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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르포]‘절망의 끝에 선 사람들’ 한강 위로 끌어올리는 대원들의 ‘혹한 속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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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경찰대 시신 수습 현장 동행해보니…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서울의 수은주가 영하 13도까지 내려가며 절정의 한파가 몰아친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한강경찰대 망원 본대. 태양이 높게 뜬 오후 2시인데도 칼바람은 여전히 매섭다.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한강물이 얼어붙을 만큼의 강추위지만 경찰대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긴박하게 출동을 준비한다. 간밤에 마포대교에서 투신한 한 학생을 다시 수색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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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 선 사람들을 살려내거나, 아니면 뭍으로 올리는 데 사투를 벌이는 한강경찰대. 매서운 추위 속에서 험난한 일을 하는 이들은 사명감 없인 절대로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한강경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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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신고를 받은 이날 새벽과 오전에도 수색을 하려했으나 한파에 잠수사들의 산소호흡기가 얼 위험이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CCTV를 통해 투신 지점을 정확히 파악했고 강물의 흐름이 세지 않았기에 이날 오후 수색에서 시신을 가족들 품에 돌려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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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한강경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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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10분, 한강경찰대 순찰정이 하얀 물살을 내뿜으며 달려 마포대교 남단 한강 둔치에 도착해 투신한 학생의 부모를 순찰정에 태운다. 갑작스런 비보를 듣고 지방에서 급히 올라온 부모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에 할 말을 잃었다.

오후 2시20분, 순찰정이 마포대교 아래 투신 지점에 도착했다. 순찰정이 멈추고 요란했던 엔진 소리가 잦아들자 적막이 찾아온다. 이따금 웽웽 부는 바람 소리, 찰랑찰랑 거리는 한강의 물 소리, 다리 위로 지나가는 차 소리만 남았다.

투신 지점엔 또 다른 순찰정 103호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 그곳에서 준비를 마친 두 명의 베테랑 잠수사가 이내 차디찬 물 속으로 뛰어든다. 수심은 약 4미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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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한강경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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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영(53) 한강경찰대장이 부모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 뒤 “학생이 어떤 옷을 입고 있었나요?” 라고 묻는다.

부력이 있는 두툼한 옷을 입으면 많이 떠내려가고,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뛰어내린 그 지점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놨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고요함 속에 10분이나 지났을까. “어? 올라오는데?” , “찾은 것 같습니다. 찾았어요.” 대장과 대원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곧 잠수사들과 함께 시신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먼 발치에서도 자식을 알아본 어머니가 외마디 탄식을 토해내며 순찰정 바닥에 주저앉는다.

“어떡해… 안돼, 안돼. 이 나쁜놈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어머니가 통곡하기 시작한다.

“인양했습니다.” 경찰의 무전음과 함께 순찰정들은 원효대교 인근 택시승강장 쪽으로 향한다.

오후 2시42분, 뭍으로 올려낸 자식의 싸늘한 주검과 부모가 마주한다. 어머니는 그 앞에 주저앉아 다시 오열하고 아버지는 마른 울음을 속으로 꾹 삼키며 아내를 꼭 안는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에서 나온 여경도 어머니의 손을 꼭 잡는다.

어머니가 순찰차에 타자, 아버지는 홀로 아들의 주검 앞에 돌아왔다. “아들아. 이게 뭐야…” 꾹 참았던 아버지의 눈물과 탄식….

과학수사팀 대원, 영등포경찰서 형사가 차례로 현장에 도착해 주검의 상태를 확인하고 병원에서 온 장의차량이 시신을 데려가자 한강경찰대의 임무도 이렇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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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한강경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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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영 대장은 “우리 역할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가장 힘들고 지친 분들 살려내고, 이렇게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도 그 분들대로 마지막 가는 길 보듬어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한강경찰대 수상안전팀 27명 전원은 모두 선박조종과 잠수, 인명구조 자격 등을 갖추고 있지만 오늘같은 극한의 상황에서 잠수를 해 시신을 수습한 대원은 특수부대 출신 베테랑 이용칠(40) 경사와 박자영(40) 경사다.

이들은 “추운 날씨도 힘들지만 구조해드려도 고맙게 생각해주는 분이 거의 없다는 점에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절망의 끝에서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설령 목숨을 살려내도 처음엔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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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한강경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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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경찰대는 올해 1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총 132명을 구조하고 226명의 시신을 인양했다. 작년 동기대비 인명구조는 31명이 늘고, 변사체 인양은 26건이 늘었다. 신고출동도 321건이나 증가했다.

신고가 언제 들어올지 몰라 거의 배달음식으로만 끼니를 때우는 이들은 절망의 끝에 선 사람들을 보듬기 위해 오늘도 물 속으로 뛰어든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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