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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여군 1만명 시대, 별들은 성범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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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군사 엘리트와 성추행


▶ 김종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할 말은 하는 군사 전문가. 1993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과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방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별들의 암투를 지켜봤다. 권력과 군대가 독점하는 안보가 아닌 ‘진짜 안보’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 군사 전문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이다. ‘김종대의 군사’는 한 달에 한 번 연재된다.

우리나라 군 엘리트 장교단의 상태가 심각하다. 일선 부대의 지휘관으로 부임한 육사 출신 장교들이 부하를 상대로 한 성범죄와 추문의 당사자가 되면서부터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대표적인 군 실세로 손꼽히던 특전사령관 ㅊ중장(육사 36기)이 공관에서 여군 하사를 성추행해서 보직 해임되고 전역했다. 기가 막힌 건 ㅊ중장의 부인이 직장 내 성폭력을 교육하는 상담 전문가였다는 점이다. 사건이 벌어지자 ㅊ중장은 우울증 증세가 있는 여군 하사를 부인에게 상담을 받게 하기 위해 공관으로 불러들였다고 변명을 했다. 부인이 없을 때만 공관으로 여군 하사를 불러들인 이상한 상담이었다. 2014년 동기생 중 선두 그룹이던 17사단장 ㅅ소장(육사 40기)이 집무실에서 수차례 여군 하사를 성추행한 게 발각되어 긴급체포됐다. 이때도 ㅅ소장은 이미 다른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가 된 여군 하사를 위로하기 위해 집무실로 불러들였다고 변명했다. 그것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는 것은 여군 하사가 법원에 제출한 사단장과의 대화를 녹음한 기록으로 입증되었다. 게다가 성추행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여성을 이런 분야에 비전문가인 사단장이 뭘 위로했다는 것일까? 사단에는 중사 이상 간부가 1000명이다. 그런데 여군 하사 한 명을 다섯 차례나 불러 위로하는 사단장의 지나친 친절이 인상적이다.

헌병 병과의 황당한 음모론까지 나와

올해에는 전방 1군단 예하 기갑부대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근무를 마치고 지휘관으로 부임한 ㄱ대령(육사 47기)이 여군 하사에게 성폭행을 한 혐의로 긴급체포되었다. 여기서도 변명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것이지만 피해자 휴대전화에 남겨진 여단장의 메시지는 상급자가 부하에게 성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관계를 가질 것을 압박하는 내용이다. 이 압박에 부하가 굴복한 것이 그에게는 ‘상호 합의’였다. 게다가 이 사건은 다른 장교가 여군을 성추행하여 군 수사기관이 이를 수사하다가 여단장까지 성폭행을 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발견하게 된 일종의 인지수사의 결과였다. 영원히 알려지지 않았을 법한 이 사건에 대해 군 수사기관 관계자는 “상당 기간 철저한 조사로 사건을 준비했다”며 범죄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친다.

연이은 사건에서 가해자인 고급 지휘관들은 항상 이런 사건이 터지면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을 한다. 막상 재판이 열리면 자신의 무죄가 입증될 것이라며 호언장담하거나, 지휘관의 정상적인 활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다음으로는 육사 선후배들이 일제히 가해자를 비호하는 데 가세한다. 최근 군 안팎에서는 잘나가던 엘리트 장교들이 체포되거나 징계받는 데 대해 집단으로 저항하는 정서가 형성되고 있다. 필자가 접촉한 대다수의 육사 출신 전·현직 장교들은 가해자의 입장을 동정하며 여군의 행실이 바르지 않았다는 이유를 대며 책임을 전가한다. 그래도 안 되면 수사기관의 표적수사라는 음모론을 서슴지 않고 이야기한다. 지난해 장성 진급자가 나오지 않은 헌병 병과가 작전의 엘리트 장교들에게 보복하고 있다는 황당한 음모론도 확산돼 있다. 심지어 성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 대한 원망의 소리도 쏟아낸다. 심지어 일부 장교들은 “한 장관이 여성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엘리트 장교를 제물로 삼는 것이냐”며 노골적으로 막말을 한다. 그러면서도 성범죄가 일어난 이유를 묻는 필자에 대한 질문에는 대부분 “전방에서 외로워서”, “너무 부하를 사랑해서”, “전방에서 너무 무료해서”라며 가해자의 입장을 옹호하려고 한다. 29일 국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 특별위원회’(병영문화특위)에서 예비역 중장 출신인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이 “일을 열심히 하느라고 외박을 못 나간 엘리트 지휘관이 ‘하사 아가씨’에게 그 사정을 이야기 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섹스 문제가 있는) 전방 지휘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노골적으로 같은 육사 후배 장교를 편드는 발언이다. 이것이 지금 이 사건을 바라보는 가장 육사 출신다운 발언이다.

