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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핀테크 반쪽 대책…‘銀産분리’ 완화가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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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정부가 상반기 안에 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 가이드라인을 내놓기로 했다. 핀테크 서비스가 나오기 전부터 시어머니처럼 시시콜콜 간섭하던 ‘사전 규제’ 패러다임을 ‘사후 규제’ 형식으로 대폭 바꾼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스타트업의 창업 문호를 넓히기 위해 업종별로 최소자본금 요건도 절반가량 낮추기로 했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숙원 과제인 은산분리(산업의 은행 소유 금지) 규제 완화에 대한 입장은 빠져 알맹이가 없는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 정도로는 인터넷전문은행에 뛰어들 IT업체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융위원회는 27일 ‘IT·금융 융합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핀테크 산업 육성에 본격 나서기로 했다. 오프라인 위주로 짜인 금융제도를 온라인·모바일 시대에 맞게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를 위해 상반기 인터넷전문은행 모델을 수립해 하반기 국회와 협력해 입법 절차에 본격 돌입하기로 했다. 지점에 가지 않고 실명을 확인할 수 있도록 엄격한 대면확인 원칙도 완화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핀테크 산업 육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다양한 규제 완화 보따리를 풀어놨다고 밝혔다. 공인인증서 없이 지문이나 홍채 인식으로 자금이체를 할 수 있게 했고, 스마트폰 카카오월렛이나 기명식 티머니 충전한도도 아예 없어진다. 하루 30만원 정도만 가능했던 이용한도도 200만원으로 늘어난다.

오는 6월부터는 플라스틱 카드 없는 모바일 전용 신용카드도 탄생한다. 핀테크 전용 신용카드가 나오는 셈이다. 공인인증서를 비롯한 특정 보안기술 사용을 강제하는 기존 관행도 전면 폐지된다. 다양한 기술이 나와 서로 경쟁할 수 있게 IT기업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금융권 빅데이터 전문인력을 육성하고 빅데이터로 융합산업을 키우는 일에도 앞장선다는 방침이다.

마이클 홍 레드헤링 대표는 “핀테크 산업 전반에 대한 금융당국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정부가 큰 방향 자체는 잘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는 평가다.

가장 큰 문제는 IT업체의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을 막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한 금융위 입장이 빠졌다는 점이다. 현 법규정상 산업 자본이 은행 지분을 인수할 경우 경영권 확보에 턱없이 못미치는 지분 4%까지만 소유할 수 있게 돼 있어 IT와 금융의 융합을 가로막는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손병두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건은) 별도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은산분리 이슈에 대해서는 얘기 자체도 못해봤다”며 “향후 논의를 거쳐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면돌파보다는 여론의 눈치를 봐가면서 결정하겠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금융위가 핵심을 애써 비켜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발표에 촉각을 기울이던 일부 IT업체들은 실망스럽다는 반응마저 내놓았다. 한 IT업체 관계자는 “인터넷은행 사업을 추진할지 말지를 결정하려면 일단 은산분리 규제가 어떻게 될지를 보는 게 순서”라며 “오늘 발표대로라면 종전 정부 입장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정부가 좀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가 되는 규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업이 꽃필 수 있도록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에도 주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함유근 건국대 교수는 “체계적인 계획 없이 규제만 풀다가 외국 IT기업만 돈을 버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며 “핀테크 산업이라는 큰 그림에서 한국의 어떤 기업들이 어디서 돈을 벌 수 있을지까지 미리 내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금융 빅데이터 육성을 외친 정부가 자칫하다간 이 분야 강점이 있는 IBM, 오라클 등 외국 기업에 내수시장을 전부 내줄 수 있다는 얘기다. 핀테크 부문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가 날 수 있게 정부가 물꼬를 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유신 서강대 교수는 “모바일 전용 신용카드를 허가했는데 막상 가맹점에 전용 NFC 단말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며 “규제 완화가 곧바로 사업모델 발굴로 이어지도록 정부가 ‘핀테크 고속도로’를 깔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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