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취재파일] "같이 스터디해요" 직접 가 보니…"현직자입니다 돈을 내세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직 제 주변엔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선후배 또는 친구들이 꽤 있습니다. ‘취업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자신의 신분을 취업준비생으로 규정한 순간부터 이른바 ‘취준생’으로서의 스트레스가 시작되는데요, 스무 개가 넘는 회사에 지원을 하는 건 요즘엔 그야말로 예삿일인데, 지원 서류를 제출하고,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낙방 소식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 ‘이 넓은 세상에서 나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합니다. 남들보다 한 가지라도 더 나은 자신만의 ‘무기’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에 학원이며 스터디를 찾아 알차게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게 바로 모든 취준생들이 가진 마음일 겁니다.

그런 취준생들이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본 중에 기본이 바로 스터디입니다. 스터디는 주로 자기소개서를 쓴 뒤 서로 첨삭해주거나 면접 대비를 함께 하고, 사전에 기업 분석을 하거나 인적성 시험 문제를 함께 풀어보면서 서로를 다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식으로 운영됩니다. 유명 인터넷 취업 카페의 스터디 모집 코너는, 함께 스터디를 할 사람을 찾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올 정도입니다. 혼자 준비하는 것보다는 많은 정보를 교류할 수 있고 또 어느 정도 마음을 의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부분의 취준생들은 하나 이상의 스터디에 참여하는 추세입니다.

● ‘스터디’가 아닌 ‘강의’… 결국엔 흐지부지

지난해, 대학생 정모 씨 역시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며 스터디를 알아봤습니다. 한 유명 인터넷 취업 카페에 올라온 스터디 모집글을 보고 스터디에 지원했는데요, 시간과 약속을 함께 정하는데 웬걸, 돈을 요구하더랍니다. 취준생들끼리 모여 스터디를 하는데 누구에게 돈을 내느냐고요? 그 스터디를 모집하고 이끌어나가는 사람, 바로 ‘현직자’였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을 포함해 7번에 걸쳐 스터디를 진행하는데 모두 10만 원을 달라고 한 겁니다.

사실상 스터디가 아니라 강의인 셈인데요, 취준생 입장에서 현직자와의 만남이 얻기 쉬운 기회는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자신이 취업하고자 하는 특정 회사나 적어도 해당 분야에 속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현직자라면 더더군다나 말이죠. 정씨도 그렇게 처음엔 그렇게 비용을 부담하기로 마음먹고 스터디에 참여했습니다. 현직자가 다니고 있다는 회사 건물에서 스터디가 이뤄졌고, 사무실에서 직접 자료를 복사하기도 했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총 7번에 걸친 수업 형태로 스터디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오리엔테이션을 포함해 정씨는 수업에 3번만 참석하고 스터디를 그만뒀습니다. 수업이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일이 있다며 바쁘다는 현직자 때문에, 차일피일 수업 시간이 미뤄지고, 그러다 보니 취준생들만 모여 스터디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결국 정씨는 이렇게 부실하게 운영되는 스터디에 돈과 시간을 빼앗기느니 취준생들끼리 모여 알차게 스터디를 해 나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터디를 그만두게 됐습니다.

