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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수개월 걸쳐 만든 표준약관 하루 만에 엎어버린 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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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원 초과 신용카드결제 신분증 제시 규정 놓고 혼란 야기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금융위원회가 카드업계와 수개월의 협의를 거쳐 개정한 표준약관 조항을 돌연 폐지하겠다고 발표해 소비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27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협회와 카드업계는 50만원 초과 금액 신용카드 결제 때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는 여신전문금융업법 및 감독규정을 개인회원 표준약관에 반영하는 등 개정 약관을 지난 9월 24일 금융위에 신고했다.

금융위의 승인을 얻은 여신협회와 각 카드사는 개정된 약관 내용이 내달 30일부터 적용된다고 고객들에게 알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50만원 초과 신용카드 결제에 신분증을 통한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규정은 2002년에 도입돼 사문화된 상태였다. 카드업계와 금융당국은 이를 다시 부활시켜 타인의 부정사용을 방지해 소비자를 최대한 보호하겠다는 취지였다.

금융감독원은 여신협회에 약관에 이 규정을 포함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초 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신용카드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반영된 것이다.

여신협회는 사전에 금융위와 금감원과 약관 개정 내용을 조율하고 나서 지난 9월부터 카드업계의 의견을 청취해 약관 개정 내용을 확정했다.

그러나 전날 금융위는 돌연 50만원 초과 금액 신용카드 결제 때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한 감독규정 자체를 내달 중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위가 감독규정을 바꾸면 협회는 약관을 바꿀 수밖에 없다.

윤영은 금융위 중소금융과장은 "도입 때와 달리 지금은 신용카드 거래 때 서명 비교 또는 비밀번호 입력 등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소비자 불편 해소차원에서 신분확인 의무를 폐지키로 했다"고 말했다.

윤 과장은 "협회의 신고를 받는 과정에서 조항을 자세히 검토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 "근본적인 소비자 불편 해결 차원에서 금융위가 총체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가 사전에 관련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소비자 불편과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여론에 떼밀려 성급한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당장 금융사고 방지 대책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현실은 카드 소지자는 카드 뒷면에 서명을 해야 하고, 가맹점은 결제 때 서명이 동일한 지 확인하도록 되어 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또 비밀번호를 통한 개인 확인 역시 IC단말기 등이 도입된 곳에서만 가능해 현재로서는 널리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카드결제 과정이 까다로워지면 소비를 꺼려 정부의 경제활성화 정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윗선'이 금융위를 압박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가 처음부터 소비자의 눈으로 어떤 가치가 우선인지 고민하지 않았다"면서 "여론에 밀려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도 사려 깊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redfla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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