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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8대1… 대한민국은 어디까지 리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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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이네.” 정윤회 비선 국정농단 의혹을 취재하던 법조 기자들의 첫 반응이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19일 오전 10시 선고. 방송 생중계 가능”이라는 헌법재판소발 정보보고 문자에 보인 반응이다. 기자들 사이에서 해산 결정은 이미 예상됐다. 단지 그 비율이 6대 3이냐 아니면 7대 2가 될 것이냐가 관심사였다. 새누리당에서는 7대 2를 예상한다는 ‘정보보고’가 들어왔다.

예상은 빗나갔다. 8대 1이었다. 기각을 선택한 ‘소수의견’은 한 명뿐이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 결정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희망이나 기대와 달리 헌법재판소 내에 ‘중도파’는 없었다. ‘공안파’의 완승이다”라고 판결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법무부가 지난해 11월 5일에 낸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청구 관련 보도자료’를 보면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활동가들의 이름이 거론된다. 이를테면 통합진보당과 관련을 맺고 있는 전교조나 청소년단체 희망은 “차세대 종북세력 양성 가능성”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거론된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로 이런 단체들도 다 종북단체가 되는 것일까.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들어간 것이 2004년부터 아닌가.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불법화되었던 전교조나 진보정당은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상징이다. 공안기관이 선거개입을 안하는 것, 국가 공기관이 민간인 사찰을 하지 않게 되었던 것과 이런 정당이나 단체들이 합법화된 것이 민주화의 상징으로 꼽을 수 있는데, 그게 다 현재 시점에서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린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던 유남영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걱정’을 덧붙였다.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군사독재 시절의 국가보안법 위반자들, 과거 정부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되었던 것까지 사상 관련을 예로 들어서 번복하는 것인데….”

경향신문

1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헌법재판관들은 8대 1로 정부의 해산청구를 인용했다. / 이준헌 기자


‘소모적인 이념논쟁’, 과연 종식될까

“인용 사유 낭독하는 것을 들으니 이전 군사독재 시절에 검찰이 공안사건 기소장을 낭독하는 것을 다시 듣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씨의 말이다. 계속되는 그의 평이다. “헌법재판소가 국민 의견에 대한 대표성을 가져야 하는데 오늘 결정을 보면 과연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사고를 반영할 수 있는 기관인가 하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12월 19일 오후에 배포된 헌재의 결정문을 보면 결론 부분에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한편, 우리는 피청구인(편집자주: 통합진보당)의 해산이 또 다른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경계한다. (중략) 이 결정을 통해 향후 민주적 기본질서의 존중 아래 한층 더 성숙한 민주적 토론과 우리 사회의 이념적 다양성이 실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게 바로 헌재가 보여주는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다.” 헌법학자인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소모적이라도 시끄러운 것이 민주주의다. 헌재의 오늘 결정은 이것을 자신들이 정리해주겠다는 것인데, 민주주의의 본질을 실제적으로 재단해버리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 논리에 입각해서 헌재가 위헌 결정하는 것에 대해 우려했는데, 우려대로 되어버린 결과가 아닌가.” 군사독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른바 ‘87년체제’의 결과물인 헌재가 민주주의 수준을 후퇴하는 결정을 내렸으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이런 폭거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결론이다.

헌재 결정 직후에 나온 통합진보당 소송대리인단의 ‘입장’도 비슷한 인식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소수에 대한 포용과 관용, 그리고 공개적인 토론과 선거를 통한 의사결정과 선택을 그 생명으로 한다. 우리 사회의 주류적 입장과 다른 주장을 한다고 해서 정당을 정치공론의 장에서 추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포기이자 전체주의다. (중략) 오늘 결정은 우리 국민의 민주적 역량에 대한 불신에 근거한 것으로, 이는 곧 헌법재판소의 존립 근거에 대한 부정이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결정의 의미를 “참여정부 때부터 시작한 정치사법화의 완결판”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당시 권력을 상실한 보수세력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법조계를 동원해 ‘정치사법화’를 촉진해 공세를 이어갔고, 대통령 탄핵사건이나 관습법을 앞세운 행정수도 이전도 그 공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며 “사상이나 생각의 다양성이 서로 존중되어야 하는데 이번 판결의 정족수에서 확인되듯 헌법을 다루는 기관에서 일방적인 사고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헌재 결정 주요 근거가 된 RO 녹취록

기자는 헌재 결정문을 구해서 읽어봤다. 총 347페이지다. 인용된 헌재의 결정문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통합진보당의 이적성을 논증하기 위해 이석기 RO 사건에 상당히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녹취록 문장이 그대로 들어 있다. 의문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RO의 조직적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아직 사법적 판단이 결정되지 않은 사안이다. 그 모임과 통합진보당의 관계에 대해서도 한창 법적 공방이 진행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도세력’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결정문에 인용된 과거 사건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통합진보당은 2011년 12월 창당한 정당이다. 헌재는 “이러한 판단 자료들은 현재 피청구인(편집자주: 통합진보당)을 주도하는 세력이나 주요 구성원들의 과거 활동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일 뿐, 그들이 참여하여 이루어진 민주노동당의 모든 의사결정이나 주장, 목적이 피청구인의 그것들과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고, 동일시될 수도 없다”(결정문 25~26쪽)면서도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에 있던 조직사건들(민노당 고문 강모씨 간첩단 사건, 일심회 사건)을 주요한 판단근거로 거론하고 있다. 1991년 북한에서 발간된 책자가 이석기 RO 사건의 주요 피의자들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도 또한 논거가 되고 있다.

