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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김식의 야구노트] 넥센과 침묵의 줄다리기 … 고민돔 된 3000억 고척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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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돔 야구장 완공 6개월 눈앞

유지비 연 100억에 교통도 불편

서울시, 일정·조건 등 협상도 없이

"2016년 목동 비워라" 넥센 압박만

중앙일보

서남권 돔야구장(고척돔)이 내년 6월 완공된다. 그러나 서울시와 넥센 구단은 협상은커녕 침묵의 줄다리기 중이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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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도. [강정현 기자]


내년 6월 새 집이 완성된다. 한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비싸고 특별한 집이다. 이 집은 아직 분양되지 않았다. 입주 시기도 정해지지 않았다. 집주인은 세입자를 찍어놓고 들어오라 하고 있다. 세입자가 살던 집을 비워줘야 하니까 결국 새 집으로 올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6개월 후 서울시 고척동에 들어설 가칭 ‘서남권 돔야구장(고척돔)’ 얘기다.

돔구장은 야구팬의 숙원이다. 서울시가 8년 동안 약 3000억원을 들여 고척돔을 만들었으니 내년 6월을 손꼽아 기다려야 마땅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고척돔은 그 덩치만큼이나 거대한 고민이 됐다. 강석호(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서울시 국감에서 “2009년 408억원의 공사비가 8차례 예산 변경을 거치며 2367억원으로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이자 비용과 주변 교통개선 비용을 더하면 총액은 3000억원을 넘는다.

고척돔은 상습 정체구간인 경인로와 서부간선도로를 끼고 있다. 당초 라커룸·스카이박스 없이 시공했다가 나중에 보강 공사를 했을 만큼 내부 공사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잠실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LG와 두산은 고척돔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서울시는 목동야구장을 사용 중인 넥센과 협상했다.

완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도 집주인(서울시)과 입주자(넥센)는 만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목동야구장을 2016년부터 아마야구 전용으로 쓰겠다는 협정을 지난 9월 대한야구협회와 맺었다. 최근에는 아마야구가 연 30일 이상 고척돔을 쓸 수 있도록 약속했다. 넥센 입장에선 2016년부터 목동야구장을 무조건 비워줘야 한다. 고척돔에 들어간다 해도 아마와 나눠 써야 하는 것이다. 넥센은 고척돔에 언제 들어가는지, 구장 운영권과 광고권은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아직 모른다. 2015년 프로야구 경기일정은 지난 17일 나왔다. 돔구장에는 연 100억원 안팎의 유지비용이 필요하다. 서울시로서는 프로구단으로부터 사용료를 받아야 적자폭을 줄일 수 있다. 넥센 구단은 세입자인 동시에 고객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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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면도. [강정현 기자]


광주·KIA 챔피언스필드(2014년 완공)와 대구 신축야구장(2016년 완공 예정)은 KIA와 삼성이 건립비용의 일부를 부담했다. 이에 따라 두 구단은 25년간 구장 운영권을 얻었다. 고척돔은 서울시 예산으로만 지어지기 때문에 넥센 구단에 운영권을 전부 주긴 어렵다. 그렇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넥센과 협상해 운영 방안과 수익 분배 등의 계획을 논의해야 한다. 그게 고척돔이 유지될 수 있는 길인 데도 서울시는 집주인의 권리만 행사하고 있다. 협상하지 않는 것만으로 넥센 구단을 압박하는 셈이다.

시간이 갈수록 고척돔을 둘러싼 잡음은 커지고 있다. 고척돔은 3000억원 짜리 괴물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실무자만 탓할 수는 없다. 고척돔은 역사를 보존하고, 거시적 시각에서 도시를 계획하는 철학의 부재가 만들어낸 기형아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돔야구장에 대한 최초 논의는 20년 전 있었다. 1995년 LG그룹이 뚝섬(현 서울숲)에 돔구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2002 한·일 축구 월드컵 전용경기장이 지어지면서 뚝섬 돔구장은 백지화됐다. 더욱 뼈아픈 건 2006년 동대문야구장 철거 결정이었다. 1905년 한반도의 첫 야구경기가 벌어졌던 부지에 1925년 서울운동장(동대문야구장)이 들어섰다. 최초의 프로야구 경기(1982년 3월27일 삼성-MBC)가 여기서 열렸고, 이후에도 ‘성동원두(城東原頭·서울 동쪽의 넓은 들판)’는 아마야구의 메카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짓기 위해 2008년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했다. 한국야구 100년의 역사를 품은 동대문야구장은 흔적도 없이 뜯겨나갔고, 보상 차원으로 서울시는 고척동에 하프돔(지붕을 반만 덮는 방식)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하프돔은 돔야구장으로 설계가 바뀌었다. 2009년 야구 대표팀이 WBC 준우승을 차지하며 야구 열기가 높아졌던 게 이유다. 당시 서울시는 “아마야구가 고척돔을 쓰고 프로야구단을 위한 돔구장은 하나 더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약속한 사람은 떠났고, 실무자는 바뀌었다. ‘철학’이 아닌 ‘약속’을 바탕으로 한 고척돔은 네 차례나 설계를 변경했다. 정체도로 사이에 홀로 우뚝 선 고척돔은 확장성과 시장성 면에서도 낙제점이다. 이곳은 애초에 3000억원을 들여 돔구장을 세우기엔 적합하지 않은 부지였다. 엉뚱한 곳에 돔구장을 덩그러니 지으면서 서울시와 넥센 구단은 ‘침묵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글=김식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김식.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강정현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cogito3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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