군대는 충성하는 집단이다. 경례에 충성 구호를 붙이고 충성 회식, 충성 축구, 충성 테니스로 집단의 단결을 과시한다. 술자리에선 지휘관에게 충성주가 바쳐진다. 부하들이 앞을 다투어 충성을 과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건 하급자들이 지휘관의 추천을 잘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군 조직에서는 상급 지휘관에게 한번 찍히기라도 하면 군대 생활에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고 상위 계급으로의 진출도 어려워진다. 지휘관을 즐겁게 하기 위해 술자리에선 지휘관 옆에는 항상 미모의 여군이 자리 잡는 게 보통이었다. 이런 관행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지휘관은 마치 자신이 왕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 부하들은 자신의 확장된 육신이자 식민지로 전락한다. 어느 순간 알딸딸한 느낌과 함께 도덕적 감수성이 서서히 마비되는 단계가 온다. 부하의 충성이 마치 자신에 대한 무한복종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여기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자신감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뱉어내기 시작한다. 영민하고 정의롭던 청년 장교가 지휘관이 되고 나서는 갑자기 이상한 일탈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외 식당이나 공관에서의 비공식적인 회식 자리에 여군을 불러 내 술시중을 들게 하는 일, 부하 부인에게 성추행을 하는 일도 벌어진다.

잘나가던 소장·중장 잇달아 낙마
사건 터질 때마다 앞뒤 안맞는 변명
무죄 입증될 거라 호언장담하거나
지휘관의 정상적 활동이라 주장
오히려 여군 행실에 책임을 전가

‘성범죄 신고’ 여군들 많아지며
은폐 사건들이 드러나는 양상
바야흐로 군에서 여성들에 의한
문화혁명 진행중이라 할 만한데
군 지휘관은 적응을 못하고 있다


부하 지휘를 넘어 ‘소유’하려는가

문제는 누구도 이것을 제지하거나 말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적인 지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보는 게 그간 군 지휘권에 대한 많은 군 엘리트들의 인식이었다. 군대는 지휘관을 중심으로 전투행동을 조직한다. 전시에 지휘관이 돌격하라면 죽을 줄 알면서도 돌격해야 한다. 여기에 어떤 예외나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군 조직이라면 지휘관에 대한 절대복종이야말로 전투력의 핵심이라고 본다. 이런 지휘관 중심의 문화가 엄정한 기강으로 포장되고 합리화된다. 그러나 지휘관의 절대적 권위가 적용될 때 공적 영역과 반대의 사적 영역의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임무 수행상의 엄격한 위계질서가 어느새 부하의 사적 영역을 마구 침범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여기서 군 지휘관은 부하를 ‘지휘’하는 수준을 넘어 ‘소유’하려고 한다. 여군을 상대로 한 범죄는 전방에서 지휘관이 외박을 못 나간 사정 때문이 아니라 부하는 ‘내 것’이라는 엘리트 장교단의 인간관에서 그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우리 군에 여군 정책이 본격화된 1990년대만 하더라도 일선 야전부대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사단 사령부 예하 단위부대에는 여군을 거의 배치하지 않았다. 무슨 사고가 터질지 몰라 상급 부대에 배치하고 직접 관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여군이라는 ‘보급품’은 “회식 이후엔 잘 돌려보내라”는 말이 당시 유행할 정도로 군에서 여군의 인격은 무시되고 있었다. 여군 전용 화장실이나 휴게실, 숙소가 갖춰지지 않았던 야전에 여군을 배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심지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여군에 대해서는 군인으로서의 사용가치가 종료된 것으로 보고 전역시켰다. 그래서 1990년대에 우리나라 최초로 여군 연대장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그 면면을 보면 전부가 독신이다. 그러나 2000년대를 넘어 이제는 여군 1만명 시대를 맞이하자 이제는 군 전체에 성 문제가 커다란 화두로 등장했다. 이제는 여군을 위한 임신복이 나올 정도로 여군에 대한 배려가 확산됐고 과거와 같은 노골적인 성차별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제왕적 권위에 익숙한 일부 군 지휘관들이 변화된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약자로서의 여성, 특히 군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초급 장교와 부사관 계층에 대한 사적인 욕망을 통제하지 못해 사고를 친다. 얼마 전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상관의 성관계 압박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오아무개 대위 사건에 대한 공판에서도 가해자는 오히려 당당했다. 왜? 군대는 원래 그랬기 때문이다.

