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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영화보다 영화 같은 現代史… 관객 울린 부모세대 '피와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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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 어떻게 만들어졌나]

서독광부·간호사 모임 설문… 극적인 얘기로 10번이상 개작

'살아서 보자'·검은물 샤워 등 증언 그대로 재현, 느낌 살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지만, 우리 현대사야말로 첨삭할 것 하나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였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은 "이 영화는 내가 오래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얘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우리 현대사를 다룬 영화는 한 맺힌 복수극이거나, 특정인을 깎아내리는 내용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국제시장'은 혹독했던 지난 시절을 담담히 돌아보는 것만으로 관객의 감정을 쥐고 흔드는 영화적 힘을 발휘한다.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삶을 가감 없이 비추는 '사실의 힘'이다. 제작진은 순제작비 140억원짜리 블록버스터에 이 영화적 힘을 불어넣으려 철저한 고증과 첨단 기술을 동원한 재현에 힘을 쏟았다.

조선일보

서독 탄광 막장 속 광부들이 찐 감자를 먹는 영화 장면(위 사진)과 실제 파독 광부들의 당시 모습(아래 왼쪽 사진), 영화 속 이산가족 상봉(아래 가운데)과 실제 장면(아래 오른쪽). /JK필름 제공


"제목은 처음부터 국제시장"

윤 감독의 특기는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드라마. 이 영화의 기획도 희비극 요소를 모두 담은 서독 광부와 간호사 이야기에서 시작됐고, 2010년쯤 현대사를 관통하는 아버지 이야기로 확장됐다. 제작사 JK필름 길영민 대표는 "제목은 처음부터 '국제시장'이었다"고 했다. 흥남 철수 때 메리디스 빅토리 호를 타고 거제도를 거쳐 부산으로 온 사람들이 주로 정착한 곳이 사하구 괴정. 그 인근 국제시장은 피란민 소년의 인생 궤적을 담기에 맞춤한 장소였다. '댄싱퀸' 등의 각본·각색을 맡은 박수진(42) 작가가 초고를 썼다. 서독 광부·간호사 모임, 월남전 참전용사 모임 등을 다니며 증언을 수집했다. 덕수의 인생 경로가 퍼즐 맞추듯 우리 현대사와 맞춰져 나갔다. 서독 탄광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베트남 파병과 중동 건설현장 취업 등 가능한 소재들 중 가장 극적인 이야기를 골라냈다. 그렇게 2010년 말 나온 '국제시장' 시나리오 초고 분량은 178쪽. 통상 초고 분량의 두 배가 넘었고, 이후 10번 이상 개작됐다.

서독 만남, 운동회서 무도회로

한국 광부들이 가장 많이 일했던 뒤스부르크 함보른 광산은 이미 폐광된 상태. 제작진은 체코 오스트라바 광산 석탄 박물관을 촬영지로 택했다. 실제 작업 장비와 철로, 수레 등이 작동 가능했다. 파독 광부들의 증언을 통해 '살아서 만납시다'는 뜻의 광부들 인사말 '글뤽아우프(Gluckauf)'를 독일인 감독관의 대사로 넣었다. 막장으로 내려갈 때의 절박한 느낌을 살려내려 이 대사만 17번을 찍었다. 갱도 붕괴 장면은 부산 기장의 창고에 25m 길이 갱도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 온몸에 탄가루를 뒤집어쓴 광부들의 샤워 때 검은 물이 흐르는 장면,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가 처음 마음을 나누는 무도회 장면도 실제 광부 경험자들의 증언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무도회는 원래 시나리오에서 운동회였다. JK필름 이상직 PD는 "실제로 무도회를 통해 남녀 만남이 많이 이뤄졌다는 파독 광부·간호사 부부들의 증언에 따라 고친 것"이라고 했다.

"전원이 이산가족 벽보 10장씩"

이산가족 상봉 장면에 쓰인 수천장의 플래카드와 벽보는 영화 제작진의 집단 창작물이다. 길 대표는 "이 장면 촬영을 앞두고 감독부터 막내 스태프까지 쉬는 날 벽보 10장 이상씩을 써 오도록 해 2000여장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흥남 부두에서 헤어졌던 막순이와의 상봉 장면은 많은 관객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꼽는다. 막순이 역할을 맡은 배우는 200여명의 재미교포 배우들이 참여한 작년 5~6월 미국 현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이민 3세다. 덕수와 영자의 노인 분장은 데이비드 핀처의 '밀레니엄'과 '007 스카이폴' 등을 작업한 스웨덴 특수분장팀이 맡았다. 통상 소요시간의 절반 정도인 2시간 반 안에 특수 분장을 마쳤을 뿐 아니라, 분장 상태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표정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얇고 가벼웠다. 덕수와 영자의 젊은 시절도 나이 든 배우의 얼굴을 젊은 모습으로 바꿔주는 자체 소프트웨어를 가진 일본 업체가 맡아 만들어냈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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