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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헌재 무용론' 또 수면위로… 관습헌법부터 정당해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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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조은정·이지혜 기자]

노컷뉴스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이 열리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지난 1988년 헌법재판소가 설립된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바꿀만한 몇 번의 굵직한 결정이 있었다. 헌재는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하기도, 대한민국 수도를 결정하기도 했다.

2014년 끝자락에 헌재가 내린 결정은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 해산이다. 통합진보당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목적으로 해 민주적 헌법 질서를 위배한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소속 국회의원 전원도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논란이 되는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헌법재판소 무용론'이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8대 1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정당 해산 결정이 내려지자 일부 헌법학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는 "87년 헌법의 기본정신이 훼손됐고 헌재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의 사안이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헌재가 정치적,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대표적인 사건은 10년 전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이다. 2004년 10월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관습헌법'이라는 이유를 들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것이다.

조선의 경국대전을 들어 '서울이 수도'라는 법전에는 없는 '관습헌법'을 내세운 헌재의 판결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헌재의 결정으로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한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던 노무현 정부는 큰 타격을 입게됐다.

"법 절차를 위배한 것은 인정하지만 법은 유효하다"는 헌법재판소의 2009년 미디어법 개정에 대한 인정 판결도 언론 시장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헌재는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발의한 미디어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 과정에서 날치기 등 위법행위가 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이에 따른 무효확인 청구는 신문법은 6대 3, 방송법은 7대 2의 의견으로 기각했다.

당시 헌재의 판결은 "커닝은 했지만 점수는 인정한다", "돈은 훔쳤지만 소유권은 인정한다" 등의 숱한 패러디를 만들었다. 과정은 잘못됐지만 결과는 인정한다는 법 상식에 다소 반하는 결정에 헌재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다.

헌재는 이밖에도 97년 이후 사실상 멈춰진 사형제에 대해 2010년 2월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년 가까이 집행되지 않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사형제를 유지하는 국가이다. 총 4차례에 걸쳐 헌법소원이 제기된 간통죄도 모두 다 합헌 결정(1990년, 1993년, 2001년, 2008년)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끝난 직후인 1960년 제2공화국 헌법에 포함됐다가 곧바로 5.16 군사정변이 일면서 설립이 무산됐다. 이후 1987년 민주화의 열기와 염원에 힘입어 출범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민주화 운동의 값진 열매로 탄생했지만, 이후 헌재는 구성과 운영 면에서 각 정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의 경우, 전 세계 유례가 없을 뿐더러 사회적으로는 팽팽한 의견 대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헌재 안에서는 만장일치에 가깝게 압도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보수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재판관 구성에서부터 일반 국민 여론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현재 헌법재판관은 9명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되,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사람을,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사람을 임명한다. 대체로 국회 선출 몫 중 야당 추천 몫을 제외하고는 정권에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돼 있다.

자격 기준도 엄격하다. 자격은 ▲ 판사·검사·변호사, ▲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국가기관, 국·공영기업체, 정부투자기관 등에서 법률에 관한 사무에 종사한 사람, ▲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인된 대학의 법률학 조교수 이상의 직에 있던 사람으로, 각 항 모두 15년 이상 재직한 40세 이상의 사람에 한하도록 돼 있다.

이 같은 자격 요건 자체가 보수성을 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호중 서강대 법대 교수는 "헌재의 인적 구성을 지금과 같은 형태의 법률가 중심 구조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헌재의 결정 자체가 정치적 결정일 수밖에 없는 영역이 있기 때문에 보다 인적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희 교수는 "현재 대통령 추천이나 여당, 야당 추천이 나뉘어 있는데 완전히 독일식으로 재판관 전원을 의회(국회)에서 뽑고 검증을 해야 한다"며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합의하는 사람이 재판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or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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