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패권의식·비밀주의 결별하고 지역주민 곁으로 가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심층 리포트] 진보정당 15년, 위기와 기회 ③ 미래 - 낮고 넓고 깊은 진보로

전문가 10인이 말하는 ‘진보정당이 나아갈 길’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결정 이후 진보정당들은 새판짜기 국면으로 들어섰다. 진보정당의 전망에 대해 전문가 10명에게 의견을 물어본 결과, “주체의 역량은 부족하지만, 기회는 열려 있다”는 답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그러나 “현재의 진보정당으로는 앞으로도 어렵다”는 것도 공통의 지적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2년 동안 더 피폐해진 서민들의 삶이 진보정당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잠재적 지지층이 늘었음에도, 진보정당이 쇠퇴해온 것은 진보정당들이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주제에 집착하고, 전략·정책·조직 등에서 역량 부족을 드러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책 능력 강화
제2의 무상보육·부유세 같은
시대 이끌 정책 제시 필요

변화와 세대교체
말 한마디부터 달라져야
활력 불어넣을 새인물 육성 시급

풀뿌리로 돌아가라
진보 담론 고민하며 현장 뛰어야
지역네트워크 만들기 중요

종북논란 청산
세습정권 등 북한 문제
대중 앞에서 분명히 지적을


■ “무너진 정책, 조직 인프라 다시 구축해야”

2003년 민주노동당은 원외정당이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부유세’를 들고나왔다. 황당무계하다고 여겨지던 이 정책은 똑같지는 않지만 이후 ‘부자증세’ 논의로 이젠 보편화된 주제가 됐다. 당시 민주노동당 정책부장으로 일했던 김정진 변호사는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당 정책 인력의 수는 예전의 반도 안 된다. 지금이라도 인력을 확충하고, 민생복지를 강화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부유세, 무상교육 등 ‘빛나는’ 정책이 쏟아진 10년 전 민주노동당의 정책 인력은 50여명이었다. 현재 정의당의 정책 인력은 10명이 채 안 된다. 정책역량 고갈은 진보정당만의 책임은 아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현재 지식인 사회의 실천과 진보정당 정책입안 능력이 동시에 줄어들면서 진보정당 정책 생태계가 죽어가고 있다”며 “풀뿌리가 든든한 진보가 되려면 진보정당과 시민사회가 함께 전문적인 정책네트워크를 꾸리는 데 다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을 대중화할 수 있는 노력과 능력도 부족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정책의 옳음에 머물지 말고 정책을 시민적 의제로 대중화시키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며 “시민, 노동자와 만나 대중적 정책활동을 펴야 한다. 그래야 신뢰를 얻고 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10년 동안 정책역량 감소만 말하지만 실제로는 2010년 지방정치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이래로 주민참여예산제 등 창조적 실험에 성공했다. 그것을 자신의 성과로 가져오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략적 측면에서의 각성도 요구됐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마이너리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정답보다는 해법을 찾으려고 해야 한다”며 “선명성 기치에만 갇혀 있다 보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존을 위해 전략적으로 선거제도 개편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진보정당이 올해 선거구 획정을 계기로 (소수정당이 원내에 진출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에 힘을 모아야 한다”며 “선거제도 개혁이 풀뿌리의 문제임과 동시에 먹고사는 문제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헌신의 자세만 남기고 모든 것 바꿔야”…절박한 세대교체

진보를 표방해온 정당이 당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점도 문제다.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처럼 검증받지 않은 일부 세력이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식으로 당권을 장악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진보정당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진보정당 역사의 퇴행을 불러온 2008, 2012년 분당은 당내의 ‘종북’이 아니라 (당권 장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패권적 태도가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진보정당 출신의 박용진 전 새정치민주연합 홍보위원장은 “민노당 시절부터 경기동부연합 쪽 사람들이 패권주의적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만큼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 없었던 것”이라며 “결국 분열로 평등파(노회찬, 심상정 중심)라는 브레이크를 제거해 과속질주하다 사고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전근대적인 방식과는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말 한마디부터 달라진 느낌을 줘야 한다. 이름만 바꿔서 나오면 실패는 자명하다”며 “자신들만의 온정주의, 비밀주의 등과 결별하고 당 활동은 투명하고 유권자들의 상식에 기반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로운 인물이 없는 상황도 문제다. 노회찬·심상정·조승수 등 기존 진보정당을 대표해온 정치인들이 다시 전면에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용진 전 홍보위원장은 “진보정치가 고인 물로 가고 있다. 독자노선을 걸으려면 지금이라도 젊은 세력을 키워야 한다”며 기존 지도부의 세대교체를 촉구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반대로 동원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그동안 일궈온 ‘노회찬·심상정’이라는 대중적 간판스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진보정당의 계속된 분열은 세대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서복경 연구위원은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이 여전히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은 조직을 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세대교체 실패는 진보정당 분열 과정의 결과”라며 “세대교체를 위해 당원·정당활동가 육성 시스템을 다시 구축해 전통적인 정당 라인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도 안희정, 이광재 등의 보좌진이 정치적으로 성장하면서 힘을 얻었다”며 “심상정, 노회찬도 이제는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 새판짜기에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야 활력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 “풀뿌리로 돌아가야”

풀뿌리 조직에서 살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최근 녹색당이 들고나온 풀뿌리 정당이나 서울 마포구의 ‘마포파티’, 경기 과천시의 ‘과천 풀뿌리’, 경남 진주시의 ‘진주같이’ 등처럼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정치공간이 진보정당의 새로운 근거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진 변호사는 “현재의 무상급식 이슈는 2003년 전남지역에서 6개월 동안 5만명의 서명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급식사고가 많아 지역 풀뿌리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의견이 모이면서 정책으로 만들어졌고, 상가임대차보호법도 비슷한 시기 지역 상인조직과 함께 만든 것”이라며 “이렇듯 진보의 담론과 현장의 목소리, 정당 내부의 정책입안 역량이 함께 어우러지는 현장을 풀뿌리부터 재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건호 위원장은 “기존에는 노동조합, 농민조직이 중심이 돼 진보정당을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이 풀뿌리가 되어야 한다. 이를 기준으로 지역네트워크, 마을 공동체 만들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종북주의 청산, 북한에 대한 태도 정립은 필수”

북한에 대한 태도 정립은 풀어야 할 과제다. 전문가들은 평화·통일 관점에서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모호한 태도로 북한의 3대 세습, 핵 개발, 인권 등의 원칙 문제를 에둘러 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정당해산의 근거가 된 종북주의는 대중정당이라는 기준에서나 진보정당의 기준 두가지 모두에서 다 해소돼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지금 가장 시급한 건 북한에 대한 태도”라며 “대중정당이라면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국민들이 느끼는 실제 감정을 담아내야 한다. 진보정당은 진보라는 원칙적 기준에서 북한의 3대 세습 정권이 퇴행적이라는 것을 대중 앞에 분명히 밝히고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한 한국적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건호 위원장은 “북한에 대해서는 보편적인 민주주의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면 된다. 통합진보당은 정치활동을 재개한다면 북한에 대해 독립적이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

하어영 이승준 기자 haha@hani.co.kr

공식 SNS [통하니] [트위터] [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 [한겨레21]

한겨레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