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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어머니의 이름으로…우리가 알지 못했던 ‘오드리 헵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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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1950년대 헐리우드를 대표했던 여배우, 유니세프 친선대사, 세기의 연인….

대중이 알고 있는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ㆍ1929-1993)이다. 특히 수건을 두른 채 창가에 앉아 문리버(Moon river)를 부르던 ‘티파니…’에서의 콜걸, 롱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스페인 계단에서 젤라또를 먹던 ‘로마의 휴일’ 속 말괄량이 공주는 대중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눈부신 외모와 미소를 가진 이 여배우의 생애에서 우리가 몰랐던 순간들을 포착한 사진들이 한국 팬들에게 처음 공개됐다. 29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오드리 헵번의 일생을 재조명한 기획 전시회가 열린 것이다. 전시 제목은 ‘뷰티 비욘드 뷰티(Beauty beyond beauty)’. 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그 이면에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여성, 어머니, 인간으로서 헵번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대거 공개됐다.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의 회장이자 헵번의 둘째 아들인 루카 도티(Luca Dotti) 소장품을 포함해 헵번 가족들의 홈 비디오, 한정판 오리지널 포스터, 그리고 헵번이 직접 그린 그림들과 그녀를 위해 디자이너 지방시가 만들어 준 드레스 등이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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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drey Hepburn E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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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나 5살 어린 나이에 시작했던 기숙사 생활, 내성적인 열살 소녀가 겪어야 했던 참혹한 세계대전, 독일군에게 가족을 빼앗기며 느꼈던 엄청난 충격과 두려움, 생계를 위해 모델과 단역배우를 전전하다 영화 ‘로마의 휴일(1953)’로 단박에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헵번의 라이프 스토리가 사진들과 함께 곁들어져 생생하게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일생을 담은 기록들은 헵번이 왜 그토록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족을 아꼈는지, 또 왜 화려한 은막을 뒤로 하고 유니세프의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생을 마감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었던 어머니 엘라 반 헴스트라는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을 오가며 헌신했고, 그러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헵번 역시 가족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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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드리햅번 어린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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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어린 시절 겪었던 전쟁의 상흔은 그녀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쟁이 끝난 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오빠들과 기적적으로 상봉하면서 그 어떤 물질적인 부귀 영화보다도 가족이 소중함을 깨달았고, 유니세프 구호식품으로 연명하면서 남을 돕는 일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얻은 천식, 황달, 빈혈과 같은 질환 역시 평생 그녀를 따라다녔다.

영화배우 겸 감독 멜 페러와의 결혼과 이혼, 9살 연하의 정신과 의사 안드레아 도티와의 재혼과 이혼을 겪으며 끝까지 가족을 지키려 했던 헵번의 고뇌 역시 기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세 번의 유산 끝에 얻은 두 아들을 끔찍히 사랑했던 어머니 오드리 헵번의 모습에서 코 끝 찡한 감동이 전해진다.

전시는 2015년 3월 8일까지 100일동안 계속된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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