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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무너진 최대 카르텔…`석유전쟁` 신호탄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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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체력에 OPEC 카르텔 무너졌다

셰일가스 죽이기 `치킨게임`..유가 35달러 전망까지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올들어 30%가 넘는 국제유가 하락 속에서도 세계 최대 석유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끝내 감산(減産)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OPEC 12개 회원국들은 2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한 석유장관회의에서 5시간의 긴 회의 끝에 하루 평균 3000만배럴인 기존의 산유량 쿼터(한도)를 종전대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베네수엘라와 이란 등의 감산 요구를 사우디 아라비아 등 부국들이 묵살한 형국이다.

바야흐로 석유전쟁의 신호탄이 쏘아올려진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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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갈린 체력차..무너진 카르텔

무엇보다 OPEC 회원국들 간 엇갈린 체력 차이가 공고했던 카르텔을 와해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통상적으로 사우디는 브렌트유 연간 가격이 배럴당 93달러만 유지해도 균형 재정 달성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는 심지어 60~70달러까지 추락해도 경제가 감내 가능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란과 베네수엘라, 에콰로드 등은 110~140달러까지 가야 겨우 재정적자를 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완만한 국제유가 하락을 이용해 미국과 캐나다가 주도하는 셰일가스 생산을 줄여 글로벌 석유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사우디와 UAE, 쿠웨이트 등의 계산을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이 따라갈 수 없었던 셈이다.

특히 국제사회와 핵폐기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경쟁국 이란과 이란 핵을 지지하는 비OPEC 회원국 러시아를 견제하는 동시에 시리아와 이라크 등지에 포진돼 있는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 과정에서 불거질 지 모르는 유가 급등까지 대비하려는 사우디의 복잡한 셈법도 감산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반면 이란과 이라크, 남미 베네수엘라는 유가 하락으로 경제에 어려움이 크다. 이들은 감산을 신속하게 실행해 가파른 유가 하락을 막으려 한다. 문제는 이 국가들이 자국 산유량은 줄이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이란과 시리아 등지에서의 산유량 감소를 충당하기 위해 최근 몇년간 산유량을 늘려온 사우디가 우선적으로 감산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서방과 핵 협상을 진행중인 이란은 합의가 도출된 후 국제사회가 제재를 풀어주면 석유 수출부터 늘릴 계획이다. 이라크도 IS와의 전쟁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석유를 증산해야 하는 입장이다. 외화 수입의 97%를 석유 수출로 충당하는 남미 산유국 베네수엘라는 국가부도 직전까지 와 있다.

◇ 석유전쟁..“유가 35달러” 전망도

비OPEC 회원국으로 세계 3위 산유국인 러시아의 국영 석유회사 로즈네프트의 이고르 세친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유가는 우리에게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며 “러시아는 OPEC 회원국들과는 달리 원유 생산량을 즉각적으로 줄일 수 없다”고 공언했다.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기도 한 세친 CEO는 “러시아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60달러로 떨어져도 감산할 필요가 없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캐나다도 든든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당장 셰일가스 투자를 줄일 생각이 없다. 영국 등까지 나서 셰일가스 붐에 동참하려 하고 있다.

결국 OPEC 입장에서 지금 당장의 감산은 원유시장 점유율을 내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한 걸프만 연안 국가들은 사실상의 가격전쟁을 선언한 셈이다. 세친 CEO도 “저유가는 원유 생산비용이 높은 곳에 더 큰 피해를 안길 것”이라며 셰일오일을 사례로 지목했다.

유가정보 업체 오일프라이스인포메이션서비스의 톰 클로자 대표는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내년 봄까지 OPEC이 감산에 합의하지 못하면 유가가 배럴당 35달러로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번 감산 여부를 논의할 차기 OPEC 정례회의는 내년 6월로 예정돼 있다.

저유가에 따른 파장도 확산되고 있다. 전날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바클레이스와 웰스파고가 미국 에너지 업체에 지원한 브리지론 대출금 8억5000만달러의 손실 위험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주가는 지난 6월 이후 17% 하락하고 쉐브론도 같은 기간 11% 떨어지는 등 석유 메이저업체들의 손실도 두드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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