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월드리포트] 옷 벗은 미녀의 팬心 "국대여! 인내하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허베이성 성도인 스자좡시 중심가에 담대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쌀쌀한 겨울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하이힐에 속옷 하나만 걸친 채 대로를 활보하며 대담한 무언극을 선보였습니다. 그녀의 맨살 등엔 붉은 색으로 ‘國足挺住(국족정주)’라는 글자가 선명히 적혀있습니다.

중국에서 국가대표 축구팀을 일컫는 말이 바로 ‘國足’입니다. 우리 식으로 뜻을 풀자면 “국대여! 참고 견뎌라” 정도입니다. 자초지종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녀에게 말없이 헐벗은 등만 돌려댔습니다.

SBS

사실 지난 주 내내 중국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화제는 중국 국가대표팀의 아시안컵 8강 진출이었습니다. 자국 대표팀이 예선에서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2대 1,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는 등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모처럼 만에 8강에 진출하자 이번에는 뭔가 한 번 터질 것 같다는 기대가 컸던 게 사실입니다.

SBS

일부 섣부른 낙관주의자들은 이번이 한국이나 일본까지 넘어서고 우승컵을 들어 올릴 절호의 기회라고 떠들어댔습니다. 평소 데면데면하게 굴던 헬스크럽 매니저도 제게 처음으로 말을 붙이면서 “한국이랑 중국이랑 이제 아시아 최고 자리를 놓고 겨뤄 볼 때가 됐지 않느냐”며 너스레를 떨기까지 했습니다. 미소 띈 얼굴로 돌아서면서 “오버하고 있네!” 씩 웃었습니다.

역시나! 그 어느 때보다 부푼 기대에도 불구하고 22일 8강전에서 중국 팀은 호주 대표팀에게 2대 0으로 패하면서 4강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기대만큼 실망도 컸던 지 “역시 중국 팀에겐 승리의 유전자가 없는 것 같다”, “중국인들의 정신 건강에 가장 해로운 것은 국가대표팀 경기 관전”이라는 둥 자학적인 기사들까지 언론과 SNS에 가감없이 실렸습니다.

하지만 전과는 사뭇 달라진 게 하나 있습니다. 이번엔 축구에 관한한 영원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인 한국 대표팀에 대한 중국 언론들의 ‘디스’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이란을 피한 한국의 우승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전망과 함께 손흥민의 활약상을 전하며 어릴 때부터 축구 선진 무대인 유럽에서 성장한 선수들을 다수 보유한 한국 팀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잘되는 집 뒤에서 욕하고 헐뜯는 대신 미래지향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 우리도 언젠가는 잘되는 집으로 성장해나가자는 성숙한 인식 전환이 중국 축구계나 스포츠 관련 언론계에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때맞춰 관련 뉴스가 하나 떴습니다. 중국 최고의 부동산 재벌인 완다 그룹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명문팀 AT마드리드의 지분 20% 매입했다는 소식입니다. 4천5백만 유로, 우리 돈 560억 원을 쏟아 부은 것인데요. 완다 그룹은 이와 함께 마드리드에 3천만 유로를 투자해 중국의 축구 유망주들이 조기 유학을 할 수 있는 교육 센터를 만들고 중국인 유망주만을 위한 특별 트레이닝 프로그램도 마련합니다.

AT마드리드는 중국에 축구아카데미 3곳을 설립한다고 합니다. 완다그룹을 시작으로 한때 러시아 석유재벌들이 그랬듯이 중국의 부호들이 유럽의 명문 클럽들을 몇 개 더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브라질 리그의 팀들에 대한 딜도 한창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돈으로 유럽이나 남미의 명문팀들을 사들인다고 해서 단기간 내에 중국 축구의 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축구 부흥을 위한 중국의 발걸음은 이미 차근차근 진행중입니다. 지난 해 말 중국 정부는 축구를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필수 과목으로 편성하고 올해까지 6천 명의 학교 축구 교사를 양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2017년까지 2만 개의 초, 중학교를 '축구특기학교'로 지정하고 대학에도 2백 개 팀으로 리그를 만드는 등 학교에서부터 체계적으로 축구 유망주를 발굴, 육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지원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중국인들의 축구 대표팀에 대한 열렬한 응원과 관심입니다. 스자좡의 여성팬에 뒤지지 않는 광적인 팬들이 대륙에 걸쳐 수 천만, 수 억명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기면에서 중국인들에게 국기나 다름없는 축구의 부흥을 통해 국민들의 단합과 애국심까지 고양해 결과적으로 중국이 꿈꾸는 위대한 부흥을 이뤄내겠다는 것이 시진핑 주석을 위시한 중국 지도부의 전략입니다.

역시 축구를 대체불가의 국기로 여기는 우리나라에게 중국의 몸부림은 어떤 의미일까요? 얼마 안 가 “아무리 용을 써봐야 중국은 역시 우리한테는 안돼!” 이런 과거 회상적인 자존심만으로는 중국의 도전을 뿌리치기 힘들어 질지도 모릅니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다른 모든 분야에서 거침없이 솟구쳐 일어서고 있는 중국의 힘이 스포츠, 특히 축구에도 고스란히 투사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자꾸만 초조해집니다. 오늘 저녁 우리 대표 팀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SBS기자들의 생생한 취재현장 뒷이야기 '취재파일']

☞ SBS뉴스 공식 SNS [SBS8News 트위터] [페이스북]

저작권자 SBS & SBS콘텐츠허브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