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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아시안컵 드라마 쓰는 '슈틸리케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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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한 팀워크로 27년 만의 결승 진출 이끌어]

독일어 능통한 차두리·손흥민… 감독과 바로 대화, 농담도 나눠

기성용도 영어로 '다이렉트 소통'

차세대 수문장 김진현 무실점, 전격 발탁 이정협도 2골 활약

신태용·박건하·아르무아 코치 등 뒤에서 슈틸리케 '손과 발' 역할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선수 21명(이청용·구자철은 부상으로 제외)과 코치 4명, 통역·의무팀, 홍보팀 스태프까지 30명이 넘는 '대가족'이다. 27년 만의 아시안컵 결승 진출로 신바람을 내는 '슈틸리케의 사람들'을 들여다봤다.

해외파는 직거래파

독일인인 슈틸리케 감독과 독일어로 자유롭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선수는 차두리(서울)와 손흥민(레버쿠젠)이다. 차두리는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고, 손흥민도 독일에서 생활한 지가 올해로 8년째이다.

'직거래파(派)'로 꼽히는 차두리와 손흥민은 굳이 통역을 거칠 필요가 없다. 감독 앞에 서면 굳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둘은 스스럼없이 감독과 농담을 주고받는다.

조선일보

슈틸리케 감독은 손흥민이 지난 10일 오만전 이후 감기에 걸려 열이 잔뜩 난 걸 보고 "흥민, 사실 내일 뛸 수 있는 거지?"라며 농담을 했다고 한다. 훈련장에선 차두리가 이따금 슈틸리케 감독의 통역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기성용(스완지시티)은 슈틸리케 감독이 실력과 리더십 면에서 가장 신뢰를 보내는 선수다. 작년 한국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하며 기성용에게 첫 주장 임무를 맡긴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또 한 번 기성용에게 주장을 맡겼다. 기성용 역시 통역이 필요 없다. 둘은 영어로 의견을 나눈다. 우즈베키스탄과 치른 8강전에서 기성용은 연장전 도중 슈틸리케 감독에게 다가가 중앙에서 측면으로 자기 포지션을 바꾸겠다고 먼저 요청했다. 웬만한 신뢰 관계가 아니고서는 나오기 어려운 장면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훈련 때 가장 많이 쓰는 말도 기성용을 부르며 외치는 '캡틴(captain·주장)' 혹은 '카피탄(capitán ·스페인어로 주장)이다.

슈틸리케의 아이들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과 이정협(상주 상무)은 슈틸리케호(號)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그동안 A매치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김진현을 주전 수문장으로 낙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김진현은 아시안컵에서 4경기 무실점을 이어가며 한국의 차세대 넘버원 수문장으로 떠올랐다.

슈틸리케 감독은 7세 때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해 골키퍼 포지션에 대한 이해가 높다. 그는 평소 "현대 축구에선 골키퍼가 공격 전개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K리그에서도 백업 선수였던 이정협은 슈틸리케 감독이 만들어낸 '히트 상품'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국내 축구계의 의아한 반응을 뒤로하고 전격 발탁한 이정협은 이번 대회에서 2골 1도움으로 팀 내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 중이다. 이정협은 "감독님이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마음껏 네가 가진 걸 보여주면 된다'고 용기를 주셔서 자신감을 갖고 뛸 수 있었다"고 했다.

'황태자'로 통하는 남태희(레퀴야)는 한때 슈틸리케 감독과 이웃이었다. 슈틸리케는 부임 직후 "카타르 리그에서 지도자를 할 당시 남태희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어 한국 감독 제의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결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사단은 누구?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 일을 해본 축구인들은 그를 '똑·게형 리더'라 평가한다. '똑똑하면서 게으른 리더'의 줄임말로 빈틈없이 지시를 내리지만 나머지는 아랫사람에게 맡긴다는 뜻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훈련을 시작하면 처음엔 그라운드를 돌아다니며 큰 방향을 잡아주지만 나머지는 코치에게 일임할 정도로 역할 분담을 강조한다.

대표팀 내 '2인자'는 신태용 코치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하기 전 감독 대행을 지낸 신 코치는 호주에서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대회에서 '큰형' 역할을 하고 있다. 주로 공격 전술에 관여하는 박건하 코치는 오랫동안 대표팀에 있어 선수들의 면면을 잘 안다. 그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선수들의 분위기나 컨디션 등을 주로 전달한다.

슈틸리케 감독을 최근 6년간 보좌해온 카를로스 아르무아(아르헨티나) 코치는 피지컬(체력) 담당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르무아 코치를 위해 공식 석상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할 정도로 그를 배려한다. 아르무아 코치는 66세로 슈틸리케 감독보다 나이가 많지만 앞에 나서는 법이 없다. 감기몸살을 앓았던 손흥민을 다시 경기에 투입할 때 슈틸리케 감독은 아르무아 코치의 견해를 비중 있게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캐슬(호주)=최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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