왜 취준생들을 대상으로 한 스터디를 시작하게 됐는지, 이렇게 직장생활 외에 따로 가욋돈을 버는 게 문제는 없는지, 그 현직자가 스터디를 통해 얻으려 한 것은 무엇인지 등등 궁금한 게 많았습니다. 연락이 닿은 그 현직자는 자신 본연의 업무와 연관이 있어 취업스터디를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스터디를 운영한 게 회사 내부에서 다소 문제가 돼 새로운 스터디를 모집하지는 않고 지금 운영 중인 스터디만 끝내고 마무리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스터디룸 대여 명목으로 비용을 받긴 하지만, 회식비나 수업 도중 음료수, 간식 등을 제공하는 데 사용해, 스터디에 참여하는 취준생들에게 사실상 그 비용은 그대로 돌려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스터디가 부실하게 운영됐다는 측면에 대해선, 수업이 잘 이뤄지지 않은 부분은 추가로 보완을 하고 있고 스터디 인원 전체가 동일한 시간에 한꺼번에 보충하기에는 각자 시간상 어려움이 있어 개별 보강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해당 회사 측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 해당 회사 측에 확인을 했을 땐 이 이름을 가진 직원이 없다는 답을 들었는데요, 재차 확인을 하자 그 사람이 회사 측과 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개인사업자 지위에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엄격한 의미에서의 직원은 아니라고 회사 측은 선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이미 회사 내부에서도 문제로 불거져서 ‘이 회사 직원’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하지 말 것, 그리고 ‘이 스터디만 하면 이 회사에 붙을 수 있다’는 식의 홍보를 하지 말 것 등을 지적했고 해당 직원이 이 문제를 개선했다는 입장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터디에 참여했던 정씨는 말합니다. ‘그 회사 이름을 달고 영업을 하고 상품을 파는 사람들이라면 직원으로 보는 게 맞는 것 아니냐, 또 그 이름을 팔아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데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회사는 그것을 그냥 내버려두겠다는 것이냐, 이해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직접 가본 취업스터디…1번 수업에 4만 원

이런 일이 많을까. 저 역시 인터넷 취업 카페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평범해 보이는 글을 하나 클릭했습니다. ‘2015년 상반기 대비 취업스터디 모집합니다’라는 글이었습니다. 상반기 취업을 목표로 함께 준비하는 취업스터디이고, 현직자와 함께 얘기를 나눠보는 시간도 가질 것이며,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열정을 가진 분들만 지원을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스터디를 할 구체적인 장소나 일시는 추후에 확정한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수업료나 장소 대여에 관한 비용 등에 대해서는 다른 언급이 없었기에 여타 글들과 눈에 띄게 위화감이 있진 않았습니다. 스터디를 하고 싶다고 연락했더니 당초 공지와는 다른 답이 돌아왔습니다. ‘원래 생각했던 장소는 좋은 곳이 없고 현직자 분이 원치 않아 부득이 장소를 옮기게 됐다’는 답이었습니다. 또 장소 마련 비용과 현직자 초청 비용 5천 원을 우선 입금해 달라는 답이 왔습니다.

첫 스터디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예닐곱 명의 취준생들이 그 시간에 함께했습니다. 자리에 나타난 ‘현직자’는 이런 강의에 굉장히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띄워 놓고 화이트보드에서 필기를 하며 강의를 했습니다.

“대기업 인사 커뮤니티들이 많이 있는데, 거기서 제가 제의를 했었죠. 먼저 취업한 친구들이 나중에 취업할 친구들 위해서 멘토링 해주는 게 어떠냐. 그렇게 해서 7명이서 시작했던 게 2년 전이죠.”

어느 회사 어느 직군에 다니고 있는 누구인지는 다음 스터디 시간에 이야기해주겠다는 말과 함께, 첫 오리엔테이션 시간은 자기소개서 입문반, 심화반, 면접반 등으로 구성된 커리큘럼을 소개하는 것과 기업의 각종 직군을 소개하는 데 할애됐습니다. 그리고 스터디 말미에,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돈’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실 분들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비용이 좀 발생하는 측면이 있어요. 이게 난 항상 말할 때 너무 미안한데, 우린 횟수로 받아요. ‘한번에 다 내세요’ 이런 뜻이 아닌 게, 마음에 안 들면 얼마든지 내지 말라는 거에요. 돌려달라면 다 돌려줄 테니까. 우리 회당 딱 4만 원. 부담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해요. 어떻게 보면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는 게 현직자들이잖아요, 우리. 평일 날에도 ‘과제 데이’라고 해서 불러 놓고 회사 끝내고 와서 얘기하고 만드는 시간이다 보니까. 친구들한테 미안한데 비용이 좀 많이 들더라고요. 재능 기부 차원에서 하려고 했지만 좀 미안한데….”

