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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단독]윤동주 시인 70주기… 일본 후쿠오카에 시비 건립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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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흔적’은 역사를 말하는 존재”

“가해자라고 할 일본인 측에서 윤동주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으면 수십년 후, 후쿠오카의 땅에 윤동주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게 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윤동주가 차세대에게 기억되도록 남기고 싶습니다.”

일본 지식인들이 윤동주 시인(1917~1945)의 타계 70주기를 맞아 그가 숨진 후쿠오카 형무소 부지에 시비를 건립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 시비는 특히 문학적 차원의 추모와 위령을 넘어 식민지배의 역사적 과오를 뉘우치고 기억하자는 취지로 세워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경향신문

학자, 시인 등으로 구성돼 1994년부터 활동해온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은 최근 ‘후쿠오카에 윤동주의 시비를 세우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시비 건립취지문 ‘지금 왜 후쿠오카에 윤동주 시비를 짓는가-위령·기억·미래를 위해’에서 식민지배 가해자로서의 일본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그들에게 윤동주는 제국주의로 고통받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매개이고, 시비는 “시간을 초월해 후세의 사람들에게도 역사를 말하는 존재”다. “우리는 윤동주를 한 상징적 인물로 삼아 당시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까다로운 조건에서 일했거나 어려운 고통을 거쳐야 했던 분들, 불합리한 민족적 차별을 받거나 상처를 받고 목숨을 잃으신 분들, 그런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에 대해 당연히 마음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의 고난의 역사를 미래에 전한다는 의미도 이 시비에 담고 싶습니다.” 시비 건립자들은 나아가 “독일에서는 갖가지 경종비와 기념비가 만들어지고 역사를 생각하고 기록하고 반성하는 자리가 있다”며 과거사 청산에 관해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기도 했다.

시비 건립모임 발기인은 오무라 마쓰오 와세다대 명예교수, 니시오카 겐지 후쿠오카대 명예교수 등 10여명으로 대부분 한국문학 연구자들이다. 오무라 교수는 중국 옌볜의 윤동주 묘소를 처음 발견한 인물이고, 니시오카 교수는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을 결성했다.

시 읽는 모임은 20년간 매월 빠지지 않고 열렸으며, 후쿠오카 형무소와 담을 맞댄 공원에서 윤동주 기일인 2월16일쯤에 위령제도 지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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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교토 도시샤 대학과 용정 옛 대성중학교 건물에 있는 윤동주 시비.


현재 일본 내 윤동주 시비는 그가 다닌 교토 도시샤대에 1기가 세워져 있다. 윤동주 50주기인 1995년 세워졌다.

도시샤대 시비, 그에 이은 이번 시비 건립은 원로 문학평론가 김우종씨(86)가 1994년 도시샤대와 후쿠오카 형무소를 답사한 게 계기가 됐다. 김 평론가는 29일 “형무소의 높은 담벼락을 쳐다보는데 울컥 눈물이 났다. 그때 니시오카 교수에게 ‘내년에는 윤동주가 죽은 날 여기 와서 제사를 지내겠다’고 했더니 신문에 알리자고 해 추모제가 됐다”고 밝혔다. “원래 도시샤대에서 시비 세우는 걸 허락하지 않았어요. 일본 근대사에 공헌한 유명인사들이 많지만 한번도 기념비를 세운 일이 없고, 윤동주는 졸업생도 아닌데 그럴 수 없다는 거였죠. 하지만 여론에 따라 결국 세워졌죠.”

후쿠오카의 일본인들이 윤동주의 시 읽는 모임을 만들고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게 된 것도 그 직후다. 일본 지식인들이 “우리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뜻을 모으면서다.

윤동주는 릿쿄대를 거쳐 도시샤대에서 공부하다 항일운동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징역형을 선고받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던 중 1945년 해방을 앞두고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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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윤동주 시비.


후쿠오카 시비 건립 발기문은 윤동주가 사망한 이후에 대해서도 적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사후 아버지 앞으로 ‘16일 사망. 시체 찾으러 오라’는 전보가 도착했답니다. 아들의 죽음을 통보받은 윤영석씨는 당시 만주 룽징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한반도를 넘어 먼 여행을 한 아버지는 후쿠오카로 찾아와 아들의 유골을 안고 돌아갔습니다. 추운 2월이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마음을 상상하면 우리는 말을 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윤동주 아버지가 아들을 일본에 유학시킨 건 “일족의 빛나는 별이었던 윤동주가 일본의 식민지를 벗어난 새 시대에 반드시 중요한 역군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일제는) 그 희망을 앗아간 것”이라고 적었다.

한편 윤동주 시인의 유품·유고를 일본 3개 도시에서 순회전시하는 ‘시인 윤동주 70주기 기념 후쿠오카, 교토, 도쿄 순회전시회’가 2월5~25일 열린다. 순회전은 릿교대 시인 윤동주 기념회와 후쿠오카 윤동주 시낭독 모임, 도시샤대 코리아동창회 윤동주 추모회 등이 주최하고 연세대가 후원한다.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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