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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헌법재판소 결정에 ‘반기’ 든 법원…사법기관끼리 ‘충돌’(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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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심의위원도 공무원" …헌재는 "공무원 아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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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뉴스1) 이상민 기자 = ‘심의위원은 공무원으로 볼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기를 든 법원의 판결이 나와 두 사법기관의 갈등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2012년 12월 제주도 재해영향평가심의위원 재직 중 뇌물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전 국립대학 교수가 “공무원이 아닌데도 뇌물죄가 적용됐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을 받아들였지만 법원은 2년여 만에 관련 소송에서 헌재의 결정을 사실상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

제주지방법원 행정부(재판장 허명욱 부장판사)는 남모(56) 전 제주대학교 교수가 대학측을 상대로 제기한 ‘교수 파면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심의위원은 임명 또는 위촉된 때부터 형법 제129조에 규정된 수뢰죄의 주체인 공무원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면서 “따라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헌재는 2012년 12월 남씨를 공무원으로 해석해 처벌한 것은 위헌이라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2011년 9월 남씨가 대법원에서 뇌물죄로 유죄를 확정 받은 지 1년 3개월만의 일이다.

당시 헌재는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심의위원을 공무원에 포함시키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의 유추해석금지에 위배돼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한정위헌은 법률 조항을 변경하지 않고 법률 내의 특정한 해석에 대해서만 위헌을 선언하는 결정 방식을 말한다. 단 헌재가 한정위헌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법률 조항과 효력은 그대로 유지된다.

따라서 헌법불합치처럼 전면위헌은 아니다. 한정위헌결정은 법률의 해석과 적용범위에 대해 헌재의 견해를 제시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남씨를 공무원으로 인정한 대법원의 시각과 남씨를 공무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헌재의 시각, 두가지 법적 판단이 함께 공존하는 셈이다.

때문에 이번 교수 파면처분 취소소송에서 대법원의 시각을 존중할지, 헌재의 시각을 따를 지는 오로지 1심 법원의 판단에 달렸다.

결과는 대법원이었다. 이는 판결문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원고는 관련 형사사건에서 공무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공무원으로 인정돼 뇌물죄로 형이 선고되고 그 판결이 (대법원을 통해) 확정된 점 등을 종합했다”고 밝혔다.

제주지법의 이번 판단이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기초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종범 제주지법 공보판사는 "사법기관의 서로 다른 판단이 공존해 국민들이 혼란을 겪을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단 헌재에서 법률 자체를 위헌이라고 결정했다면 법원은 그에 맞는 판결을 내려야 하지만 법률의 내 특정조항에 대한 해석을 문제삼은 한정위헌결정에 대해서는 법원이 법률적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사법기관 갈등 도화선 되나

제주지법의 이번 판결은 법률해석의 최종 권한을 두고 기싸움을 벌여온 대법원과 헌재의 해묵은 갈등에 불을 지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씨가 헌법재판소에 이번 사건과 관련한 ‘2차 헌법소원’을 낸 상태여서 이번 판결이 헌재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 이후 남씨가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대법원은 헌재의 결정은 기속력이 없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남씨는 지난 9월 5일 ‘법원의 판결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위헌이라며 2차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 탓에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는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만약 남씨의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지면 헌재가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다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럴 경우 3심제로 규정한 우리나라 사법체계가 뒤흔들려 사실상 4심제로 바뀔 수 있다. 현재 헌재는 남씨의 2차 헌법소원 청구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배당해 심리를 벌이고 있다.

한편 남씨는 제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2003년부터 제주도 통합영향평가위원회 심의위원으로도 활동하면서 모두 6차례에 걸쳐 모 업체로부터 3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2011년 9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4년에 추징금 1억 5265만원의 유죄 판결을 확정 받았다.

남씨는 이후 대학 교수직에서 파면됐다.
le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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