2시간 남짓의 수업 1회당 이 현직자는 4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매 스터디가 끝나고 이틀이 지나면 항상 문자가 자동 발송됐습니다. 스터디 비용을 입금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 수업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학원 수업처럼 공식적인 시간표가 고지된 게 아니라 그때그때 유동적으로 일정이 바뀌었습니다. 그 다음 시간, 한 대기업 인사팀 소속이라는 현직자가 오늘은 회사 일이 있어 안 된다고 하기도 했고, 혹은 그에 따라 갑작스레 바뀐 일정엔 스터디원들의 참석이 힘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일정을 맞추던 끝에 다른 반에 더부살이로 참석하게 된 두 번째 수업. 주제는 자기소개서 작성 방법이었습니다. 많은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다며, 체계적인 자기소개서란 어떤 것인지 작성하는 요령을 강의했습니다. ‘진실만 써서는 합격할 수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SBS

● 진짜 ‘그 회사 현직자’ 맞나요?

스터디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변동이 생기는 일정을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다른 스터디원들에게 혹시나 더 방해가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현직자가 다닌다는 회사 측에 문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회사에서 이 사람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전 계열사에 걸쳐 그런 이름의 직원은 있지만, 현직자가 스터디 자리에서 말했던, 자신이 다닌다던 그 직무와는 전혀 다른 부서에 있는 사람들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현직자에게 직접 설명을 듣고 싶었습니다. 취재를 하고 싶다고 밝히고 접촉을 했지만 회의 중이라 나중에 연락을 달라는 답을 들었고, 그 뒤로는 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수업하는 방식이나 장소, 모집 방법 등을 더 자세하게 밝히지 않고 또 이 글을 쓰면서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는 건, 수업을 계속해서 듣고 있는 취준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현직자가 운영하는 강의식 스터디가 얼마나 많은지는 추산할 수 없는 상황이고, 사람이나 프로그램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도 있습니다. 취준생들이 그 프로그램에 정말 만족해서, 상호 동의하에 한쪽은 돈을 내고 수업을 듣고, 또 한쪽은 돈을 받고 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취재를 계속하면서 과연 이런 방식의 스터디를 함부로 비판하거나 나무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취재를 진행하는 내내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았습니다. 실제로 많은 취업스터디 인터넷 카페들에선 누구 한 사람의 ‘강의 형태’ 혹은 ‘유료 스터디’ 모집 자체를 애초에 금지합니다. 커뮤니티와 스터디 자체가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고, 그 자체를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공부하는 ‘스터디’로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섭니다.

그런 사실을 숨긴 채 모집글을 올리고, 자리에 온 취준생들에게 이 프로그램 대로 하면 좋은 곳에 취업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약속을 하는 모습, 나아가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려 하는 모습 자체가 바람직하진 않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다녀온 스터디의 경우처럼, 스터디에 참여하는 현직자의 신분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생겨날 수 있고요. (참고로,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직접 갔던 스터디의 경우 해당 회사 임직원이 이런 식으로 다른 부수입을 올리더라도 그 자체로 내부에서 문제를 삼기란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이 일로 인해 피해자-돈을 떼인다거나-가 나오고, 그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사람이므로 내규에 따라 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그 반대 급부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받는다면 손가락질을 할 여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 곱씹어보건대 저에게 씁쓸함이 남은 이유는, 이런 형태의 스터디가 취업을 아직 하지 못한 준비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알 수 없는 위축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습니다.

[박하정 기자 parkhj@sbs.co.kr]

[SBS기자들의 생생한 취재현장 뒷이야기 '취재파일']

☞ SBS뉴스 공식 SNS [SBS8News 트위터] [페이스북]

저작권자 SBS & SBS콘텐츠허브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