여군을 상대로 한 군내 내 성폭행 범죄는 2010년 3건이었던 것이 2014년에는 16건으로 5배 늘었다. 그러나 작년에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가 여군 1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9명은 ‘성적 괴롭힘을 당해도 신고하거나 대응하지 않겠다’며 그 이유로 ‘집단 따돌림’(35.3%)과 ‘가해자 및 상관의 보복’(47%) ‘부대 전출’(17.7%) 등의 불이익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연이은 사건을 통해 군에서도 인권의식이 발전함에 따라 지휘관의 성범죄를 외부에 말하고 신고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은폐되곤 했던 사건이 서서히 드러나는 양상이다. 그것도 피해 여성들의 적극적인 진술과 증거 제시로 그 범죄적 양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바야흐로 군에서 여성들에 의한 문화혁명이 예고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전통적 사고에 길들여진 군 지휘관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와 분리된 그 도덕적 우월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의 엘리트 장교들은 스스로에 대한 도덕적 만족감이 매우 높은 집단이다. 필자가 전·현직 예비역 장성들과 대화하다 보면 대다수는 “우리가 일반 국민보다 애국심의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 아니냐”며 도덕적 우월감을 드러낸다. 이들에게 있어 양심과 도덕의 문제는 군의 엘리트 장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해결되어 있다. 따라서 성범죄에 연루된 일부 장교들의 일탈은 개인적 문제이고 행실이 나쁜 여군의 꼬임에 넘어간 단순한 실수일 뿐이지 자신들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오는 반론은 “일반 사회의 성범죄는 더 심각하지 않으냐”며 “군대만 욕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이 이제껏 이야기해온 신성한 국가안보란 자신들에 대한 도덕적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이데올로기로 발전한다. 그들은 전쟁을 수행하는 군사 전문집단이라는 직업의식을 초월하여 스스로를 특권으로 인식하는 하나의 도그마에 스스로를 감금시켜버렸다. 이렇게 갇힌 의식은 시민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장병들에게도 경악스러움 그 자체이지만 정작 그 자신들만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작년에 윤 일병 사건이 터지고 언론이 군을 일제히 질타하자 예비역 장성들 모임인 성우회의 한 간부는 “군을 와해시키려는 음모가 있다”고 했고, 아예 신문 광고를 내 “군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국민 여러분은 군에 대한 회초리를 거두라”고 적반하장으로 훈계하였다. 한 예비역 중장 출신의 여당 국회의원은 군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에게 “군에 다녀오지도 않은 사람이 군 인권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냐”며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육사 출신들이 똘똘 뭉쳐 군에 대한 도덕적 도전을 분쇄하고 육사 공동체의 이익을 수호하겠다는 결연함이 엿보인다. 이런 정서에 영향을 받는 엘리트 장교단이라면 국가안보에 대한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을 수 없다. 오히려 자기혁신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일종의 집단 사고에 빠져 있는 것 아닌지 의심이 생긴다. 이것은 군 정신을 대표하는 장교단의 직업정신이 붕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덕과 정의의 표상인 한국군 장교들의 군인다움, 즉 군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직업군인의 덕목으로 국가안보에 대한 책임성, 단체성, 규율성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직업군인의 덕목이 사회 공동체의 가치와 부합돼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군사 엘리트들은 사회에는 사회의 도덕이 있고 군대에는 군대의 도덕이 있다며 스스로를 사회와 분리한다. 이렇게 사회와 고립된 하나의 섬과 같은 폐쇄적 공동체가 된 군은 개인의 가치, 생명과 인권이 존중되는 현대 민주사회에서 서서히 떨어져나가고 있다. 너무나 변화의 속도가 빠른 사회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군은 과거의 군의 이미지를 군의 본질이라고 강변한다. 그 결과 전통적인 지배와 소유의 관념에 익숙한 군사 엘리트들은 사회와 공생하지 않고 사회에 기생하게 된다. 그 결과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고 군 전체의 위상이 추락하여 군 존립의 핵심인 국민의 신뢰가 붕괴되고 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국가안보의 가치까지 침해함으로써 군이 존재하는 목적까지 잠식하게 된다. 적어도 엘리트 장교들이라면 이 점을 인식하고 군의 미래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데, 막상 최근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한 감성적 불만을 앞세우는 우리 장교단에 대해 국민은 불안한 시선을 거두기 어렵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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