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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多文化 일꾼] "그들이 살 권리 잃는다면… 우리 모두에게 큰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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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량고 교사 임병우]

동아리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봉사… 비용 마련 위해 아이스크림 장사도

1800명 온라인으로 봉사자 연결… 각종 상금 수천만원 다 기부하고 전세금 올라 가족은 변두리로 이사

13년 전 한 인권운동가가 탈북해 중국으로 간 '장길수 가족' 17명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17세였던 길수군은 서울의 한 상고에 입학했다. 그러나 1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그 인권운동가는 이후로도 탈북자들의 입국을 여러 번 주선했지만, 상당수가 우리 사회에 녹아들지 못해 방황하거나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났다. 탈북자 정착을 돕는 '하나원' 교육생 가운데도 열에 여덟·아홉 명이 중도에 포기하는 형편이었다. '이걸 어떡하나.' 그는 동생인 교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서울 청량고 임병우(55) 선생님이 '다문화 일꾼'이 된 계기다.

그해 임병우는 북한인권시민연합과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계절학교를 열고 학생부장을 맡았다. 6년 지난 2007년부터는 다국·다민족·다문화로 범위를 넓혔다. "그 무렵 부천의 한 외국인 노동자 집에 불이 나 아이들이 죽었어요. 열악한 처지의 다문화 가족에 사회가 주목했죠." 그가 말했다. "집(남양주) 근처에 마석가구단지가 있어요.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건 알고 있었죠. 저도 그 화재를 계기로 관심이 가면서 대부분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불법 체류자임을 알았어요." 이듬해 그는 재직 중이던 경기여고에 '다문화 동아리'를 만들고 학생들과 봉사를 시작했다.

조선일보

임병우 교사와 서울 청량고 다문화동아리 학생들. 앞줄 왼쪽부터 이인서, 장윤지, 무함마드 잘룩, 이세훈, 이동혁군. 인서는 부모가 시리아 출신인 무함마드 잘룩의 멘토이고, 세훈은 어머니가 필리핀 출신인 동혁의 멘토다. 윤지는 청량고 다문화동아리 회장이다. /김지호 기자


도울 이는 많은데 돈은 모자랐다. "대상이 북한 하나에서 글로벌하게 넓어지니 월급으론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서울초중등다문화교육연구회'를 만들어 교육청 지원을 받았지만, 500명 넘는 다문화 가족을 후원하기엔 부족했다. 궁리 끝에 '장사'에 나서기로 했다. "뷔페 가면 후식으로 먹는 아이스크림 있죠? 그걸 도매로 사서 동아리 애들과 팔았어요." 2010년 선릉역 부근에서 시작한 장사는 반응이 좋았다. "여름 한철 장사로 250만원 남더군요. 그걸로 소아암 걸린 다문화 가정 아이의 병원비를 댔어요." 2011년부터는 학부모들까지 힘을 합쳐 다문화 가정에 수시로 김치와 생필품을 전한다.

현재 임병우가 돕는 다문화 가족은 1800명이다. 지난여름 시작한 온라인 서비스 '서로나눔네트워크' 덕에 많이 늘었다. "처음엔 서울 광진구의 한 학교를 정해 다문화 학생 70명이 함께 하는 토요행복학교를 운영했어요. 동아리 아이들이 자원봉사로 한국어와 사회·문화를 가르쳤죠. 그런데 점차 봉사자도, 학생도 잘 오지 않더군요. 학교가 서울 동쪽 끝이어서 다니기 어려운 거죠." 한 학생이 인터넷 활용을 제안했다. "과외 연결 업체가 쓰는 방식이죠. 가까운 곳에 사는 봉사자와 다문화 학생을 1대1 연결해주는 겁니다." 순식간에 전국에서 봉사자 4000명, 학생 2000명이 몰렸다. "자동 배정 시스템이 없어 수작업으로 연결했어요. 그렇게 많이 들어올 줄 몰랐죠. 아내까지 은행을 그만두고 도와줬습니다." 150명을 제외한 전원을 연결했다고 한다.

"새터민과 다문화 가족은 대부분 심하게 위축돼 있어요. 문화와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니 스스로 지레 '타인'으로 여기곤 하죠. '나도 한국인'이라는 자존감을 갖도록 돕는 게 중요해요." 그는 "우리들 역시 편견을 버려야 한다"며 "그들의 겉모습이나 출신국이 다르다 해서 더불어 살 권리를 잃게 만든다면 결국 서로 큰 손실 아니냐"고 했다.

임병우는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보건복지부장관상), 대한민국 휴먼대상(대통령 표창), 남강교육상 대상을 받았다. 지난 19일에는 가천문화재단이 준 다문화도우미상 본상도 받았다. 그간의 상금 수천만원도 모두 다문화 봉사에 사용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오른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얼마 전 마석에서 금곡으로 집을 옮겼다. 부부와 대학생 두 딸, 그리고 고3 아들이 20평 빌라에 산다.

그는 휴대폰 무제한 요금제를 이용한다. "제 또래에 무제한 요금제 쓰는 사람은 영업직 빼곤 거의 없어요. 봉사자와 학생 수천 명을 관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어요." 꿈은 다문화 봉사 사단법인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뜻있는 분을 많이 만나면 훨씬 효과적이고 제 부담도 줄어들 텐데, 현직 교사라서 엄두를 못 내요. 7년 후 정년이 오면 본격적으로 조직을 짜 볼 겁니다." 문의=서로나눔네트워크 blog.naver.com/limzzang0706

[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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