갸웃해진다.

이날 박명수의 의욕 과잉도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데 한몫했다. 막내 설현이 부모가 사온 달걀을 받는 과정에서 하나를 떨어뜨리자 외삼촌 박명수가 설현의 머리를 손으로 밀치며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서운함과 속상함에 북받친 설현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그녀를 달래는 가족들의 모습이 편집 없이 방송됐다. 보통 이런 장면은 두 출연자를 위해서라도 편집하는 게 맞지만 방송 분량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이런 MSG 에피소드가 절실해서인지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이날 ‘용감한 가족’을 보면서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금요일 심야 시간대를 위협적으로 공략중인 tvN과 MBC ‘나 혼자 산다’ SBS ‘웃찾사’에 맞서기 위해 이 프로를 신설한 것까진 좋았지만 어디서 본 듯한 설정과 고리타분한 편집, 자막으로 시청자를 되찾아오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1회 6.2%에서 4.9%로 떨어진 시청률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과도한 흥정과 삼촌의 조카 머리 가격으로 웃음을 유발할 생각이라면 이제 그만 용감해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이 프로의 타이틀이 왜 ‘용감한 가족’인지 잘 모르겠다.
bskim01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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