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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정부는 ‘뒤로’ 빠지고… 국민들 편싸움만 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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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정책 추진하며 ‘이해 집단’과 ‘나머지 집단’ 분리 여론몰이

갈등 조정·통합 외면… 사회 신뢰, 국가 역량 저하 등 후유증 우려

정부가 주요 정책마다 특정 ‘이해집단’과 나머지를 나누고 대립시키는 식의 여론몰이를 정책 추진 동력으로 삼으면서 국민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은 정규직 과보호 문제로 돌려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갈등 구도를 만들고, 복지 재원은 무상보육(누리과정)과 무상급식 수혜층을 편 가르는 식이다. 정부가 싸움을 붙이는 꼴인 셈이다. 박근혜 정부의 이 같은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 rule·분할 통치)’식 정책 추진으로 사회의 분열과 대립이 증폭되면서 불필요한 후유증까지 낳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업 투자 확대를 위해 고용시장 유연화 등 노동시장 개혁과 노사 간, 노조 간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5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 (인력을) 못 뽑는 상황”이라는 발언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정부·여당은 ‘노조 간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기업은 뒤로 빠진 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대결 구도를 만든 양상이다. 비정규직의 저임금과 불안한 고용 문제를 정규직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복지전쟁도 마찬가지다. 무상보육 대상은 만 3~5세로 유치원·어린이집 유아가 해당된다. 무상급식은 초·중·고교생이 대상이다. 정부는 박근혜 정부 공약인 누리과정 예산은 지원하고, 무상급식 예산은 축소한다는 입장이다. 학부모들 간,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긴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도 공무원과 국민을 나누는 ‘분리’ 전략을 쓰면서 소모적인 저항을 키우고 있다. 직접 이해 당사자인 공무원들에 대한 설득·동의 과정은 생략한 채 군사작전하듯 ‘연내 처리’만 밀어붙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이 매우 시급하다. 현 정부에서만 15조원의 손실이 나 국민 부담이 눈덩이만큼 커질 전망”(박근혜 대통령)이라며 연금개혁을 ‘공무원 대 국민’의 이해대립 구도로 만들었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옷을 입고 더워지면 벗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 국민에게 옷을 입으라고 할 것이냐, 공무원이 옷을 벗을 것이냐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앞서 세월호 참사 이후엔 ‘세월호로 소비심리가 위축됐다’는 식으로 경제를 끌어들여 국민들의 ‘세월호 피로증’을 부각시켰다. 여권은 ‘불순세력 개입’ 주장 등 색깔론까지 덧씌우면서 ‘일베’ 등 극우보수층들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상황도 만들었다.

문제는 이 같은 정부의 ‘분할 통치’식 정책 추진의 부작용이다. 사회 계층·조직 간 갈등이 극대화하면서 반목이 심해지고 사회적 신뢰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번 생긴 불신은 치유하기 어렵고 결국 국가적 역량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사회적 신뢰가 높을수록 국민행복감도 높은 경향이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을 보면 한국의 사회자본(사회적 신뢰)지수는 5.0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 최하위권인 29위다. 박태순 갈등연구소장은 “일련의 정부 대응은 군사정권식 발상으로 국민들을 분리해서 통치하겠다는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통치에 성공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국가적 불행”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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