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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책과 삶]이백·두보… 당시 200여수 흔적 찾아 1만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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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당시의 나라…김준연 | 궁리 | 652쪽 | 2만8000원

경향신문

“사별이라면 통곡 소리 삼키고 말았을 것을/ 생이별이니 항상 마음 슬퍼라/ 강남은 지독한 더위로 병드는 땅/ 쫓겨난 나그네 아무런 소식이 없네/ 친구가 내 꿈을 찾아왔나니/ 내 그대를 늘 생각함을 안 것이라…”(두보, ‘꿈에 만난 이백’)

당시(唐詩)라고 하면 ‘이두(李杜)’라고 했다. 이두는 바로 이백과 두보다. 두 사람은 744년 여름에 만났다. 이백과 두보는 낙양에서 만나 의기투합해 여행을 떠났다. 이백의 집이 있던 산동성 노군에서 한동안 머물던 두보가 다시 낙양으로 돌아간 뒤 두 사람은 평생 다시 만나지 못했다. 노군에서 이별한 지 10년 뒤에 안사의 난이 발발했고 이백은 역적으로 몰려 유배당했다. 술을 좋아하고 시를 사랑했던 두 사람. 두보는 사지로 떠난 친구 이백의 안위를 걱정하며 ‘꿈에 만난 이백’을 썼다.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당시에 꽂혀 방학 때마다 당나라 지도를 들고 중국 전역을 10여년간 누볐다. 서쪽 돈황부터 동쪽 태산까지, 다시 남쪽 계림으로부터 북쪽 승덕까지 당시에 관련된 곳이라면 열심히 찾아다녔다. 이렇게 중국 내에서 이동한 거리만 1만2500㎞. 중국 영토를 한 번씩 종단, 횡단하고도 조금 남는 거리다. 13개 성(省)에 흩어져 있는 수십개 시와 현을 찾아다녔고 당시 200여수의 내력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왜 당시일까. 당시는 중국 당나라 왕조(618~907) 때 창작된 시다. 저자는 “당시는 현대에도 활발하게 숨쉬며 중국 전역을 누비고 다닌다는 점에서 박물관의 유물과 구별된다”고 적었다. 지금도 당시는 중국의 초등학교 학생부터 최고지도자까지 읽고 암송한다. 얼마 전 중국은 당나라 흥망의 상징과도 같은 서안 곡강지에 곡강지유지공원을 만들었고 소주에는 높이 17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시비를 세웠다. 저자는 중국 여행을 바탕으로 ‘당시의 나라’를 여행할 사람들을 위해 다시 일정을 짜서 정리했다. 책에 수록된 시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읽다보면 당나라로 여행을 떠난 듯하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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