347쪽의 절반은 8대 1의 1, 김이수 재판관이 낸 반대의견이다. 반대의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사람의 생각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경험칙에 의하여 나이가 들어가면서 청년시절의 사고가 변화함을 알고 있다. 또 시대의 사조는 사회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바뀌어가고, 그것이 동시대 사람들의 인식의 전환을 가져옴을 알고 있다. 과거 지니고 있던 사상이나 신념을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경우에만 그 변화가 진정성이 있는 것이고, 전향 선언을 하지 않으면 지금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추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보려면 납득할 만한 증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헌재는 왜 12월 19일 결정을 내렸나

하나 더 드는 의문. 왜 하필이면 12월 19일이었을까. 12월 19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지 딱 2년이 되는 날이다. 당선되기 보름 전,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대표는 “충성 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 뿌리는 속일 수 없다”고 발언했다.(12월 4일 대선후보 1차 합동토론회) 그는 자신의 출마 목적과 관련해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발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헌재의 결정문을 보면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청구의 적법성을 논한 대목이다. “사건 기록에 의하면, 대통령이 직무상 해외순방 중이던 2013년 11월 5일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피청구인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청구서 제출안이 의결되었고, 위 의안에 대하여는 차관회의의 사전 심의를 거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에 박근혜 대통령은 빠져 있다. 왜일까.

앞의 소송대리인단은 이런 주장을 폈다. “헌법재판소는 방대한 증거와 서면, 그리고 다양한 쟁점 등에 비추어 무리하게 서둘러 선고기일을 잡았다. 선고시기까지도 정권의 요구에 편승하여 정략적 고려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이종수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검토해야만 하는 서류만 17만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인력이 많지도 않은데, 과연 다 읽고 분석했다고 볼 수 있을까. 공소를 제기한 쪽(검찰 TF)의 의견을 그대로 결론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결국 통합진보당이라는 법인격체와 이정희 대표에 대한 ‘차도살인에 의한 정치보복’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이 교수는 덧붙였다. “헌재가 외국 사례로 거론한 서독 아데나워 정권 당시 독일공산당 해산사례의 경우도 과연 적절했는지 학계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실제 제기에서부터 결정까지 5년이 걸렸다는 점에서 무리수를 범한 결정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탐탁한 것은 아니다. 헌재 결정이 내려지던 날,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국제엠네스티는 “한국 정부가 국가안보를 가장하여 야당 정치인들을 탄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강력 비난했다. 이날 엠네스티의 기자회견은 로젠 라이프 국제엠네스티 동아시아사무소 조사국장의 발언을 인용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엠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는 “실태 확인을 위해서 로젠 라이프 조사국장이 직접 한국에 와서 통합진보당 인사들의 재판을 참관하기도 했다”며 “엠네스티가 주목하는 것은 통합진보당의 이념이나 성향이 아니라 정당 해산이 한국의 인권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19일 서울 대방동 통합진보당 당사에서 한 당직자가 취재진의 촬영을 막기 위해 ‘근조 민주주의’가 적힌 종이를 문틈에 이어붙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진보’에 재갈, 사법당국 추후 조치도 우려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위헌정당이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결정이 위헌적이라는 것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날 재판을 참관했던 권영국 변호사의 말이다. 권 변호사는 결정 주문 직후, “오늘은 헌법이 정치와 민주주의를 살해한 날이다.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재판정에서 외치다가 헌재 관계자들에게 끌려 나왔다.

권 변호사는 “헌법에서 헌법재판소를 둔 취지가 결국은 소수정당을 보호하고 인권과 기본권을 보호하라는 취지였는데, 일반 국민과 견해가 다르고, 일부 구성원의 일탈행위가 있었다는 이유로 정당을 해산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결정인지가 핵심”이라며 “통합진보당이 이석기 쪽의 경기동부연합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데, 그것을 정당으로 완전히 등치시키는 매우 비약적인 논리를 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후 벌어질 사법 집행당국의 추후 조치가 더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헌재 결정은 진보나 민주주의가 북한의 주장과 유사성이 있다고 단언하면서 그 위험성을 부풀려 사실상 ‘진보’라는 말을 쓰기 어렵게 만들어버렸다는 점에서 정권에 대한 비판을 반국가적인 일로 봉쇄해버린 유신체제와 다를 바 없게 되어버렸다. 결국 향후에도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말과 유사한 언어를 쓰는 모든 단체나 정당은 필요에 따라 수사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버린 것이 아닌가.”

통진당 해산이라는 이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앞의 김이수 재판관은 한자로 된 경구를 인용하며 정부의 통진당 해산청구를 기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름지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다양한 견해와 새로운 발상을 포용하고 받아들인 나라는 융성하였고, 문을 닫고 한 가지 생각만 고집한 나라는 결국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바다는 작은 물줄기들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그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는 법이다.(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민주주의야말로 바로 바다와 같아서 다양한 생각들을 포용해 가는 것을 그 제도의 본질로 한다.”

결정문에서 한자 경구의 인용은 또 있다. 안창호, 조용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이다. “맹자의 고사에 나오는 피음사둔(?淫邪遁)이라는 말이 있다. ‘번드르한 말 속에서 본질을 간파한다’라는 뜻이다. 말과 글, 주장과 주의 속에서 도처에 숨겨진 함정과 그물에 방심하면 자칫 당하기 쉬운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피청구인 주도세력과 북한의 각종 전술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 없이 그들의 글을 읽고 주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위험한 일이다. 그들의 가면과 참모습을 혼동하고 오도하는 광장의 중우(衆愚), 기회주의 지식인·언론인, 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영합 정치인 등과 같은, 레닌이 말하는 ‘쓸모 있는 바보들’이 되지 않도록 경계를 하여야 한다. 스스로를 방어할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과연 역사는 대립되는 이 두 인식 중 누가 옳았다고 평가할까.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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