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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월드리포트] 국경 넘나든 인신매매단…납치에서 판매까지 조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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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6일 중국 장시성 난창시로 향하는 열차가 파오토우 부근을 지날 때였습니다. 열차 안을 순찰하던 경찰에게 한 앳된 여성이 달려들었습니다. 얼굴색이 가무잡잡하고 체구가 자그마해 한 눈에도 동남아 여성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떠듬거리는 중국어로 외쳤습니다. "도와주세요. 저는 미얀마인 인데요, 팔려가고 있어요."

그 순간 한 남성이 뒤쫓아 와 여성의 몸을 낚아채 데려가려 했습니다. 경찰이 가로 막자 변명을 합니다. "제 여동생입니다. 중국에 일자리를 얻어 데리고 가는 중입니다. 이 여자의 헛소리를 들을 필요 없어요."

경찰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직감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남성을 제압하고 체포했습니다.

조사에 나선 철도 경찰이 확인한 실상은 이렇습니다. 여성의 이름은 이루. 미얀마인 입니다. 원래 미얀마의 한 숙박업소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올 6월 2 명의 중국 남성이 이루가 일하는 호텔에 묵었습니다. 온갖 감언이설로 중국에 놀러가자고 이루를 유혹했습니다. 결국 이루와 또 한 명의 미얀마 여성이 따라 나섰습니다. 이 남성들을 따라 몰래 중국의 국경을 넘었습니다.

윈난성의 시멍와족 자치현에 도착하자 남성들은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이루를 마구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습니다. 휴대전화를 빼앗았습니다.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될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이루는 여러 명의 손을 거쳐 산시성 텐전현으로 끌려갔습니다. 여기서 간단한 중국어와 중국 생활의 기초 상식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앞서 오빠를 자처한 남성의 손에 이끌려 산둥성 쯔보시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누군가에게 팔릴 예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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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경찰은 즉시 사안을 상급 기관에 보고했습니다. 공안부는 우선 처리 사건에 올려놓고 즉시 수사에 나서도록 독려했습니다. 전담반을 구성했습니다. 이루가 거쳐 온 각 거점을 동시에 덮치기 위해 3개조로 나눴습니다.

중국 서남단 윈난에서부터 서북쪽의 산시(섬서)와 산시(산서), 중부의 허난, 동쪽 허베이와 산둥까지 5개 성, 1만 킬로미터 넘게 추적했습니다.

3개월 넘는 수사 끝에 인신매매 조직 31명을 체포했습니다. 이들에게 붙잡혀있던 14명의 여성을 구출했습니다. 그중 11명이 미얀마 여성이었습니다. 5명은 아직 18살도 안된 미성년자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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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혐의자가 속속 붙잡히면서 인신매매단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미얀마에서 젊은 여성들을 유인해 중국 각지에 팔아넘겼습니다. 모집과 수송, 중간 관리, 최종 판매까지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일관된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모집책은 주로 미얀마에서 젊은 여성들을 모았습니다. ‘놀러 가자, 좋은 일자리를 구해주겠다’고 속였습니다.

수송책은 이들을 중국으로 밀입국 시킨 뒤 각지로 데려가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중간 관리책은 중간 중간 여성들이 머무는 곳에서 이른바 상품화를 담당했습니다. 윈난성 시멍와족 자치현에서는 여성들을 구타하고 협박해 탈출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산시성 텐전현에서는 중국 생활에 대한 간단한 교육을 시켰습니다. 허난성 주마텐시나 허베이 등지에서는 이들의 신분을 세탁해줬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종 판매책은 이들을 사갈 사람을 물색하고 연결해줬습니다. 주로 열악한 농촌 지역의 독신 남성에게 아내로 공급했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국제적으로 부녀 인신매매를 하다 적발된 조직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고 합니다. 중국 공안은 주요 국제 인신매매 루트 가운데 하나를 완전히 파헤쳤다고 자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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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인신매매는 고질병에 가깝습니다. 특히 유아 인신매매는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중국의 한 관리는 한 해 20만명의 영유아가 인신매매 되고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뿌리 깊은 남아 선호 사상과 강력한 산아제한 제도, 여기에 농촌의 노동력 부족 사태 등이 맞물려 벌어지는 지옥도입니다.

여기에 농촌 지역 남성들이 결혼 대상을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이제는 국제적인 인신매매까지 기승을 부리는 것입니다. 이번에 일망타진한 조직이 전부가 아닙니다. 몇 십 개일지, 몇 백 개일지 알 수 없습니다.

돈으로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는 피해자의 인간성을,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말살하는 반인륜 범죄입니다. 중국 공안 당국이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우상욱 기자 woos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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