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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월드리포트] '종말' 대신 '죽음' 택한 일가족…넉 달 만에 밝혀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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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지난해 9월 27일, 미국 유타 주의 소도시 스프링빌에서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침실 안에서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된 겁니다. 어머니와 세 아이는 침대에 누워 숨져 있었는데 모두 얼굴까지 모포가 덮인 상태였고, 아버지는 침대 옆에 모포 없이 쓰러져 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 가에는 약병이 하나 발견됐는데 메타돈이라는 약품과 감기약이 섞여 있었습니다. 경찰은 일단 일가족이 음독 자살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였습니다. 그로부터 넉 달이 흐른 어제(현지시간 27일) 사건의 전말이 경찰 발표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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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사람은 벤자민과 크리스티 부부 그리고 그들의 11살, 12살, 14살 된 자녀들이었습니다. 경찰은 아버지 벤자민만 모포를 뒤집어쓰지 않은 것으로 봐서 가장 늦게 숨진 것으로 봤습니다. 벤자민과 크리스티 부부는 11살과 12살 두 자녀에게 약을 먹여 숨지게 했고, 14살 된 아들과 어머니 크리스티는 스스로 약을 먹었으며, 이들이 모두 숨진 뒤 아버지 벤자민이 이들을 가지런히 누이고 모포를 씌운 뒤 자신도 음독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이웃들은 이들 가족이 매우 화목했고 또 외형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이유가 없었다고 한결같이 증언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들은 왜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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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숨진 14살 아들 벤슨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절친한 친구에게 쓴 작별 편지였는데 자기의 모든 소유물을 그 친구에게 남긴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벤자민과 크리스티 부부가 남겨 놓은 노트에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과 애완동물에게 먹이를 주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일가족의 죽음을 발견한 사람은 벤자민의 장남과 벤자민의 할머니입니다. 벤자민의 장남은 전처 소생의 아들로 벤자민 가족과 함께 살지 않았기에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 집을 방문했다가 이들 일가족의 죽음을 발견한 할머니가 마당에 뛰어나와 비명을 질렀고, 이를 들은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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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오래된 편지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크리스티와 댄 레퍼티라는 남성과 주고받은 편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티와 레퍼티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습니다. 댄 래퍼티는 형인 론과 함께 1984년 형수와 15살 된 질녀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수감자였습니다.

형 론은 이뿐 아니라 처제와 처제의 딸까지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책 ‘하늘의 기치아래 (Under the Banner of Haven)’를 읽은 크리스티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래퍼티와 서신을 교환하면서 래퍼티와 점점 친숙해져 갔습니다.

크리스티는 래퍼티 형제와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우정을 쌓아갔습니다. “래퍼티는 마치 자기 딸과 대화를 나누듯이 크리스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래퍼티는 형무소에서 숨지게 되면 남은 재산을 모두 이들 부부에게 상속되도록 했습니다.” 담당 형사 카슨의 설명입니다. 래퍼티 형제와 서신을 주고 받으면서 벤자민과 크리스티 부부는 정신적으로 서서히 왜곡돼 갔던 것으로 경찰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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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이들 가족과 친한 사람들을 하나둘씩 만나면서 이들 가족이 왜 죽음을 택했는지에 대한 정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벤자민과 크리스티 부부는 세상 도처에 깔려 있는 악(evil)에 대해 걱정이 심했어요. 그리고 종말이 멀지 않았다면서 이 종말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말을 종종 했어요.”

이뿐이 아닙니다. “벤자민은 전기나 상하수도가 없는 외딴곳으로 멀리 떠나서 살아야겠다는 말을 가끔씩 하곤 했어요. 어찌 보면, 그들 가족의 죽음은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벤자민의 형은 “동생과 동생의 가족의 죽음은 우리 모든 친척들에게 마음 아픈 일이겠지만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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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총기로 수백 명씩 숨지는 미국, 게다가 경제적인 풍요와 함께 커가는 빈부 격차와 박탈감, 그런 복합적인 사회적 병리들이 얽혀 개인과 가족의 정신적 왜곡을 만들어내는 현실,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엽기적인 사건들, 바로 가장 문명화됐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미국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박병일 기자 cokkiri@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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