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내 곁에 끝까지 남는 건 배우자뿐" … 부부애 열풍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영화 '님아 … ' 관객 200만 돌파

연극서도 남편 순애보 작품 인기

각박한 현실에서 위로?희망 찾고

배우자의 소중함 되새기게 돼

문화계에 잔잔하면서도 뜨거운 ‘부부애’ 바람이 불고 있다.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20일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 현상이다. 이 같은 부부애 바람은 공연장으로 이어진다. 상처한 남편의 순애보를 그린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는 90%대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서울 대학로 무대를 달구고 있다. 서울 충정로 문화일보홀에서 공연 중인 또 다른 연극 ‘동치미’도 이 같은 흐름을 타고 있다. 60여 년 해로했던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식음을 전폐하고 엿새 뒤 숨을 거둔 시조시인 김상옥 선생의 실화가 모티브다. EBS ‘장수의 비밀’, MBC ‘늘 푸른 인생’ 등 TV 프로그램도 노부부의 사랑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실에선 드물어지는 부부애”=1997년 외환위기 직후엔 『아버지』 『가시고기』 등 부성애를 강조한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영화 ‘마더’, 소설 『엄마를 부탁해』 등 모성애가 부각됐다. 여기에 더해 전 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인 2014년엔 부부 사랑이 떠오르는 양상이다. 힘든 시기 믿고 기댈 수 있는 희망으로 가족 구성원이 돌아가며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혼율·이혼율이 높아진 이른바 ‘가족해체 시대’는 부부의 오랜 사랑을 문화계 ‘킬러 콘텐트’로 끌어올린 배경이 됐다. 지난 10월 대법원이 발간한 ‘2014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 20년차 이상 부부의 ‘황혼이혼’ 건수는 3만2433건으로 역대 최다였다. ‘황금연못’ ‘슬픈연극’ ‘먼 데서 오는 여자’ 등 올 한 해 화제가 됐던 연극 중엔 노부부의 끈끈한 정을 내세워 관객들을 울리고 웃긴 작품이 상당수다. 문화평론가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노동 중독인 우리 사회에서 40년 넘게 부부가 함께 사는 게 쉽지 않다. 깊은 부부애가 현실에서 드물어지면서 그 가치가 점점 더 귀하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정의 축, 부모·자식서 부부로=영화나 연극 속 노부부의 사랑은 지고지순하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노부부는 서로 머리에 꽃을 꽂아 주고 물장난을 치는 등 알뜰살뜰 사랑을 나누며 76년 동안 해로한다.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의 남편은 아내 무덤을 시시때때로 찾아 사랑을 고백하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늙어간다. 재혼한 뒤에도 아내의 무덤 앞에서 “맛있는 거 먹을 때 니가 생각난다”고 말한다. ‘동치미’의 71세 남편 김만복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아내에게 빨리 가겠다”며 물도 마시지 않고 버티다 아내의 삼우제를 치른 뒤 숨을 거둔다. ‘60대는 살갗만 닿아도, 70대는 존재 자체가 이혼 사유’라는 농담이 통할 만큼 위태로운 현실의 부부 모습과는 딴판이다.

이 같은 부부애 콘텐트가 각광받는 데는 각박한 현실 속에 위로와 희망을 발견하게 하는 ‘신(新)판타지’ 효과도 작용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은 부부의 사랑을 구체화해 보여 준다는 게 관객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배우자가 얼마나 소중한 반려자인지를 되새기게 하면서 오래 함께 산 부부에게는 ‘우리에겐 이런 사랑이 있지’란 위로를 주고, 젊은 관객들에게는 ‘나이 들면 저런 사랑이 생기겠구나’란 희망을 주는 것이다.

부부애의 부상은 가족 관계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으로도 풀이된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은 “부부애가 강조되는 것은, 현대 가정의 축이 부모·자식에서 부부로 바뀌었다는 증거”라며 "끝까지 내 곁에 남아 있을 사람은 자식이 아니라 배우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지영 기자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이지영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jylee71/

[ⓒ 중앙일보 : DramaHouse & J Content Hub Co.,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