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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어제 성공 잊어라 …‘셀프 혁신’ 기업만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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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 돈줄 사업도 매각, 130년째 성장

아모레, 화장품 하나만 집중해 성공

경기회복만 기댄 천수답식 구조

주력산업 조선·정유·철강 ‘3중고’

“과감한 혁신·구조조정만이 살 길”

정부는 빅딜 돕는 ‘원샷법’ 도입을

중앙일보

27일 오전 7시 서울 조선호텔. 한국경영자총협회 포럼장에 중견·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100여 명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날 발표된 삼성과 한화의 빅딜이 단연 화제였다. 그러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한국경제 긴급진단’이라고 적힌 포럼 주제가 CEO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기업 사정을 잘 아는 3개 경제단체 부회장 간의 토론은 절박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불황이 천천히 오다 보니 불황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2011년 이후 한국 경제의 분기 성장률은 0%대”라고 지적했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회장 직무대행)은 “기업의 변신을 막는 규제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모두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경제가 갈림길에 섰다. 변할 것이냐, 멈출 것이냐는 길목에서다. 삼성·한화의 빅딜은 선택을 재촉하는 방아쇠가 됐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이번 빅딜은 기업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골목 음식점이 미국의 푸드체인과 경쟁하게 된 시대에 변화는 곧 생존이다. 변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컴퓨터 회사로 알려진 IBM은 12년 전 “더 이상 컴퓨터 회사가 아니다”고 선언했다. 1990년대 파산위기까지 몰렸던 IBM은 PwC컨설팅 인수 등을 통해 컨설팅·소프트웨어 업체로 변신했다. 수익의 80% 이상이 이 분야에서 나온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수익을 내는 사업도 미래 시장을 보고 과감히 매각하는 방식으로 130년째 초일류 제조업체의 위상을 이어오고 있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만들고도 필름 시장을 포기하지 못했던 코닥과 대조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변하는 기업만이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다. 선택과 집중의 대명사가 된 아모레퍼시픽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한때 태평양증권을 비롯해 전자·금속 등 하지 않는 게 별로 없는 회사였다. 그러나 90년대 모두 팔고 딱 하나 화장품에만 집중했다.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13개국에서 4100여 개 매장을 가지고 있다. 회사 주식은 200만원을 넘어 ‘황제주’ 대우를 받는다. SK그룹의 효자 계열사가 된 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현대·LG로 주인이 바뀌는 빅딜과 직원 절반을 구조조정하는 혹독한 과정이 오늘의 하이닉스를 만들었다. 하이닉스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2조원이 넘는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기업이 변신에 주저한다. 동부그룹은 기존 사업을 고집하다 그룹 체제가 흔들리는 위기에 빠졌다. 조선·해운 등 구조조정이 급한 분야에서는 말만 무성할 뿐 행동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조 대기업들의 실적이 확 쪼그라들고 있다. 세계 경기 부진과 공급 과잉, 중국의 저가 공세라는 ‘3중고’에 시달리면서다. 통계청은 27일 지난해 광업·제조업 출하액(1495조원)과 부가가치(481조원)가 전년보다 각각 1%와 0.2% 감소했다고 밝혔다. 출하액과 부가가치가 전년 보다 줄어든 것은 외환위기 시절인 99년 이후 처음이다.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은 올 3분기까지 3조원대 영업적자를 낸 상태다. 창사 이후 최대 위기인데도 이 회사 노조는 27일 파업을 했다. 20년 만의 파업이다. 정유·해운업계도 1년 내내 냉기가 감돌았다. SK·GS 등 4대 정유사의 올해 정유부문 적자가 1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게다가 ‘수요 확장’만 기다리는 천수답식 기업 구조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건설업이 대표적이다. 공공공사 발주와 규제 완화가 단비인데, 여기서 제동이 걸렸다. 복지 예산이 늘어나면서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삭감됐고, 덩달아 공공공사가 급감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내 건설 수주액은 91조3100억원으로 1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내삼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은 “상반기 신규 수주가 전무한 종합건설업체가 4594곳으로 전체의 42%에 이른다”고 말했다.

답은 과감한 변화뿐이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과감한 혁신과 구조개혁으로 성장동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임지수 연구위원은 “어제의 성공에만 취해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과감한 기업의 변신이야말로 정부의 내년 경제 화두인 ‘경제 혁신’의 요체”라며 “정부도 기업의 빠른 사업조정을 돕는 ‘원샷법(산업활력법)’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예·이상재·황정일 기자

김현예.이상재.황정일 기자 hykim@joongang.co.kr

▶김현예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happ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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