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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물가 낮은 게 왜 걱정거리?...'저물가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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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소비자 물가가 1%대의 더딘 상승세를 이어 온 가운데 국제유가 마저 급락하며 저물가 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물가 하락을 반기는 목소리보단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의 지속적인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

얼핏 생각할 때 물가 하락은 소비자에게 '득'처럼 보인다. 물건 값이 싸진 다면 그만큼 구매력이 높아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휘발유 가격 인하 등 소비재 가격 하락은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도와준다.

유가 급락 여파에 전국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이번 주까지 23주 연속 하락하며 1700원 밑으로 내려왔다. 주간 휘발유 평균 가격이 1600원대를 기록한 건 지난 2010년 3월 이후 4년 9개월 만이다.

하지만 물가 하락이 장기적인 추세로 이어지면 소비자들에게도 달갑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물가 하락을 예상한 소비자들이 소비를 미룰 경우 기업매출이 줄고 고용이 위축되면서 소비가 더 침체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이 디플레 늪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다.

또 장기간 저물가가 지속되다보면 실질금리(명목금리-기대인플레이션)가 오르며 기업들의 실질 차입 부담이 높아진다. 기업의 실적 악화는 생산과 내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의 장기 불황은 디플레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로 꼽힌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소폭이나마 물가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은 아니다. 전문가들도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물가 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은 적다고 내다본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하는 측은 최근의 저물가가 경기 순환적 국면에서 일시적 현상이기 보다 성장률이 구조적으로 떨어지면서 나타난 신호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전적인 의미의 디플레냐 아니냐 문제가 중요하다기 보다 저물가가 내수 부진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1월에도 지난해 같은 달 보다 1.0% 상승하는데 그쳤다. 2012년 11월(1.6%)부터 25개월 연속 1%대 상승세다.

아울러 유가 하락 등 저물가를 유발시킨 원자재 가격 약세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인 경기 부진에 따른 구조적 요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공급측 요인'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 세계가 금융위기 후 저성장, 저물가 등 이전과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에 접어들었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중추였던 수출도 예전과 다른 경로를 보일 수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디플레이션이 당장 우려되진 않지만 저물가가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위축의 신호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금융위기 이후 구조적으로 소비성향이 떨어지는 경향이 고착화되면서 저물가 추세도 구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도 "최근의 저물가는 근본적으로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수요가 개선이 안된다면 물가가 실제로 하락하면서 일본식 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나라가 일본식 디플레에 빠질 가능성이 적다고 하지만 일본의 경우 1991년 버블이 붕괴된 뒤 1999년 가서야 디플레에 빠졌다"며 "갑자기 디플레 빠지는 게 아니라 이런 징후들이 누적돼서 디플레이션으로 연결되는 만큼 경계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다희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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