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의약물질의 습격, 물이 앓고 있다] [1] 감기만 걸려도 항생제 처방… 藥남용이 '물안전 위협'으로 부메랑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항생제 사용량 자체가 늘어

약효 듣지 않는 수퍼박테리아, 도심 공원 분수에서도 검출

"의약품 변기에 버리지 말고 전국 하수처리 성능 개선해야"

사람·동물에게 쓰이는 여러 항생제를 비롯한 의약 물질이 '약(藥)이 아닌 독(毒)'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전국 주요 하천에서 검출된 수퍼박테리아는 항생제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공원 물놀이 시설에까지 침투한 수퍼박테리아

광주광역시 보건환경연구원은 지난 6월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물놀이형 수경 시설의 수질과 항생제 내성 대장균 분포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조사 결과 광주시내 9개 물놀이 시설에서 검출된 대장균 13개 중 5개(38.5%)가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 중 3개(23%) 대장균은 앰피실린 등 서로 다른 3개의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균이었다.

보건환경연구원은 논문에서 "물놀이 시설에서 항생제 내성균이 발견된 것은 의외"라며 "어린이들이 물놀이 시설의 물을 마실 수도 있어 항생제 내성균에 대한 (관리상)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의 다른 물놀이 시설에 대한 조사 필요성도 제기된다.

조선일보

전국 하천에서 검출된 반코마이신(가장 강력한 항생제) 내성균 비율 그래프


하천에서 검출된 수퍼박테리아는 상·하류나 하수 처리장, 병원 폐수 방류수 및 하천 본류 등 지점에 따라 검출률이 달랐다. 금오공대 박제철 교수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낙동강 본류 6개 지점과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수 처리장 방류수 26개 지점 등 총 32개 조사 대상 지점 모두에서 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VRE)이 검출됐다. 하수 처리장 방류수 26개 지점에서 검출된 VRE는 7개 항생제에 내성을 가졌지만, 본류에서 검출된 6개 VRE는 13개 항생제에 내성을 보였다. 본류의 장알균이 하수 처리장 방류수에 든 장알균보다 항생제 내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반면 전국 주요 하천 6개 지점과 2개 토양 지점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북대 채종찬 교수팀 조사에서는 8개 지점의 항생제 내성률과 지역적 상관관계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병원 인근의 하수 처리장 방류수에서 상대적으로 항생제 내성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항생제 남용 막아야

하천에서 수퍼박테리아가 대거 검출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우리나라가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항생제 사용량 자체가 많아진 데다 감기에까지 항생제를 처방하는 의료계의 관행, 소·돼지·닭 등을 집단 사육하면서 항생제를 대량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동물에게 쓰인 이 항생제는 배설 등을 통해 환경으로 배출되고, 의약품 제조업체 폐수 등이 강으로 유출되면서 강물 속 세균들이 다제내성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일반 가정집에서 항생제 및 항생제 성분이 든 의약품을 변기·하수구에 버리는 행위도 오염을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다. 서울대 최경호 교수는 "하수 처리장의 성능을 개선해 항생제의 하천 유입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 세균이라도 다제내성이면 위험

강물에 든 수퍼박테리아가 초래한 극단적 사례는 2012년 4월 미국에서 발생했다. 조지아주에 사는 24세 여성이 수상 레저를 즐기다 물에 빠져 종아리에 상처를 입었다. 상처 틈새로 다제내성을 가진 '아에로모나스 하이드로필라'라는 세균이 침투하면서 '괴사성 근막염'에 걸린 것이 문제였다. 이 세균은 강물에 흔하게 존재하는 일반 세균이지만 여러 항생제를 써도 소용없어 결국 이 여성은 팔다리를 모두 잘라낸 뒤 간신히 살아났다. 미국에선 병원과 일반 환경에서 수퍼박테리아에 감염돼 사망하는 경우가 연간 수만명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WHO) 서아시아태평양지부에 파견된 이근화 제주의대 교수는 "강물 등에 흔하게 존재하는 세균이라도 다제내성을 가진 수퍼박테리아가 체내에 들어오면 치명적일 수 있다. 미국 같은 사례가 국내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올 4월 "과거에는 간단히 치료했던 흔한 감염과 가벼운 부상들이 (다제내성균의 등장으로) 앞으로는 죽음에까지 이르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항생제 위험을 강력히 경고했다.

♣ 바로잡습니다
▲본지 11월 28일자 A8면 '하천 점령한 수퍼박테리아' 기사 중 '금오공대 김제철 교수'는 '금오공대 박제철 교수'의 오기이므로 바로잡습니다.

[박은호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