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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방 따뜻하게 하는 온수 파이프는 누가 깔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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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땅콩집’ 기자가 들려주는 건축 이야기

타일 ‘달인’ 미장공, 크레인 기사…

집짓기는 여러 분야 사람들의 협업


누가 집을 지을까?
구본준 글, 김이조 그림/창비·1만1000원


언제부턴가 어른들의 꿈은 번듯한 ‘아파트’가 됐다. 아파트는 동화 속 ‘성(캐슬)’이 되고 ‘궁’ 이름이 붙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꿈 속에서 신나게 뛰어놀지 못한다. “뛰지 말아라, 조용히 해라.” 아이들이 꿈꾸는 집도 과연 아파트일까.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돈이 없네.” 어느 날, 두 아빠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큰돈이 없는 보통 가정도 마당 있는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땅콩집’은, 실은 아이들의 꿈에서 시작했다.

<누가 집을 지을까?>는 ‘땅콩집’을 지은 고 구본준 <한겨레> 기자가 쓴 어린이 그림책이다. 누구나 집에 살고 있지만, 자기 집을 직접 짓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집들은 대체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짓는 것일까? 도서출판 창비는 ‘사람이 보이는 사회 그림책’ 시리즈를 통해 지금 바로 우리 곁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건축가는 건축도면을 그리기 전, 가족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집이 필요한지 묻는다. 초등학생인 재모는 강아지를 기를 수 있는 집을, 아빠는 마당을, 엄마는 오보에 연습실을 꿈꿨다. 집짓기는 한번에 뚝딱 되는 일이 아니다. 빈 땅을 고르고, 콘크리트를 부어 바닥을 다진다. 크레인이 와서 나무판자를 들어올려 벽을 짠다. 몇 달 뒤 세모난 지붕이 올라갔다. 전깃줄, 배수관, 가스 파이프 등이 보이지 않는 곳곳에 숨었다. 재모는 욕실에 타일을 바르는 미장공에게 끌렸다. 착, 착, 착… 수십장의 타일을 순식간에 자로 잰 것처럼 반듯하게 붙여내는 ‘달인’이다. 집에는 건축가, 현장소장, 공사장 인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많은 사람들의 협업이 녹아 있다. 현실적인 그림도 일품이다. 공사장 한켠엔 배달 온 짜장면이 놓여 있다. 이삿짐은 뽁뽁이로 싸여 있다. 재모네가 떠나 텅 빈 아파트엔 스티커를 떼어낸 흔적이 남았다.

산타클로스가 들어갈 법한 그림책 속의 굴뚝 말고, 겨울철 따뜻한 방바닥 아래 온수 파이프를 누가 깔았을지를 생각할 만큼 자란 아이를 위한 책이다. 더불어 마당에 심은 앵두나무에 물을 주고, 봄이 되면 꽃이 피는 것을 바라보는 감동을 이해하는 아이가 될 것이다. 글쓴이가 자녀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사회 이야기이기도 하다. 평소 어린이 그림책을 쓰고 싶다고 종종 말했던 구본준 기자는 지난 11월12일 건축답사 기행 중 이탈리아에서 숨을 거뒀다. 이 책은 유가족들의 동의 아래 나오게 됐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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