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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환자 성폭행' 의사, 다른 병원서 태연히 근무…"규정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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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 의료 면허 취소 관련법 규정 없어…"내부 징계도 어렵다"]

머니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 내과의사 A씨는 2007년 5월 경남 통영의 한 내과의원에서 수면 내시경검사를 받으러온 여성에게 진통제와 최면진정제 등을 투약한 뒤 성폭행했다. A씨는 간호사들이 검사실에서 나간 것을 확인하고 수면상태에 빠져있던 여성에 전신마취제를 투여해 깊은 수면상태로 유도한 뒤 환자복을 벗겨 성폭행한 것. A씨는 같은해 6월 2차례에 걸쳐 같은 수법으로 여성들을 간음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A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형사처벌을 받은 뒤에도 의사면허를 유지한 채 지방 소재 모 요양병원 등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의사 B씨는 2012년 11월 서울 강남구 한 클럽에서 만난 여성을 집으로 데려와 게임을 하면서 향정신성의약품 졸피뎀 성분이 든 수면유도제를 넣은 술을 연거푸 마시게 한 뒤 성폭행했다. 한 달 뒤 대화형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알게 된 다른 여성을 집으로 초대해 같은 수법으로 성폭행하기도 했다. B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의사 면허가 유지돼 향후 의료행위를 계속할 수 있다.

성범죄를 일으키고 형사처벌을 받은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이어가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의료행위가 생명을 다루는 등 강도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범행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면허취소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8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제공받은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의료인 등에 의해 발생한 성범죄 발생건수는 2010년 151건을 시작으로 2011년 138건, 2012년 134건 등 100여건이 이상이 꾸준히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범행을 방지하기 위해 형사처벌을 받은 의료인들에 대해 자동적으로 면허 취소를 하는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의료법 제8조에는 의료인의 결격사유로서 허위진단서작성과 낙태, 사기, 환자의 비밀누설로 형사처벌을 받은 자는 규정하고 있으나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포함하지 않고 있다.

법무법인 한길의 문정구 변호사는 "의료법상 의료인의 자격과 결격사유로서 현행법상의 한정된 범죄 이외에 업무상 관련 있는 성범죄나 의료과실 범죄를 포함시키거나 형사처벌을 받아 의료인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킨 경우 의료인 자격 상실이 가능하도록 법률상 근거 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2012년 개정된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에 따르면 성범죄자의 경우 10년 간 의료기관과 어린이집, 각종 학교 등 관련시설 운영과 취업이 제한되지만 벌금형이 제외되고 소급적용이 안되며 영구적 자격 상실이 아닌 기간으로 한정하는 등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소재 성형외과 전문의 C씨는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만큼 어느 직종보다 윤리의식이 강조된다"며 "이같은 사건 사고가 반복되는 동안 국민들에게 의사들의 신뢰만 추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의사단체에 징계권을 주고 자정작용을 높는 게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의료계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가 폐쇄적인만큼 내부고발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한 진료과정 성희롱 예방기준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 결과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의사협회에서 영구적 의사 자격증 박탈이 가능하고 전국의료인정보은행에 저장돼 고용주에게 모두 공개한다.

황규석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전 윤리의사는 "수면 후 성폭행 등은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등 혐의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우나 의료계에선 이같은 범행 사실에 대한 정보가 쉽게 공유된다"며 "의료인에 대한 징계는 의료인이 하게 하는 제도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 면허를 정지·취소하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자체 징계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사가 의사를 처벌하는 제도가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신고가 들어와야 검토가 가능하고 이후 징계 여부를 결정할텐데 복지부가 나서서 의사 면허를 박탈하기는 어렵지 않나"며 "구체적인 증거 없이 의혹만 가지고는 징계를 했다가 행정소송에서 패소하는 등 비용 부담이 생긴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의사단체의 수사력을 한계로 지적하며 의사단체의 고발만으론 충분치 않다는 설명이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관계자는 "복지부가 신고 시 혐의를 완전히 입증하는 수준을 요구한다"며 "의사들은 수사권이 없어 해당 의사의 비위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조치할 방법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원광 기자 demi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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