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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김진석의 걷다보면]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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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프랑스 구간에서 가장 힘들다고 하는 피레네산맥을 넘는 길.

이 길을 지나려면 끊임없는 오르막길을 따라 산을 넘거나, 산을 둘러서 가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산을 넘는 길을 선택했다.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잘못된 계산에서.

몇 시간을 걸었을까. 하루 종일 걸은 느낌이었는데 불과 3㎞밖에 오지 못했다. 어깨와 무릎을 짓누르는 배낭과 카메라 가방의 무게가 견딜 수가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열 걸음 걷고 1분 쉬고, 스무 걸음 걷고 1분 쉬기를 반복하다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왜 이걸 견뎌야 하나. 그냥 택시를 부를까….’

넋을 놓고 있는데, 언덕 밑에서 작은 체구의 할아버지가 올라오고 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아주 천천히 올라온다. 나보다 훨씬 힘들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내 앞에 멈춰서더니 씩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Slow, slow, slow."

멀어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북이처럼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던 그가 나보다 훨씬 앞서 걷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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