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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최강 한국女골퍼, 룰 공부 좀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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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교촌 허니 레이디스오픈이 열린 경상북도 경산의 인터불고 경산 컨트리클럽(파73) 18번홀.

올해 여자골프대회가 열린 골프장 중 유일하게 파6 홀인 이 홀에서 배선우(20·정관장)는 보기를 하고는 아무 생각 없이 스코어카드에 숫자 ‘6’을 적었다. 파6 홀이기 때문에 ‘7’을 적어야 했지만 파5 홀로 착각해 ‘6’을 적었고 동반자나 마커, 심지어 경기위원까지 모르고 경기가 마무리됐다.

아무도 모르고 있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지만 뒤늦게 자기 잘못을 깨달은 배선우는 집으로 가던 차를 돌려 경기위원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다. “앞으로 투어 생활을 하면서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았고 마음속에 이 일을 담아두기 싫었다”는 게 배선우가 ‘자진 신고’한 이유였다. 결국 배선우는 실격돼 돈 한 푼 받지 못했지만 ‘정직한 골퍼’로 오히려 더 칭찬을 받았다.

배선우 예는 조금 특별하지만, 2014년을 뜨겁게 달군 한국여자프로골프 무대에서 유난히 골프 룰 때문에 울고 웃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특히 어린 선수들이 득세하면서 골프 룰을 잘 몰라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어느 해보다 잦았다.

‘필드의 포청천’으로 불리는 정창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경기위원장은 “올해 1년을 지켜본 결과 선수들 실력은 최정상인데 룰에 대한 지식은 매우 부족하다”며 안타까워했을 정도다.

“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말한 것에는 룰을 알지 못하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사례가 모두 포함된다. 올 시즌 가장 대표적으로 룰을 몰라 벌타를 받은 선수는 박신영(20·대방건설)이다. KLPGA 투어 서울경제 레이디스클래식 마지막 날 단독 선두를 달리던 박신영은 룰을 몰라 벌타를 받고 생애 첫 우승 기회를 날렸다.

상황은 이랬다. 박신영 공이 떨어진 14번홀 그린은 경사가 무척 심했다. 그린을 읽은 박신영이 퍼트를 하기 위해 볼마크를 들어올리려는 순간 경사면에 있던 볼이 저절로 구르기 시작했다. 박신영은 마크를 그대로 둔 채 움직이는 볼을 집어들었다. 박신영은 이 행동이 룰 위반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정 위원장은 “골프규칙에 따르면 마크를 한 상태에서도 볼이 움직이면 인플레이 상황”이라고 말한 뒤 “의도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1벌타만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상황이 룰 위반이라는 것을 대부분 프로골퍼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내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입성하는 백규정(19·CJ오쇼핑)은 아버지의 룰 위반으로 벌타를 받았다. 한화금융클래식 7번홀에서 백규정 티샷이 왼쪽으로 말려 경사면 깊은 러프에 빠졌다. 어떻게 쳐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백규정 아버지가 “나 같으면 6번홀로 빼내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경기위원은 이 말을 듣고 벌타를 부과했다. 골프규칙은 ‘플레이어 결정을 돕는 ‘시사’도 ‘어드바이스’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룰을 몰라서 벌타를 받아 손해를 보는 사례도 많다. 반대로 룰 위반으로 벌타를 받는 상황을 잘못 알고 있는 선수도 많았다. 삼다수 여자오픈에서는 ‘벌타가 아닌 상황’으로 서로 클레임을 걸어 얼굴을 붉힌 일이 있었다. A선수가 오르막이 심한 5번홀로 이동하는 길에서 팬들이 B선수 캐디백을 밀어줬다고 신고한 것. 이 선수는 캐디백을 밀어주면 벌타를 받는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무벌타. 선수나 캐디가 “밀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만 2벌타를 받게 된다는 것. 사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B선수는 곧바로 A선수에 대해 클레임을 걸었다. A선수 아버지가 취재기자 카트를 타고 이동했다고 말한 것. 이것도 많은 선수들은 선수 부모가 카트를 타면 페널티를 받는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벌금 20만원’에 그쳤다. 대회 규정집에 써 있는 대로 판결을 내린 것. 선수들만 몰랐을 뿐이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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